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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 신유경의 편지 - 김탁구에게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제빵왕 김탁구

'제빵왕 김탁구' 신유경의 편지 - 김탁구에게

빛무리~ 2010. 8. 7.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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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야, 너와 함께 있을 때만 나는 웃을 수 있어. 어린 시절, 하루도 빠짐없이 술에 취한 아버지에게서 매를 맞던 그 지옥 속에서도 너는 나를 웃게 해 주었지. 헤어져 있는 동안, 나는 한 번도 잊은 적 없어. 탁구야, 내 마음 속에서라도 너와 함께 있을 때만 나는 웃을 수 있었고, 그래서 너를 생각해야만, 나는 웃고 살 수 있었어. 

오랜 시간이 흘러서 우리는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슬픈 세상은 달라진 게 없구나. 너를 다시 만나 행복했던 시간은 꿈처럼 너무 빨리 스쳐 지나가고, 아무리 반항해 봐야 힘이 없으면 무엇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만 뼈에 새긴 채, 우리는 또 다시 2년 동안 헤어져야 했었지. 바보, 그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거였지만, 나는 탁구 너를 알기 때문에 그냥 기다리고 있었어. 나라면 얼마든지 무시해 버렸을 테지만, 아주 작은 약속이라도, 비록 부당한 약속이라도 끝까지 지켜내는 게 바로 너, 김탁구니까 말야.


너와 다시 헤어지던 그 날도 경찰서에서 풀려난 내 얼굴은 멍들고 입술은 터져서 피가 흐르고 있었어. 참 우습지? 나는 왜 항상 네 앞에서 이런 몰골로 서 있게 되는 걸까?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이지만, 탁구야, 너에게는 괜찮아. 너에게는 모두 다 보여주어도 괜찮았어. 어렸을 때처럼 너는 나를 지켜줄 테니까. 내 터진 입술을 감싸던 네 입술의 따뜻한 감촉이, 지난 2년 동안 나를 지켜 준 힘이었어. 

너무 늦었다고 탓하지도 않고 너는 말했지. "보고 싶었어, 유경아. 진짜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 탁구야, 너만 그랬던 거 아니야. 나도 하루하루 날짜를 세면서, 너를 다시 만날 날만 기다리고 있었어. 탁구야, 알지? 정확히 그 날 오후 6시에, 남산 시계탑 앞에서 만나자고 편지를 보낸 건 나였으니까, 너도 내 마음 알 거야.


꽃처럼 웃는 얼굴로 너에게 달려가고 싶었는데, 나는 또 예전처럼 얻어맞고 울면서 네 품에 안겨 버렸네. 어렸을 땐 그래도 울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맞은 게 훨씬 더 아팠거든. 사모님에게 뺨을 맞은 것보다도, 그 넓은 거실 한쪽에 벽걸이처럼 선 채, 웃고 떠드는 그 집안 사람들을 지켜보는 몇 시간 동안 나는 계속 두들겨 맞는 느낌이었어. 구마준 앞에서는 아닌 척 했지만, 사실은 너무 아팠어. 그 사람들과 내 사이에 너무 뚜렷하게 그어져 있는 하얀 선이 보였거든. 내 힘으로는 결코 지울 수 없는 선 말이야.

나는 바보처럼 나 자신을 믿었어. "노력하니까 저 같은 것에게도 기회가 오더라구요" 사모님 앞에서 자신만만하게 말했지. 나도 사람이니까, 그들과 같은 사람이니까, 나도 노력하면 가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 보여주고 싶었어. 그런데 너에게로 달려가지 못하고 그 거실에 발이 묶여 서 있는 동안, 내 안에서 그 믿음이 조금씩 무너져내리고 있었던 거야. 그 어떤 매질보다도 훨씬 더 아팠어.


너무 아파서 죽을 것만 같았어.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픈 몸을 이끌고 기어가다시피 남산 시계탑으로 갔던 이유는, 네가 기다리다가 돌아간 자리라도 봐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였어. 얼마 전까지 네가 나를 기다렸을 그 자리에 잠시나마 나도 서 있으려 했던 것 뿐이야. 그런데..... 아직 거기에 네가 있었어.

탁구야, 네가 없었다면 나는 평생 웃지 않는 인형으로 살았을 거야. 죽을 것 같다가도 네 얼굴을 보니까 웃음이 났어. 경합이 끝나면 함께 여행을 가자는 네 말도 좋았고, 내 뺨에 와닿는 네 수줍은 입술도 좋았어. 탁구야, 난 네가 너무 좋았어.


그런데 다음 날, 나는 거성의 비서실에서 쫓겨났어. 개미 한 마리를 눌러 죽이듯, 내 지나온 시간의 모든 노력을 그들은 너무나 쉽게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린 거야. 그 사람들에게 정당한 이유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어. 나는 하소연할 곳도 기댈 곳도 없었지. 그냥 무력하게 짐을 싸들고, 대기발령을 받아 텅 빈 관리실로 내려가는 것 이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어. 허무했어. 결국 아무리 뛰어봐야 나는 그 선을 넘을 수 없었던 거야.

그 때 구마준이 다가와서, 자기를 이용해서 복수하라고 말했어.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면 믿지 않았을 텐데, 자기도 그들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말은 이상하게 믿어지더라. 겉보기에는 화려한 그 아이가 어울리지 않게 상처가 많다는 것을 나는 오래 전부터 느끼고 있었거든. 바다에 돌을 던지면 흔적도 남지 않지만 세숫대야에 돌을 던지면 물이 넘쳐 버리듯이, 그 아이의 작은 그릇은 언제나 위태로웠지. 탁구 너와는 달랐어.


이용당해 주겠다는 구마준의 말이 귓가를 두드릴 때, 나는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지. 그 아이의 모든 것이 내 것이 될 수 있다면... 내게도 그 하얀 선을 넘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게 아니겠니? 내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 버렸기에, 사직서를 내고 모든 것을 포기할까 생각하던 찰나였는데, 생각지도 않은 일이 일어났어. 내가 놀란 것은 구마준 때문이 아니라 그 말에 흔들리는 나 자신 때문이었어. 

탁구야, 나 이러면 안되겠지? 오늘 집 앞에서 너를 만났어야 했는데, 그래서 네가 가져온 따뜻한 빵을 먹고 너와 눈을 맞추며 웃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해서 나 지금 많이 흔들려. 그래도 우리 다시 만나자. 경합 끝나면 기차 타고 바다 보러 여행도 가자. 내가 너를 기다릴게. 우리... 여행 꼭 가자. 응?


▷▷ 탁구가 여행가자는 말을 꺼냈을 때, 활짝 웃으며 "우리 꼭 가자" 라고 대답하는 유경을 보는 순간, 저는
      "저 아이들, 여행 못 가겠구나" 하고 중얼거렸다지요. 드라마에서의 슬픈 예감은 거의 틀린 적이 없답니다.
       그들의 재회가 너무 아름다웠기에, 더욱 슬픈 예감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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