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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 구일중이 소름끼치는 악역인 이유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제빵왕 김탁구

'제빵왕 김탁구' 구일중이 소름끼치는 악역인 이유

빛무리~ 2010. 8. 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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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숙과 한승재를 제치고 구일중이 최고의 악역이라는 제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으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올렸던 포스팅 '나쁜 아버지 구일중, 비극을 부르다' 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반대 의견을 접했었지요. 그러나 19회를 시청한 후 저는 원래의 생각을 더욱 굳혔을 뿐 아니라, 구일중은 '나쁜 아버지'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악역으로 규정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인물임을 깨달았습니다.

서인숙과 한승재가 드러나 있는 함정이라면, 구일중은 교묘히 숨겨져 있는 함정입니다. 어느 것이 더 위험한지를 극단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예시입니다. 물론 서인숙과 한승재의 악행을 합리화하거나 감싸 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나 '착한 척 하는' 구일중의 행각을 볼 때마다 제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역겨움이 너무 크다 보니, 상대적으로 서인숙과 한승재에게서는 솔직함의 미학이 느껴질 지경입니다.

구마준이 자기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구일중이 과연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의 문제는 그 동안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지요. 충분히 의심스러운데도 제가 '모른다' 쪽으로 생각했던 이유는, '알고 있다'는 암시가 드라마 속에서 분명히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구일중을 그렇게까지 끔찍한 인간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9회를 보니, 아무래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군요. 최악의 예상이 들어맞고 말았습니다.


지난 주에 이어서 마준이를 대하는 태도에 조금도 아버지로서의 애정이 묻어나지 않고 오히려 혐오감만 가득하기에, 아무래도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는 했습니다. "너 뒤에서, 내 회사 사람들의 힘을 빌어 경합을 준비하고 있었던 거냐? 너의 승부라는 게 결국 이런 거구나. 이런 식으로 탁구를 이기겠다는 거였어? 두 번 다시 내 식품개발실에 발을 들이지 마라."

이 대사가 조금이라도 인간미를 띠고 아버지다운 말이 되기 위해서는 중간에 '내 회사'와 '내 식품개발실'이라는 단어에서 '내'가 삭제되어야 했습니다. 그냥 '회사 사람들'과 '식품개발실'이라고 해도 될 일이었습니다. 굳이 '내 회사'라고 못박아 말함으로써 구일중은 마준을 향해 "너는 '내 회사'에 끼어들 자격이 없다."는 뜻을 명백히 한 셈이었으니까요.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마준이가 잘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경합을 준비하고 있는 탁구와 비교해 볼 때, 매우 치졸하고 못난 짓을 했지요. 하지만 자식을 타이르는 아버지라면, 저토록 차갑게 밀어내는 언어를 사용하지는 말았어야 합니다. 애정을 갖고 야단치는 것과, 진심으로 혐오하고 싫어하면서 말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데, 제가 보기에 구일중의 태도는 명백히 후자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는 드디어 오랫동안 쓰고 있던 가면을 벗고 한승재에게 본색을 드러내더군요. 구일중은 한승재를 향해 "더 이상 내 앞에서 거짓으로 위선을 떨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정말로 위선을 떨고 있던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습니다.

비밀을 알면서도 지금까지 내색 안 하고 버텨 온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대인배의 마음으로 너그럽게 용서하고 참아 준 걸까요? 후후... 그저 기막혀서 웃음만 나올 뿐입니다. 이제껏 단 한 번이라도 구일중이 서인숙을 '인간적으로' 대한 적이 있었나요? 따스한 시선을 보내거나, 따뜻한 말을 건네는 모습이 한 번이라도 보였나요? 그녀에게 구일중은 언제나 돌덩이처럼 차가웠고, 조금도 곁을 주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손톱만큼이라도 가지고 있는 태도가 아니었어요. 그러면서도 그는 속마음을 숨기고, '모르는 척' 하며 수십년을 살아 왔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미지수이지만, 우선 남들의 시선이 문제가 되었겠지요. 마누라가 비서와 불륜을 저질러서 아이까지 낳았다는 이유로 떠들썩하게 이혼을 한대서야, 어디 체면이 서겠습니까? 구일중 같은 위선적 스타일의 인간은 누구보다도 남들의 눈에 보여지는 자기의 모습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서인숙이 대놓고 잘난체하는 것에 비해, 구일중은 가장 고상하고 품위있는 척을 함으로써 멋을 부리고 싶어하는 부류이지요. 이러한 인물에게는 자기의 가정이 속으로 썩어들어가더라도 남들에게 완벽한 가정으로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두번째 예측은 서인숙의 재력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을 수도 있겠지요. 구일중 자신보다야 비중이 적었겠지만, 그래도 회사에 갖고 있는 그녀의 지분을 무시할 수 없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불륜을 이유로 이혼소송을 해서 그녀의 지분을 빼앗고 위자료 한 푼 없이 내쫓을 수도 있었을까요? 하지만 이미 그 자신이 김미순과의 사이에서 먼저 혼외자를 낳았기 때문에, 서인숙만을 유책 배우자로 규정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게다가 소송을 하게되면 망신살이 뻗치겠지요. 합의 이혼을 할 경우, 서인숙은 틀림없이 자기 몫을 챙기려 할 테니 그만큼의 재산이 빠져나가게 되면 회사의 운영에도 지장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속으로는 한 집안에서 숨 쉬고 사는 것도 싫었겠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구일중은 서인숙을 내치지 않고 결혼생활을 지속하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그녀를 대하는 태도에서는 마음 속의 혐오감이 항상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무슨 애정이 있어서 너그럽게 받아 준 것이 결코 아니었어요.

그의 비인간적인 냉대는 서인숙에게 한정되지 않았고, 어린 마준이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단 모르는 척 하고 살기로 결심한 이상, 명색이 아들인데 겉으로나마 아들 대접은 해야 하니까 휴일마다 공장에 데리고 갔지만, 좀처럼 열의를 보이지 않는 어린애한테 따뜻한 격려의 말 한 마디 해 준 적이 없었습니다. 하기야 얼마나 보기 싫었을텐데, 서인숙이 탁구에게 그랬듯이 대놓고 구박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해야 할까요? 하지만 구일중은 비밀을 모르는 척 해야 할 뿐 아니라 고상한 척도 해야 했습니다. 대놓고 구박을 할래야 할 수가 없었을 거예요.


구일중은 마준에게 항상 차갑기만 했고, 껍데기뿐인 아버지였습니다. 어려서부터 마준이는 부모에게서 제대로 된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자랐어요. 서인숙의 애정은 비뚤어진 집착에 지나지 않았고, 얼음장 같은 구일중은 마음 한 켠도 열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공허했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저립니다.

그렇게 자라난 아이가 올바른 심성을 지니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어요. 정정당당하게 이길 생각을 하지 않고, 비열한 수단을 써서라도 무조건 이기고 싶어하는 마준이... 이제는 독을 사용해서 탁구의 후각과 미각을 망가뜨리려는 악독함까지 겸비한 마준이가 오히려 안스럽게 느껴졌던 것은... 그는 '나쁜 놈'이 아니라 '못난 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가슴에는 지금도 구일중이 뚫어 놓은 커다란 구멍이 있습니다.

"26년 동안 너는 내가 해주는 모든 것들을 누리고 살았지만, 탁구 그 아이는 그렇지 못했다" 고 구일중은 마준이에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무엇을 얼마나 해 주었던 걸까요?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켜 준 것? 구일중의 재력에 그 정도는 아들에게가 아니라 후원하는 고아에게도 해 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경제적인 부분을 뺀다면 과연 그가 마준이에게 아버지로서 무엇을 해 주었단 말입니까?


그 시대의 아버지들은 모두 그랬다고, 무뚝뚝하고 말도 없고 애정 표현을 할 줄 모르는 그런 아버지들이 대부분이었다고 주장할 사람들이 있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정도가 있습니다. 가끔은 말 한 마디라도 진심을 담아서 따뜻하게 전해 주어야, 평소에 무뚝뚝하더라도 그 마음이 전해지는 법이지요. 26년 동안 한결같이 무뚝뚝하고 냉랭하다면 "그래도 아버지는 속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을 거야" 라고 느끼는 자식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습니까? 구일중이 마준이한테 애정을 갖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 한 번이라도 나왔었나요? 가장 부드럽게 대할 때조차도 그냥 데면데면한 수준이었습니다.

한승재를 내치지 않은 이유는 약간 의문입니다만, 역시 '모르는 척'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보여집니다. 어려서부터 한 집에서 친구처럼 지내왔던 사이인데, 그런 한승재를 내쫓기 위해서는 누가 보더라도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했겠지요. 하지만 '내 마누라와 그렇고 그런 사이' 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할 수 없는 입장이었기에 내치지 못하고 묵인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한승재를 대하는 태도는 비인간적이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자네가 언제부터 그런 것을 일일이 나한테 보고했었나? 알아서 하게" 라는 식으로 대놓고 무시할 때는, 그 어조에서 뚝뚝 떨어지는 냉기가 전달되어서 제 가슴마저 서늘해지더군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고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저는 구일중을 최고의 악역이라고 거침없이 말하겠습니다. 모르는 척 하는 그 마음이 '사랑' 또는 '배려'였다면 성인이라 하겠으나, 그 오랜 세월 동안 서인숙과 구마준과 한승재를 대해 온 구일중의 태도를 돌이켜 본다면, 결코, 사랑이나 배려 때문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지요. 구일중은 자기의 욕심과 체면 때문에 가족들을 기만하고, 속으로는 미워하면서 떠나지 못하게 곁에 붙잡아 둔 채로 수십년간을 날마다 차갑게 대하며 비인간적인 태도로 고문해 온 것입니다. 소름이 끼칩니다.

그리고 19회에서 그는 독백을 합니다. "탁구야, 나는 꼭 이 회사를 너에게 물려주고 싶구나." 오랫동안 구일중이 탁구의 행방을 수소문해 온 이유는, 자기 핏줄의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싶은 욕심이었습니다. 수십년 동안이나 주변 사람들을 철저히 속이며 혼자서 꿍꿍이를 품고 뒷공작을 하고 있었으니, 그의 인생도 결코 편하지는 않았겠군요. 하지만 드라마에서도 하늘의 뜻이 이루어진다면, 구일중은 결코 자기 뜻을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는 정말 나쁜 사람이니까요. 서인숙과 한승재가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구일중의 승리는 지극히 공허한 승리일 거예요.


저는 탁구가 아버지의 회사로 들어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구형준이라는 이름을 끝내 거부하고, 김탁구라는 이름으로 팔봉 빵집에 남아서 평범한 제빵사로서의 행복을 찾아가기를 바랍니다. '제빵왕'이라고 해서 반드시 기업가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겠지요. 팔봉 선생이 그랬듯이 그 작은 빵집에서 조용히 평생토록 빵을 만들며 지내는 것 또한 '제빵왕' 다운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순수한 아가씨 양미순과 더불어 알콩달콩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어머니 김미순은 가까운 곳에 모시고, 아버지 구일중과는 아주 가끔씩만 연락을 하며...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서인숙과 한승재는 당연히 죄의 댓가를 치르겠지만, 구일중도 자기 뜻이 좌절되는 아픔을 겪고 외로움을 견디어야 하는, 그 정도의 벌은 받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이 어린 마준이를 냉대하며 평생을 거짓으로 살아 온, 그의 부인할 수 없는 죄악에 대한 최소한의 댓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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