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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월천대사는 제갈량과 닮았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선덕여왕

선덕여왕, 월천대사는 제갈량과 닮았다

빛무리~ 2009. 8. 2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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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27회에서 가장 인상깊은 인물은 월천대사였다. 학식도 깊고 기품도 있어 보이는 월천대사가 왜 미실을 돕고 있는지를 알 수 없었는데, 덕만의 협조 요청을 거절하면서 월천대사는 아주 솔직하고 시원하게 그 이유를 직접 말해 주었다.


대가야가 신라에 의해 멸망 위기에 처하자 가야의 위정자들은 제일 먼저 격물학자들을 암살했다. 자기 나라의 귀한 학문이 신라로 전파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악의와 원한으로 가득찬 만행이었다. 가야의 격물학자 집안에서 출생한 월천도 그때 죽을 고비를 맞이했으나, 미실의 첫사랑이었던 사다함에 의해 구해졌다고 한다.

"미실이 나를 이용한 것은 사실이오. 그러나 나는 미실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다함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미실을 도왔을 뿐이오."
덕만이 언성 높여 "미실은 당신의 도움을 악하게 이용하고 있다"며 반발하자, 월천대사는 실쭉 웃음을 보이며 말한다. "당신은 좀 다릅니까?"

"정치하는 사람들은 다 똑같습니다. 누구나 자기의 이득을 위해 격물하는 사람들을 이용하려고 하지요. 당신 또한 뭔가 원하는 게 있어서 나를 이용하려는 게 아닙니까?"


당신에게 은혜를 입은 것도 없으니 나는 당신을 도울 이유가 없다고... 이미 천수를 다 누린 자기는 더 이상 남에게 이용당하고 싶지 않으니 그냥 목숨을 거두라고 말하는 월천대사의 담담한 태도에 덕만은 기운이 쭉 빠졌을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이 반드시 어질다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여기서 '어질지 않다'는 말은 결코 '악한 사람' 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남에게 무조건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야 인자(仁者)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아갈 뿐 남의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하지만 신세를 지면 그 신세를 갚으려 하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인지상정이다. 월천대사는 특별한 지혜를 가졌으나 마음은 그저 보통 사람이었던 것이다.

저러한 월천대사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삼국지'의 제갈량을 떠올렸다.

제갈량은 빼어난 지혜와 지극한 충의의 인물로서 오랫동안 찬양받는 인물이다. 나 또한 '삼국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한 인물만을 뽑으라고 한다면 제갈량을 뽑을 것이다. 그러나 차분히 생각해 보면 제갈량이 특별히 인의로운 인물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주군에 대한 충성은, 인의(仁意)와는 분명 다른 것이다.

유비의 삼고초려에 감동한 제갈량은 이토록 자기를 알아주는 주군에게 충성할 것을 다짐하며 유비 진영에 합류한다. 주군을 보좌하여 자기의 능력을 펼치고 어지러운 세상을 통합하여 큰 나라를 세우겠다는 포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굶주리며 죽어가는 가여운 백성들을 위해서 어진 뜻을 펼치겠다는 마음을 굳이 제갈량에게서 찾아보려 애쓴다면 실패하고 말 것이다.

유비 진영에 합류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이다. 제갈량과 유비가 형주를 방문하였는데, 유표의 큰아들 유기가 숙부뻘인 유비에게 애원한다. 계모가 이복동생을 형주의 계승자로 만들기 위해 자기를 죽이려 음모를 꾸미는데 도움을 달라는 것이었다. 조카를 불쌍히 여긴 유비는 제갈량에게 조언을 구하지만 제갈량은 이렇게 말한다. "주군께서는 이번 일에 끼어드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들이 서로 싸워 상처를 입게 놓아 두시는 편이 우리가 형주를 차지하는데 유리합니다."
결국 유비의 간청을 이기지 못하고 유기에게 계책을 일러주기는 하지만, 저 발언을 통해 제갈량의 일면 냉정한 성격을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일화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유비가 조조의 공격을 받아 쫒기게 되자 유비의 인품에 감복하여 그와 함께 하고자 하는 백성들이 줄줄이 따라왔다. 도망갈 길은 한시가 급한데, 어린아이에 부녀자와 노인들까지 섞여서 수백수천명의 백성들이 따라오고 있으니 발이 묶인 형국이었다.
제갈량은 "저들을 버려야 합니다. 데리고 가다가는 우리 군사 모두 전멸하고 말 것입니다. 다른 곳에 가서 기반을 잡으면 백성들은 얼마든지 또 모을 수 있습니다." 고 하였다. 그러나 유비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나를 따르기 위해 집까지 버리고 온 불쌍한 백성들을 끝까지 내가 데리고 가겠노라고 고집한다. 결국 주군의 고집을 꺾지 못한 제갈량은 또 다른 계책을 생각해 내어 추격군을 따돌린다.

너무 지나치게 인의로워서 답답하고 속 터질 지경인 주군 유비와, 그를 보좌하며 항상 냉정함을 유지하는 지혜로운 책사 제갈량의 조합은 거의 환상이라고 할만했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그들의 콤비 플레이는 너무 매력적이어서 '삼국지'를 영원한 명작으로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했다고 생각한다.


월천대사는 죽은 사다함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거의 평생동안 미실에게 충성을 바쳐 왔다. 나중에는 결국 덕만을 돕게 되겠지만 그거야 드라마의 흐름을 위한 설정일 뿐이고, 실제 상황이라면 월천과 같은 인물을 설득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대의보다도 개인적 은혜와 의리이다. 지혜로운 자일수록 고집은 센 편이다. 더구나 이미 천수를 다한 몸이라며 느긋이 눈을 감는데, 승려로서 가족도 없는 그에게 이제와서 어떤 은혜를 베풀어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덕만 앞에서 "당신은 좀 다릅니까?" 라고 비죽이 웃으며 협조를 거절하는 월천대사의 모습이 나는 왜 전혀 얄밉지 않고 오히려 통쾌했을까?

오래 전부터 나는 "입으로만 정의를 부르짖는 자들"에게 질려 있다. 허울 좋은 말들만 들어 보면 이 세상에는 어찌나 정의로운 사람이 많은지, 거리가 온통 정의의 물결로 뒤덮일 지경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불우이웃돕기 성금 한 번 낸 적 없는 경우가 허다하고, 독거노인 보살피기 봉사활동 한 번 한 적 없는 경우가 99%이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남들을 끊임없이 헐뜯고 불화를 조장하며, 자기들과 뜻을 완벽히 같이 하지 않는 사람들이면 적이건 중간자건 모두 한곳에 몰아서 두들겨패고 상처주기에 여념이 없다. 과연 무엇이 정의이며 인의인가?

진실로 정의로운 사람들, 진실로 인의로운 사람들은 그리 목소리가 크지 않더라 하는 것이 내가 이제껏 살아오면서 절절히 체험한 진리이다. 소리 높여 입으로 떠드는 자들은 거의 가짜인 경우가 많다.


월천대사의 솔직함이 나는 정말이지 마음에 든다. 목청껏 소리 높여 남을 헐뜯고, 자기의 뜻만이 진정한 정의라고 외치는 자들에게 나는 월천대사처럼 비죽이 웃으며 묻고 싶다. "당신은 뭐 좀 다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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