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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유진의 소름끼치는 연기, 신유경과 하나가 되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제빵왕 김탁구

'제빵왕' 유진의 소름끼치는 연기, 신유경과 하나가 되다

빛무리~ 2010. 7. 2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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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능 엔터테이너라는 말이 별로 신기하지도 않은 시대이지만, 여전히 가수 출신 연기자를 보는 시선은 전체적으로 곱지만은 않습니다. 가수 활동을 통해 얻은 인지도를 기반으로 남의 밥상에 너무 쉽게 숟가락을 올려놓는 듯한 느낌, 그래서 결과적으로 모든 것을 다 바쳐 연기 공부를 하며 오랫동안 꿈을 키워 온 사람들의 기회를 빼앗는 듯한 느낌이 그 못마땅한 시선의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군요. 사실 완전히 부인할 수도 없는 부분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유진은 이제 그런 시각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져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1990년대 말의 인기 걸그룹 SES 출신의 그녀는 이미 연기 활동을 시작한지가 거의 10년이 가까워지고 있으며, 그 동안 꽤 많은 작품에 주연으로 등장하여 괜찮은 연기력을 보여 주었으나, 시청률 면에서 대박난 작품이 없었기 때문인지 그녀의 이름와 연결되어 떠오르는 뚜렷한 대표작도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녀의 작품 중에서 제가 가장 먼저 보았던 드라마는, 2004년에 지성과 함께 출연했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였습니다. 처음에는 기대하던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가수 출신 연기자가 한다는 것이 약간 달갑지 않았는데, 의외로 드라마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는 유진의 연기를 보며 약간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2006년 '진짜진짜 좋아해'에서는 유진이라는 연기자를 확실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골소녀 여봉순 역할을 그녀보다 더 능청스럽게 잘 해낼 연기자는 지금 생각해도 없을 것 같군요. 쉽지 않은 강원도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중간중간에 감칠맛나는 민요 실력까지 뽐내던 그녀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비록 시청률은 높지 않았지만, 젠틀한 연상남 류진과 파릇한 연하남 이민기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할 만큼 산골소녀 여봉순의 매력이 흘러넘치던 드라마였어요.

하지만 그 이후로는 제가 개인적으로 그녀의 출연작을 제대로 본 것이 없었습니다. '아빠 셋 엄마 하나' 라든가 '인연만들기' 등의 드라마에서 얼핏 보기는 했었지만, 뭔가 시선을 강하게 사로잡는 면은 발견하지 못했었지요. 그런데 이번에 모처럼 그녀의 진면목이 드러났군요. '제빵왕 김탁구'의 신유경은 마치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배역처럼 멋지게 어울립니다.


사실 신유경이라는 역할은 웬만한 연기 내공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캐릭터입니다. 신유경은 어려서부터 작부인 어머니와 술주정뱅이인 아버지 사이에서 온갖 폭력에 시달리며 눈치를 보고 살아왔기에, 어린아이다운 순수함은 일찌감치 잃어버리고 다면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말과 행동이 속마음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 인물인 것이지요. 소녀시절에도 그런 모습이 보였습니다.

일례로 한승재(정성모)는 김미순(전미선)을 해치라는 조건으로 유경의 아버지에게 돈봉투를 건네주었는데, 그것을 잃어버린 아버지는 유경을 도둑년이라고 부르면서 마구 때립니다. 비명을 지르면서도 절대 자기가 훔쳐가지 않았다고 애원하며 꼼짝도 못하고 얻어맞는 유경의 모습은 그저 가엾고 진실하게만 보였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돈봉투를 훔친 사람은 정말로 유경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고아원을 전전하면서 잔뼈가 굵어 어른이 되었고, 운동권 활동을 하다가 끌려가서 고문도 당해 보았습니다. 겉으로는 맑고 청순해 보이지만, 사실은 산전수전 다 겪은 아가씨가 바로 신유경입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그녀의 삶에는 이미 수 차례의 고비가 있었고, 그 가파른 산등성이를 넘을 때마다 신유경은 변화했습니다. 이렇게 역동적인 캐릭터를 표현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일단 외모적인 면에서도 유진은 신유경 역에 맞춤형입니다. 윤시윤과 주원에 비해 너무 나이들어 보인다는 의견도 있지만, 저의 기준으로는 그 정도면 무리가 없어 보이더군요. 오히려 너무 어리고 순진해 보이는 외모였다면, 신유경이라는 캐릭터와 잘 어울리지 않았을 거예요. 부잣집 귀공자로 곱게 자란 구마준보다 성숙해 보이는 것은 당연하고, 김탁구는 아무리 고생을 하며 살아왔어도 천성이 너무 단순한 녀석이라 내면에 복잡한 것을 숨기지 못하는 성품이니 역시 신유경보다 좀 어려 보이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유진의 연기력이 그 동안 얼마나 일취월장했는지를 저는 15회에서 절실히 느꼈습니다. 여왕다운 카리스마가 넘치는 전인화 앞에서도 그녀는 조금도 기가 죽거나 빛을 잃지 않았습니다. 조금도 흥분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나직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자기의 입장을 또박또박 말하는 유진은 그대로 신유경이었습니다. 속에는 상대방을 향한 증오와 분노를 가득히 담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지극히 조용하고 사무적인 태도로, 마치 아무런 사심이 없다는 듯 위장하고 있었지요. 그 모습이 너무 신유경다워서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대사 처리였습니다. 목소리의 톤과 울림, 억양, 발음 등이 거의 완벽하더군요. 눈빛이나 표정 연기도 중요하지만, 연기에 있어 신인과 베테랑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대사에서 드러나는 법이지요. 예고도 없이 회사를 찾아온 서인숙과 비서로 근무 중이던 신유경이 단 둘이 마주하는 장면은, 제가 개인적으로 뽑은 15회의 백미였습니다. 전인화와 유진, 두 여배우의 서로 다른 카리스마 연기가 불꽃을 일으키며 화려한 대결을 펼쳤는데 정말로 볼만했거든요.


신유경은 경찰서에서 냉혹한 세상의 끝을 경험하고 풀려나, 구마준과 서인숙으로부터 인격적 모욕까지 당한 후, 결코 순수하다 할 수 없는 복수의 칼날을 품고 거성그룹에 입사했습니다. 그 복수는 이 세상을 향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일단은 거성을 상대로 한 것입니다. 과연 그녀가 어떤 방식으로 자기의 목표를 실현시켜 나갈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칼을 품고 거성의 심장부에 잠입하는 데에는 성공한 셈입니다.

만약 구일중(전광렬)과 서인숙이 사이 좋은 부부였다면, 신유경의 계획은 시작도 못 해보고 끝나 버렸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현재 그들은 사이가 더 이상 안 좋을래야 안 좋을 수 없는 냉담한 부부이기 때문에, 서인숙이 아무리 신유경을 눈엣가시로 여긴다 해도 구일중은 그녀를 내쫓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15회에서 자기 아내에게 모욕당하는 것을 본 구일중은 오히려 신유경을 눈여겨 보게 되었고, 이제는 비서실장 한승재도 직권을 남용하여 그녀를 퇴사시킬 수는 없을 듯 하군요. 게다가 구마준은 아직도 그녀를 포기하지 못했으니, 그녀의 계획이 무엇이든 신유경의 앞날에는 일단 청신호가 켜졌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진의 연기력도 좋지만, 우선은 신유경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좋습니다. 가장 역동적이고 드라마틱해요. 최근 2년이라는 세월 동안 오직 신유경만이 눈에 띄는 발전과 변화를 이룩했고, 그래서 유진은 새로운 스타일의 연기를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지요.


2년 내내 오븐 뚜껑도 열지 못하고 지내 온 김탁구와, 아직도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파티쉐로 인정받지 못하고 혼자서 케잌을 만들고 있는 양미순(이영아)과, 여전히 질투심에 불타서 앙앙불락할 뿐 조금도 성장하지 못한 구마준 등의 캐릭터는, 솔직히 신유경에 비하면 초라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도대체 왜 타임워프가 있었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 거의 발전하지 못한 그들의 모습은 답답했어요.

심지어 고재복은 2년 전에 가스 밸브에 칼집을 내더니만, 2년 후에는 밀가루에 소다를 타고 있군요. 아무 성과도 없는데 2년 내내 고재복이라는 녀석을 통해 그런 치사한 사주나 하고 있었던 한승재도 한심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고 보면 2년이라는 시간은 오직 신유경을 위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어쨌든 이제 결전의 날이 다가옵니다. 팔봉 선생(장항선)의 인증서를 받기 위한 시험은 코앞으로 닥쳐왔고, 고재복의 소다 장난으로 김탁구와 구마준은 위기에 처했습니다. 서인숙은 그러잖아도 신유경 때문에 골치가 아파 죽겠는데, 설상가상 자기에게 협박 편지를 보낸 사람이 믿었던 한승재였음을 알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한승재가 아닌지도 모르지만 일단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 게다가 김미순은 닥터윤과 더불어 차츰 돈의 권력을 행사하며 서인숙의 목을 죄어 옵니다.

다음 회에서는 김탁구가 고재복의 멱살을 잡고 한승재를 찾아갈 모양이더군요. "실장님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내가 지금 회장님을 찾아 올라가 내 존재를 밝혀 버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라고 대담하게 정곡을 찌르는 탁구를 보니 속이 시원하긴 한데, 최후의 수단을 미리 말로 상대에게 터뜨리는 것을 보니 왠지 불안합니다.


하여튼 회를 거듭할수록 흥미진진해지는 '제빵왕 김탁구' 입니다. 단정한 자태와 나직한 목소리로, 소름끼치도록 차분한 신유경의 야누스적 캐릭터를 보여줄 유진의 연기력이 오늘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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