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STORY 2014 우수블로그
TISTORY 2012 우수블로그
TISTORY 2011 우수블로그
TISTORY 2010 우수블로그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제빵왕 김탁구' 한승재의 오래된 일기장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제빵왕 김탁구

'제빵왕 김탁구' 한승재의 오래된 일기장

빛무리~ 2010. 7. 24. 15:41
반응형






1965년, 내 아들 마준이가 태어나던 날...

인숙이가 결코 내 여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아름답고 도도하고 부유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내가 감히 그녀를 욕심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가질 수 없더라도 나는 그녀를 바라보고 싶었다.

평생 일중이의 밑에서 허리를 숙이고 살아가기로 결심한 것은, 달리 살 길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일중이의 품에 안겨 있는 인숙이를 보는 것이, 그녀를 못 보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었다. 그래, 나는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미친 놈이었다. 내 영혼은 삽시간에 그녀에게로 빨려들어가 버렸다. 그녀를 빼고 나면, 내 안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일중이 곁에서 행복하지 못한 그녀를 보며, 나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유혹에 시달렸다. 그녀가 기꺼이 나를 따라오리라는 확신만 있었다면...... 하지만 나는 인숙이가 어떤 여자인지를 알고 있었기에, 그 유혹은 내 가슴 속에서만 회오리칠 뿐 밖으로 터져나오지 못했다. 일중이가 그녀의 얼굴조차 제대로 쳐다보지 않아도, 일중의 어머니가 그녀를 아이 낳는 기계처럼 취급해도, 인숙이는 내 손을 잡고 이 집을 떠나려 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둘째딸 자림이를 낳고 제대로 몸도 추스르기 전에 그녀는 다시 아들을 낳으려 온갖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고, 그런 인숙이를 무력하게 바라보면서 나는 점차 사람이 아니라 바윗덩어리가 되어가는 듯했다. 그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정녕 아무것도 없단 말인가? 그렇게 온 몸이 굳어가던 어느 날...... 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일중이와의 사이에서는 아들을 얻을 수 없을 거라던 점쟁이의 말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녀가 나를 사랑해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내가 사랑한 인숙이를 통해 내 아들이 세상에 태어났다. 세상 그 누구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나는 결코 가질 수 없는 여자였던 인숙이를 가졌다.

갓 태어나 가냘픈 숨을 내쉬는 저 아이를 위해 나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고, 그래서 더 이상 생명 없는 바윗덩어리로 살아가지는 않아도 될 것이다. 내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1976년, 내 아들과 처음으로 눈을 마주치던 날...


마준이가 어느 새 열 두 살이 되었다. 그 아이는 인숙이의 모든 것이었고, 또한 나의 모든 것이었다. 인숙이는 마준이를 구일중의 후계자로 만드는 데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마준이는 반드시 구일중을 넘어서서 더 큰 인물이 되어야 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잃고 일중이의 곁에 빌붙어 성장했던 나는 결코 일중이보다 앞설 수 없었지만, 내 아들은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다. 마준이의 성공은 단 한 번 꿈조차 꾸지 못하고 살아 온 내 인생에 대한 보상이었고, 인숙이를 불행한 여자로 만든 일중이에 대한 복수였다.


"마준아, 너는 네 아버지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될 거다. 더 크게 성공할 거야. 내가 너를 꼭 그렇게 만들어 주겠다." 내 말을 들은 마준이는 눈을 반짝거리며 소리쳤다. "아저씨가 뭔데? 실장 주제에... 아저씨가 뭔데 나를 그렇게 만들어 줘요?" 나는 대답했다. "나는 너를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사람이다."

순간 마준이가 정색을 하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이제껏 한 번도 내 얼굴을 제대로 쳐다본 적도 없는 아이였다. 처음으로 내 아들과 눈을 마주치던 순간의 느낌을 어떻게 형언할 수 있을까? 그래, 네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다. 내가 누구인지를 몰라도 좋고, 내 마음을 짓밟아도 좋다. 나는 너를 위해 죽어도 좋은 사람이다.


1976년, 밤새 폭풍우가 몰아치던 그 새벽...


"인숙아, 내가 있는 한 너와 마준이는 잘못되지 않아."

방에서 깊이 잠들었어야 할 노인네가, 내리는 빗속을 뚫고 한밤중의 작업실에 나타날 줄을 누가 알았을까? 운명은 언제나 방심한 순간에 뒤통수를 치곤 했다.

일중이는 청산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인숙이가 공장으로 쫓아가서 마준이를 데려왔기 때문에, 청산에는 일중이와 탁구, 그리고 김미순 그 여자만이 남아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인숙이는 넋이 나갔고, 나는 그런 인숙이 때문에 화가 났다. 이제껏 한 번도 자기를 돌아봐주지 않는 일중이를 마음에서조차 놓지 못하는 그녀를 보면서 내 속에 쌓여 왔던 안타까움이 한꺼번에 폭발했던 거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화를 냈다.

인숙이는 나를 안으며 말했다. "당신은 내 남자이고, 내 아들의 아버지야.." 나는 물론 알고 있었다. 나를 지금껏 사람으로 숨쉬며 살게 하는 이유가 그것인데, 내 어찌 한 순간인들 잊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녀의 입으로 확인하는 느낌은 황홀했다. 그런데...


백발이 성성한 일중의 어머니가 문 앞에 서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려 한다. 이 노인네가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이상, 우리의 꿈은 사라질 것이다. 인숙이와 마준이가 모든 것을 빼앗기고 쫓겨날 것을 생각하니, 순간 눈앞이 아득했다. 하지만 내가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그리고 단 몇 분 사이에 우리의 운명은 두 번이나 뒤집어졌다. 예상치 못한 사고로 한 사람이 죽었고, 그래서 죽을 뻔했던 세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빗속에 쓰러진 노인을 살리려 하지 않았음을, 남들은 범죄라고 부르겠지만 상관없다. 인숙이와 마준이를 구할 수 있는 길은 그뿐이었다. 노인이 무사히 방으로 돌아갔다면, 내 손으로 그 숨통을 조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비에 젖어 가냘프게 떨고 있는 인숙이는, 내 아들을 낳은 내 여자였다. 나는 결코 그 누구도 내 여자와 내 아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할 것이다. 언젠가 일중이가 비밀을 알게 된다 해도, 내가 있는 한 인숙이와 마준이는 털끝하나 다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인숙이가 조금만 더 나를 믿어 주기를 바랄 뿐이다.


▹▹ '한승재의 오래된 일기장' 은 제2편으로 이어질 예정이었으나, 캐릭터가 너무 망가지면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 Daum 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버튼을 누르시면, 새로 올라오는 제 글을 쉽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추천에는 로그인도 필요 없으니,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의 손바닥 한 번 눌러 주세요..^^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