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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예고 자살' 무엇을 의미하는가? 본문

나의 생각

'트위터 예고 자살' 무엇을 의미하는가?

빛무리~ 2010. 6. 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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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twitter)에 죽음을 예고한 뒤 실제로 목숨을 끊은 첫 사례가 발생했다는 안타까운 기사를 보았습니다. 20대 후반의 젊은이가 트위터에 "자살하려 한다. 그동안 감사했다"는 글을 남긴 뒤 사흘만에 목을 매어 숨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가족과 동료에게는 별도로 유서를 남겼으며, 유서에는 자신의 경제적 상황을 비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더군요.

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운 이유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자살을 예고했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죽고 싶은 마음이 없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버리고,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진심이라면 결코 그렇게 했을 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아무도 모르게, 홀로 조용히 떠나는 방식을 택할 것입니다. 정말 떠나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합니다.

자기의 계획에 방해가 되면 되었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 굳이 "나 자살하겠다"는 예고를 공개적으로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의 속마음은 누구라도 자기를 붙잡아 주기를, 간절히 말려 주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어쩌면 자기의 예고를 들은 친구들이 떠들썩하게 몰려와서 위로해 주기를 바랬을지도 모르지요.


이제껏 누군가 "자살하겠다"는 말을 입 밖에 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못된 장난' 쯤으로 치부해 버렸습니다. 관심을 받기 위한 어리광이며 투정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런 경우가 90% 이상이었지요. 그런데 이제는 쉽사리 단정지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느 사이엔가 '죽음'이라는 이름이 너무도 가벼워진 게 아닐까 싶군요. 차마 그럴 수 없으리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죽음을 선택하고 맙니다. 별 것 아닌 줄 알았던 '예고'가 그대로 '죽음'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예고 자살'을 통해서 현대인의 닫힌 마음을 봅니다. 타인에게 말 걸기, 그리고 타인의 말에 귀를 열기, 이 모두가 잘 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데도 "나 힘들다" 라든가 "도와 달라"는 말 한 마디를 건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오는 마지막 말이 "나 죽는다" 였는지도 모릅니다.

말을 걸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진심으로 건넸던 자신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거부당했던 기억들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내 말을 건성으로 듣고 딴소리를 했습니다. 누군가는 내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서 딴소리를 했습니다. 누군가는 내 말의 뜻을 알면서도 거부하고 반대했습니다. 또 최악의 누군가는 내 말의 뜻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고 일부러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여 왜곡했습니다. 이 모든 반응들은, 진심으로 말을 건넸던 내 마음에 고스란히 상처가 되어 돌아옵니다.

상처받아 본 사람은 그 아픔을 알기 때문에, 겁이 나서 이제는 감히 말을 건네지 못합니다. 삶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고 깊어지는데,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못합니다. 힘들다고 해봐야 사람들은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을 것이고, 이런저런 다른 말들로 또 다시 상처를 줄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을 다물어 버립니다. 차츰 타인에게 의지하고 기대하는 마음을 줄여 나가며, 포기하는 법을 배워 갑니다. 어차피 혼자 감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 여기고, 묵묵히 삶의 무게를 짊어집니다. 그렇게 점점 더 외로워지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 남습니다.


그런데 "나 죽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비교적 마음이 약하고 타인에 대한 기대와 애정이 큰 사람들이라고 생각됩니다. 관심받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을 좀처럼 포기하지 못할 만큼, 그들은 사람을 좋아했던 것이지요. 마지막 외침이었는데, 그 외침에 마음과 귀를 열어 준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그래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마지막 기대가 허물어지는 순간이, 어쩌면 진짜로 죽음을 결정한 순간이었는지도 모르니까요.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여 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제 주변에 약간 평범하지 않은 친구가... 표현이 좀 그렇긴 하지만, 약간 정신연령이 낮은 친구가 있습니다.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고통이, 그 친구에게는 몇 배로 심했던 모양입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직장생활로 인한 고통'이 꽉 채워져 있어서, 가끔씩 만날 일이 있을 때마다 앵무새처럼 똑같은 하소연을 했습니다. 심지어는 늦은 시간에 전화를 걸어서까지 똑같은 말들을 징징대는 어조로 늘어놓았습니다. 그러기를 1년이 가도, 2년이 가도, 3년이 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는 잘 들어주고 위로해주던 친구들이 나중에는 하나같이 진저리를 치며, 그 친구와의 만남이나 전화 통화를 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 그래도 다행히 그 친구는 잘 살아 있습니다.

그 친구에게는 그토록 절실한 문제였기에, 끊임없는 고통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렇게라도 털어놓고 싶었던 마음을,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현실적으로 감당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즈음 늘어가고 있는 '예고 자살' 현상 자체가 우리 모두에게 무거운 과제를 안겨 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이라도 더 용기를 내어 타인에게 말을 건네고, 조금이라도 더 마음을 열어 그 말에 귀를 기울이고, 조금이라도 더 오래 인내심을 갖고 위로해 주는 것... 말로는 쉽지만 행동으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싶을 정도로 어려운 과제를 우리는 떠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노력해야지요. 다만 하나의 목숨이라도, 하나의 영혼이라도 구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값진 일은 없을 테니까요.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정작 실천할 자신은 없어서 마음이 한없이 무거운 새벽입니다.


   
* 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dheltmrpf1?Redirect=Log&logNo=20092730116 
                     http://cafe.naver.com/pt2cy/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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