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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 작가의 여성관이 궁금해진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추노

'추노' 작가의 여성관이 궁금해진다

빛무리~ 2010. 2. 12.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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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 12회를 시청하면서 문득 그 작가의 여성관이 궁금해졌습니다. 드라마의 전개가 이미 중반에 접어들었음에도 여전히 비호감 모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주인공 언년이의 캐릭터를 보며,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주인공이 두 개의 이름을 가진 관계로 리뷰를 쓰면서 어떻게 호칭해야 할까를 한동안 고민했으나, 제 느낌에는 혜원이보다 언년이라는 이름이 그녀에게 훨씬 더 잘 어울리는 듯하여 앞으로도 계속 언년이라고 부를 생각입니다.)


'추노'에는 아찔할 정도로 멋진 남성 캐릭터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대길, 송태하, 최장군은 말할 것도 없고, 악역인 황철웅과 귀여운 바람둥이 왕손이, 궁녀를 사랑했던 우직한 한섬이 등의 남자들이 제각각 다른 매력을 발산하며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정말이지 다채롭고도 흥미로운 캐릭터들이 수두룩하게 포진되어 있어요.

그에 비해 여성 캐릭터는 상당히 초라합니다. 남성 위주의 사극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여주인공 언년이 한 사람을 제외한 다른 여성들은 생각해보면 모두 비슷한 것 같아요.


설화도 초복이도 주모들도... 모두 활발하고 적극적인 성격이며, 걸쭉한 입담을 거침없이 풀어낼 만큼 과감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에게는 부끄럼 없이 적극적으로 대쉬하는 스타일입니다. 하긴 발바닥에 땀나도록 매일 종종거려야 겨우 먹고 살 수 있는 하층민의 여성들이 얌전을 빼면서 앉아있어 봐야 누가 알아주지도 않을테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요. 그런 비슷비슷한 느낌의 여성들이 한 무더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편, 최고의 비중을 자랑하는 히로인, 언년이의 캐릭터는 그녀들과 아주 많이 다릅니다. 대길이가 야수같은 추노꾼이 된 것도 그녀 때문이고, 송태하가 넋나간 충신이 된 것도 그녀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녀의 기묘한 캐릭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녀는 노비 출신이면서도 가장 고귀한 양반의 혈통인 양 온갖 얌전은 다 빼는데, 의외로 남의 집에서 혼자 반나체 쇼를 벌이는 것에는 별로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녀는 너무 나약해서 어떤 위험에도 혼자 맞설 수 없습니다. 위험해지면 호각을 불어 송태하를 호출해야지요. 그러면서도 자존심과 고집은 무지하게 셉니다. 어떤 일들이 닥칠지 감당할 자신도 없으면서 무턱대고 혼자 가출을 감행할 만큼 자기 주관이 강합니다. 생판 남인 송태하에게 명백히 신세를 지는 처지인데도 공주처럼 당당합니다.


송태하가 자기 목숨을 구해준 일이 몇 번인데, 그의 이마에 새겨진 노비 문신을 보더니 무슨 말싸움이라도 하자는 것처럼 따지고 대들기도 합니다.  ("나리는 누구십니까? 노비이되 노비가 아니고, 쫓기되 쫓기는 것이 아니라니 무슨 말인지요? 그간 나리가 했던 어떤 말을 믿어야 하고, 어떤 말을 버려야 합니까?" 이렇게 따지자 송태하가 "그리 못 믿을 사람과 어찌 동행을 하십니까?" 라고 받아쳤고, 언년이는 "같이 가자 청한 것은 나리십니다." 라고 당당히 대답했지요. 무슨 선심이라도 써서 그와 동행해 준다는 듯...ㅎㅎ)

하여튼 10회까지 언년이는 민폐와 내숭과 뻔뻔함을 겸비한, 완벽한 비호감의 여주인공이었습니다. 특히 송태하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면서 끊임없이 민폐만 끼치고 있는 그녀의 역할에 대해, 시청자들의 엄청난 질타가 있었지요. 그 비호감은 원손 이석견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키스씬으로, 드디어 빛나는 정점을 찍게 됩니다.


하지만 정점을 찍었으면 내려올 때도 되었지요? 자기가 원손을 안고 다니겠다 고집하여, 결과적으로 소현세자의 충신들이 그녀 앞에 엎드려 절하는 기막힌 영광을 맛보기도 했지만... 어쨌든 땀을 뻘뻘 흘리며 원손을 안고 다니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고, 남정네들은 부엌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며 손수 밥을 짓겠다는 언년이의 모습은, 송태하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고 애쓰는 태도가 역력했기에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습니다. 완전 민폐형 캐릭터에서 이제는 약간 쓸모있는 캐릭터로 바뀌려나 싶었지요.


그런데 언년이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주변 상황은 또다시 그녀를 민폐형 인물로 몰아가고 있었습니다. 송태하와 더불어 모임의 지도자 역할을 맡고 있는 저 깐깐한 조선비가, 그녀의 존재를 두고 송태하에게 사정없이 태클을 걸어오기 시작했거든요. 따져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비록 여인이긴 하지만 어디서 뭘 하다 왔는지, 내력을 전혀 알 수 없는 인물이 그들 모임에 끼어든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불안하고 찜찜하겠습니까?

그러나 이미 언년이에게 푹 빠져버린 송태하는 그녀를 내보낼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오다가다 길에서 만났을 뿐인 그녀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동료들 앞에서 자신하며, 그녀의 불명확한 신분이 문제가 된다면 자기가 속히 그녀와 혼인을 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동료들의 불안감은 쉽게 잦아들지 않습니다. 어차피 내력이 확실하지 않은데 만약에라도 작정하고 스며들어온 첩자라면, 지금 당장 송태하와 혼인을 한다 해도 어떻게 그녀를 믿을 수 있는 근거가 되겠습니까? 급기야 조선비는 "송태하는 빛이 바랬다. 예전의 그 장수가 아니다" 라고 단언합니다.

송태하와 조선비의 대화를 들어보니 두 사람은 원래 추구하는 방향에 차이가 있는 모양이더군요. 그래서 어차피 지도층의 분열은 피할 수 없는 그들의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언년이의 존재로 인하여, 어렵게 결성된 충신들의 모임에 금이 가게 된 셈이니, 이거야말로 엄청난 민폐라 하지 않을 수 없군요. 하지만 그녀의 잘못으로 그리된 것은 아니기에 안스럽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송태하의 청혼을 받아들이는 언년이의 자세였습니다. 그녀는 위험을 함께 겪으며 송태하에게 수차례 목숨빚을 졌고, 최근에는 폭풍같은 입맞춤까지 경험함으로써 두 사람의 마음은 이미 통할대로 통한 상태입니다. 그녀도 일찌감치 송태하의 아내가 된 것처럼, 그들 모임의 안주인을 자청하고 나서는 듯한 태도를 보였고 말입니다. 무엇보다 현재 도망친 노비들의 신분으로 혁명을 준비하고 있는 그들의 입장은 결코 안정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누구에게라도 발각되면 모두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상태이지요.

그런 와중에도 송태하는 지도층의 분열까지 감수하면서 언년이를 감쌌습니다. 비록 조선비와의 마찰을 그녀가 직접 눈으로 본 것은 아니었지만, 자기의 존재가 환영받기 어려울 거라는 점은 그녀로서도 충분히 짐작했을 것입니다. 원손을 돌보겠다, 밥을 하겠다 하고 나섰던 이유는 물론 송태하의 일에 도움을 주고 싶어서기도 하겠지만, 어떻게든 자기의 위치를 확보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거라고 봅니다.


그런데 송태하가 무뚝뚝하게 "혼인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라고 말을 건네자, 언년이는 삐쳐 버립니다. 아무리 전시상황이라도 사랑 고백과 더불어 달달한 청혼의 말은 마땅히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혼인이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것인가요?" 하고 싸늘하게 따지더니 혼인을 거부하고 돌아앉습니다.

글쎄요. 만약 사극이 아니라 현대극이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데 남자가 "우리 결혼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라는 식으로 멋대가리없는 청혼을 한다면, 여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화가 날만합니다. 언년이의 반응은 딱 그런 상황에 어울리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러나 양반들 사이에 자유연애라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던 조선시대에, 무슨 달달한 말로 청혼을 받는 여자들이 그리 흔했겠습니까? 어디서 보고 들은 게 있어서 그런 청혼을 기대했던 걸까요?


예전 노비 시절에 조약돌을 쥐어주며 낭만적으로 사랑을 속삭이던 대길이와 연애해 본 경험이 있어서, 송태하의 무뚝뚝한 태도와 많이 비교되니 서운하여 그런 걸까요?

그러나 언년이에게 있어 송태하는 정인이기 이전에 너무나 고마운 은인이기도 합니다. 어떻게든 부드러운 태도로 그를 유도하여 자기가 원하는 청혼의 말을 이끌어내는 방법도 있었을텐데 그저 팩하고 토라져 버리니, 상황 파악 못하고 떼쓰며 칭얼대는 어린아이처럼 이기적이고 철없어 보이더군요.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어쨌든 결국은 그녀가 이겼습니다. 거절당한 송태하는 혼자서 얼마나 고심하고 연구했던지, 온 몸에 닭살이 돋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언어들로 이루어진 청혼의 말을 잔뜩 준비해다가 그녀 앞에 쏟아놓습니다. 그제서야 만족한 듯, 눈물어린 얼굴로 미소짓는 언년이... 그렇게 행복하게 혼인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어느 새 코앞까지 쫓아온 대길이가 서늘한 눈빛으로 숨어서 지켜보며 12회는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껏 많은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주인공 남녀의 멜로에 이토록 몰입이 안되기는 처음입니다. 감정이입이 되었더라면 송태하가 늘어놓은 청혼의 말들도 더없이 아름답고 달콤하게 와 닿았으련만, 밍숭밍숭하고 건조한 마음으로 들으니 도대체 손발이 오글거려서 못 들어 줄 지경이에요. 아무래도 여주인공 언년이의 캐릭터가 좀처럼 비호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작가의 여성관이 궁금해진 것은 그 때문입니다. 의도적으로 여주인공을 이렇게 매력없이 만들어 놓았을까요? 그럴 리는 없습니다. 매력적인 캐릭터는 드라마의 생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지금 '추노'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가장 큰 원동력도 매력적인 남성 캐릭터들이라 할 수 있구요. 더불어 여성 캐릭터가 살아나기만 하면 얼마나 금상첨화겠습니까? 여주인공을 일부러 비호감으로 만들어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작가의 시각에서는 언년이가 상당히 매력적이고 괜찮은 여자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언제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항상 뽀샤시하고 예쁜 얼굴과 정갈한 옷차림, 더불어 남자로서 꼭 보호해주어야만 할 것 같은 극도의 나약함, 기본적으로 얌전하고 조신해 보이지만 알고보면 의외로 부끄럼 없는 내숭형,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않으면 귀엽게(?) 삐치면서 투정도 할 줄 아는 여자다움, 그러면서도 언제나 당차게 자기 할 말을 내뱉을 줄 아는 당당함 (그게 당당함인지 뻔뻔함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어쨌든 일단 좋게 표현해서) 등등... 아무래도 작가가 생각하는 이상형의 여자는 저런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군요.


그래서 나름대로는 언년이를 예쁘게 표현한다고 한 것인데 저 모양이 되어버린 거라면, 안타깝지만 앞으로도 '추노'의 여주인공이 비호감의 늪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좀 답답하네요.

저는 이제부터 언년이 캐릭터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로 했습니다. 여주인공에게서 신경을 끄고 다른 쪽에만 집중하려는 것이지요. 과연 그게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회에서 언년이와 송태하의 염장씬을 목격한 대길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니, 저도 당분간 '추노' 중독에서 벗어나기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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