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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 오포교(이한위)의 섬뜩한 변화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추노

'추노' 오포교(이한위)의 섬뜩한 변화

빛무리~ 2010. 2. 11.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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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 11회는 비교적 평이하게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그 중 생각지도 않은 인물이 섬뜩한 변화를 보이며 시선을 사로잡았으니 바로 이한위가 연기하고 있는 오포교입니다.


지금껏 오포교는 추노꾼인 대길네와 천지호네를 비롯하여 방화백, 마의 등 저잣거리의 하층민들과 비교적 인간적으로 친하게 지내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큰 주모 작은 주모와도 스스럼없이 시시콜콜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지요.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오포교는 벼슬아치인 동시에 거간꾼입니다. 한편으로는 공직자로서 나랏일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양반들과 추노꾼들 사이에서 다리를 놓아주고 구전을 떼는 브로커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더불어 도망친 노비 큰놈이를 찾고 있던 대길 도령에게 추노 천지호를 소개해 줌으로써, 대길이를 추노의 세계로 이끈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결코 강직하거나 순수하거나 선량한 캐릭터라고 볼 수는 없지요. 오포교는 악역이 아닌 듯 하면서도 사실은 명백한 악역이며, 가장 간교한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동안 겉으로나마 소탈한 태도로 하층민들과 친하게 지내는 척 했던 것은, 그들에게서 심심찮게 공술도 얻어 마시고 뒷돈도 챙기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일 것이며, 또한 오늘처럼 필요한 경우에는 그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위기를 넘기려는 속셈이었습니다. 결국 하층민들은 오포교에게 있어 그 어떤 인간적인 의미도 없고, 다만 어느 정도의 이용가치가 있는 도구에 불과했던 것이지요.


송태하(오지호)를 잡으라는 상부의 명령은 추상 같은데 그의 꼬리조차 잡을 수 없으니 그의 입장은 날로 곤란해져 갔을 것입니다. 어느 날 오포교는 객주의 마방 관리자인 마의(윤문식)에게 속삭이기를 "밤새 수사하느라 애쓰고도 아무 소득 없이 관청으로 돌아가면 자기의 체면이 서지 않으니, 잠시 따라가서 몇 마디 조사만 받고 돌아오는 것으로 자기의 체면을 세워 주면 나중에 뒤를 잘 봐주겠노라" 하고 꼬드깁니다.


그러나 오포교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순순히 따라간 마의는 삽시간에 송태하의 일당으로 둔갑하여 체포되고 모진 고문을 당하기에 이르렀으니, 그 동안 쌓아 온 친분 따위는 한갓 물거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권력자인 벼슬아치 앞에 그들은 무엇도 내세울 것 없는 먹잇감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일전에 송태하가 일하던 훈련원의 병든 말을 끌고 마의를 찾아가 치료해 달라고 맡겼던 사실과, 나중에 마의가 그 말을 팔아버렸다는 사실을 오포교는 미리 조사해 두었을 것입니다. 송태하를 잡지 못하니 그의 끄나풀이라도 잡아야만 상부의 추궁을 면할 상황에 처한 오포교로서는 어떻게든 송태하와 엮을 인물이 필요했을 터이고, 그 함정에 마의가 제대로 걸려들어간 것이지요.

마의는 단지 맡겨 둔 말을 찾으러 오지 않으니 팔아서 돈을 챙겼을 뿐이건만, 이제는 영락없이 훈련원 말을 빼돌려 팔아서 송태하의 도망 밑천을 대어 준 그의 일당이 되고 말았습니다. 벼슬아치가 그렇다면 그런 것입니다. 아무도 마의의 편에 서 주지 않습니다.


이렇게 억지로 범인을 만들어서 체포 실적을 올린 오포교는 형식적으로나마 증인이 필요했지요. 그는 한밤중에 잠자리에 들었던 주모들을 잡아다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협박하여 자기가 원하는 증언을 확보합니다. 겁에 질린 작은 주모가 나서서 "다리를 저는 관노가 마의를 찾아와서 말을 맡기는 것을 보았노라" 고 증언했던 것입니다.


큰 주모(조미령)는 오랫동안 마의로부터 은근한 눈길을 받으며 나름대로 정이 들었던지 차마 안타까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으나, 그 상황에서 마의를 감싸봤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채 자기만 덩달아서 경을 칠 것이 뻔하기에 아무 말 하지 못합니다.


힘있는 자와 힘없는 자의 대비가 더할 수 없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이었습니다. 비정한 힘의 논리 앞에 약자들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힘있는 벼슬아치의 간교함 앞에서는, 사랑도 의리도 인정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하층민들은 언제 끌려가 누명을 뒤집어 쓰고 죽을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니 어찌 내일을 기약할 수나 있었을까요?

우리나라의 인사말 "안녕하십니까?" 는 원래 "얼굴 못 보는 동안 나쁜 일 당하지 않고 무사하십니까?" 라는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는 매우 특이한 인사말이라고 합니다. 일례로 영어의 "Good morning!" (좋은 아침!) 이라는 인사말과 비교하더라도 큰 차이를 느낄 수 있지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고도 하소연할 곳 없는 하층민들의 설움을 보니, 어째서 인사말조차 저렇게 한스러운 표현을 쓰게 되었는지를 알 것도 같다는 생뚱맞은 생각이 문득 들더랍니다. 물론 지금에 와서야 의미가 변형되어 단순한 인사말로 쓰이고 있을 뿐이지만요.


이한위의 능청스런 연기력은 오포교 캐릭터를 120% 감칠맛나게 살려주었습니다. 평소에는 농담 잘 하는 이웃집 아저씨 같다가, 일단 간교한 본색을 드러내고 나서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그 철면피한 모습이 어찌나 섬뜩하던지요. 이 정도쯤은 매일 밥 먹고 똥 싸는 일처럼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한 사람을 억울하게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뜨려 놓고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니, 마치 현실 속에 존재하는 그런 자의 모습을 보는 듯하여 소름이 끼쳤습니다.


'추노'에서 보여주는 하층민들의 고달픈 삶은 너무도 리얼하여, 날카롭게 가슴을 찌릅니다. 그래도 우리가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시청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시대적 배경을 달리 하고 있어서일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어딘가에는 오포교나 마의와 같은 사람들이 존재하여, 누구는 억울하게 모든 것을 잃는가 하면, 누구는 중간에서 이득을 취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이 드라마는 적잖이 코믹한 요소를 내포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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