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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 절대악 이경식의 애끓는 부정(父情)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추노

'추노' 절대악 이경식의 애끓는 부정(父情)

빛무리~ 2010. 3. 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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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라마에서 악역의 위치는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원래 악역이란 시청자들에게 미움받는 존재였으나 이제는 별로 그렇지도 않지요. 오히려 강렬한 매력과 포스를 물씬 풍기며 주인공을 능가하는 인기를 얻는 악역이 많습니다.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도 원래는 주인공 덕만(이요원)과 대칭점에 놓이는 명백한 악역이었으나 그 엄청난 존재감은 주연을 뛰어넘어 사실상 '선덕여왕'을 미실의 드라마로 만들어 버렸었지요.


저의 개인적 견해로 '추노'는 명품 사극이긴 하지만 '선덕여왕'에 비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역동적인 화면 구성이나 액션 등을 생각해 본다면 물론 '추노' 쪽이 앞선 부분도 존재하지만, 제가 가장 중점을 두고 시청하는 인물 심리면에서는 뚜렷하게 어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큰 주모(조미령), 작은 주모(윤주희), 방화백(안석환) 등 감초들의 캐릭터는 분명한 빛깔로 다가오는데, 주연과 조연들의 심리는 대체적으로 아리송하며 깊이 와닿지 않더군요.

계속해서 "그는 지금 이러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그런 줄 알아라." 이런 식으로 강요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대체 왜 그런 감정을 느껴야만 하는 것인지는 공감이 안되는데 말이지요. 뭐 그렇다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보기는 하는데, 감정이 저절로 우러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우겨넣는 식이 되고 보니 대략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드라마가 시작되던 초반부에 제가 기획했던 '추노' 편지시리즈를 쓰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캐릭터와의 감정 일치를 좀처럼 끌어낼 수가 없거든요.


살짝 옆으로 샌 듯 하지만, 캐릭터가 얼마나 감정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제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매력적인 악역의 문제와도 결부됩니다. 어제 17회를 시청하고 나서, 저는 갑자기 이경식의 캐릭터에 살짝 꽂히고 말았거든요. 남들에게는 냉혈하고 비정하기 이를데 없으나, 평생 육신의 굴레에 갇혀 살아야 하는 비참한 딸 선영(하시은)을 대할 때만은 평범한 아버지의 애끓는 심정으로 돌아가는 그의 모습이 예고편에 등장하면서, 생각지도 않은 눈시울마저 붉어져 오더랍니다.

이경식의 존재는 '추노'에 있어 가히 절대악이라고 할만합니다. 그의 윗선에 임금 인조가 있기는 하지만, 모든 악한 일들을 실질적으로 계획하고 진행하는 중추 세력은 바로 이경식입니다. 아랫사람을 대할 때에도 절대 막말이나 하대를 하지 않고, 약간 심하다 싶을 만큼 존칭을 사용하는 차분한 말투는 오히려 그의 냉혹한 성정을 반영하는 듯하여 오싹한 한기를 들게 하지요. "변명은 하실 필요가 없으시네." 이 조용한 한 마디는 "저놈을 잡아 가두어라!" 는 큰 소리보다도 훨씬 무섭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제가 이경식의 캐릭터에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악행을 정당화하려 하지 않고, 감정 표현이 오버스럽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비정한 권력욕의 화신일 뿐, 자신의 행위에 어떤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껏 그의 개인적 감정은 거의 드러나지도 않았습니다. 약간 아이러니하지만 저는 그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감정 표현은 엄청나게 오버스러운데, 정작 공감이 되지 않으면 그것처럼 당혹한 일이 없거든요. 연기자는 미친듯이 포효하며 울어대는데 그걸 멀뚱히 보면서 "왜 저래?" 하고 있는 기분이란...-_-;; 그런데 처음으로 얼핏 드러난 이경식의 어리석기 짝이 없는 부정(父情)은 오버스럽지 않으면서도 충분한 공감을 일으켜 주었습니다.

이경식은 어리석은 인간입니다. 평생 머리를 쓰는데만 익숙했을 뿐, 가슴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에는 서툴기 짝이 없는, 그래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아픔을 주고 있는 가엾은 인물입니다. 어쩌면 성치않은 육신을 지닌 딸 선영은 그의 비뚤어진 인생에 하늘이 내리신 벌인지도 모르지요. 차라리 자식에게도 비정한 아비일 수만 있었다면 그에게는 나았을 터이나 불행히도 그럴 수 없었기에, 선영의 존재는 그에게 천형(天刑)이 되고 말았습니다.


"살지 못하는 것보다 죽지 못하는 것이 더 비참한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비참한 게 무엇인 줄 아느냐? 그런 딸을 바라보는 아비의 마음이다. 내 너를 네 남편에게 맡겨두고 가야 하니, 네 남편을 완전한 내 사람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죽으려 마음먹어도 죽을 수조차 없는 딸에게 이경식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자기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진정 딸을 위한다면 사위를 그런 방법으로 맞이해서는 안 될 일이었고, 사위를 그렇게 대해서도 안 될 일이었지요.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사위 황철웅은 그의 사람이 되기는 커녕 그의 턱밑에서 칼을 겨누는 최대의 원수가 되어 버렸고, 그의 앞길에는 몰락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사방에서 그에게로 겨누어진 수천개의 화살과 더불어, 딸의 평생을 맡기려 했던 사위의 칼날이 그의 심신을 난도질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뚜렷이 전달되는 감정선으로 인해, 이경식은 지금까지 보여주던 평면적이고 정형적인 캐릭터에서 벗어나 꽤나 매력적인 악역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추노'에서 악역들의 매력이 충분히 어필되지 못하여 언제나 안타까웠는데, 절대악 이경식에게서 한 줄기의 인간적인 면모가 엿보이며 그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살아나니 참 다행입니다. 딸자식을 향한 그의 애틋한 마음... 그리고 숨긴 채 벼르던 칼을 뽑아드는 사위의 서늘한 눈빛을 보고 당혹하며 무너져갈 이경식... 오늘 방송에서는 그를 좀 더 주의깊게 지켜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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