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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 황철웅과 피겨요정 김연아의 차이점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추노

'추노' 황철웅과 피겨요정 김연아의 차이점

빛무리~ 2010. 2. 1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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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항상 네가 나보다 낫다고 생각했겠지.
그게 바로 내가 지금 너를 죽이려는 이유다." 
                                   - '추노' 공식 홈페이지, '황철웅' 인물 소개 첫 문장

'추노'에는 황철웅이라는 이름의 악역이 등장합니다. 출중한 연기력의 배우 이종혁이 서늘한 눈빛으로 열연하고 있지요. 그에게서 매력적인 악역을 보고 싶었는데, 저는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 그의 매력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 그에게서 풍기는 어떤 비감한 분위기... 아무리 애를 써도 1인자가 되지 못하는 살리에르의 슬픔이랄까, 그런 면에서 적잖은 공감과 매력을 느끼시는 모양이더군요.


그래서 2인자에 머물 수밖에 없는 고통이 그렇게까지 큰 것일까 하고 저도 생각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공감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송태하에게 특별히 원한을 가질만한 다른 이유는 전혀 없었습니다. 부모를 죽인 원수도 아니고, 집안을 망하게 한 원수도 아니며, 사랑하는 여자를 빼앗긴 일도 없습니다. 송태하는 황철웅에게 아무것도 잘못한 일이 없으며, 오히려 전쟁터에서 생명을 구해준 적 있는 은인입니다. 그런 송태하를 단지 '질투심' 만으로 불공대천지 원수처럼 미워하여, 죽이거나 파멸시키고 싶어하는 황철웅을 저는 이해할 수 없더군요.


가난한 집안에서,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라긴 했으나 그 외에는 크게 가슴에 사무칠만한 트라우마를 겪은 일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의 아킬레스건은 오직 1인자 송태하에 대한 미친 질투심뿐입니다. 그 질투심이 점점 강해지면서 황철웅의 내면에 약간이나마 존재하던 인간적인 마음과 올바른 양심 등을 모두 갉아먹어 버렸습니다.


장인 이경식에게서 도구처럼 이용만 당할 뿐 가족으로서의 따스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설움도 있겠으나, 그 또한 출세에 눈이 멀어 그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에 다른 누구를 탓할 입장이 되지 못합니다. 장인에게서 받은 상처 때문에 마치 화풀이라도 하듯 몸이 성치 않은 아내에게 더욱 모진 말을 하여 상처를 주는 그의 모습에도 공감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떤 분은 오히려 송태하가 자기 목숨을 구해주었던 사건이 더욱 황철웅의 컴플렉스를 건드리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을 거라고 하시더군요. 맞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황철웅은 꼭 그 정도의 사람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연민을 느끼기보다는 "그 인간 참 못났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황철웅은 얼마든지 인간답게 훌륭한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질투심 하나 이기지 못해 자멸의 길로 걸어들어가는 어리석은 악역입니다.

*******

피겨요정 김연아 선수에게는 많은 별명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대인배'라는 별명입니다. 그 별명이 말해주듯이 그녀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대범하고 의연합니다. 자기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도, 그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많은 일들과, 유쾌하지 못할만한 여러 사건들에 대해서도 그녀는 집착하거나 얽매이지 않는 쿨함을 보여줍니다.


저는 약 1년 전쯤, 김연아 선수가 쓴 '희망편지'라는 기고문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녀의 소탈하고 대범한 성격과 어른스러운 사고방식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글이었기에 수없이 감탄을 하면서 읽었고, 아직도 깊은 인상으로 제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 중 일부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한국에서의 첫 국제대회(피겨스케이팅 그랑프리 파이널)를 마친 지 벌써 보름이 넘었네요. 2위를 하고 난 뒤에 '수고했다', '아쉽다',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라는 말씀을 많이 들었어요. "왜 아무도 축하한다는 말은 안 하지? 2등은 축하받으면 안 돼?"라고 제가 묻자 어머니는 웃으시면서 "네가 어떤 기분일지 모르니까 조심스러워서들 그러는 거지"라고 하셨어요.

솔직히 제가 1등을 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분들이 많다면 저에게는 부담이 될 것 같아요. 이번에도 2등이었잖아요. 1등을 위해서 스케이팅을 했다면 훨씬 전에 그만뒀을지도 몰라요. 다른 선수들처럼 저도 큰 부상이 있었고, 예전엔 부츠 문제로 선수 생활을 포기할 뻔한 일도 있었고…. 그럴 때마다 꼭 1등을 해야겠다는 욕심보다는 연기를 할 때 떠오르는 그 즐거움, 발끝의 느낌을 잊지 못해서 다시 얼음 위로 돌아갔던 것 같아요.

김연아의 '희망편지' 전문 보기


나이를 만으로 따지면 아직 스무살도 채 못 된 소녀이건만, 그녀는 웬만한 어른보다 나았습니다. 확실히 세계적인 영웅은 타고난 그릇부터가 다른가봐요. 그녀는 분명히 상대방보다 훨씬 나은 실력을 가졌으면서도 억울하게 패배한 적이 많았지요. 그녀 자신이 실수를 한 적도 있었고, 불공정한 채점 등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그렇게 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연아는 크게 실망하거나 불복하는 태도를 보이는 법 없이, 그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갈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한때 그녀의 라이벌이었던 일본 선수에 대해서 안좋은 말들이 잔뜩 들려올 때, 오히려 자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인터뷰 중에 말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가식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친구도 많이 노력해서, 힘든 거 참으면서 꾸준히 노력해서 지금 그 자리까지 온 건데, 그것을 모두 속임수라고 하면 안되죠.." 라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자신의 고통과 노력만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과 노력도 똑같은 무게로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김연아, 그녀는 진정한 대인배였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1인자의 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너그러울 수 있는 것이라고, 만약에 아무리 노력해도 1인자가 될 수 없는 2인자의 한계를 느끼는 입장이라면 지금처럼 대범할 수는 없을 거라고 말이지요. 글쎄, 그럴까요? 제가 보기에 그것은 1인자와 2인자의 차이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타고난 심성의 그릇 차이라고 보여질 뿐입니다.

2인자의 위치에서 호시탐탐 1인자의 자리를 노리며, 질투심을 불태우고 전전긍긍하던 사람은 마침내 1인자의 자리에 올라서서도 언제 그 자리를 뺏길지 몰라 또 전전긍긍할 것입니다. 반면 1인자니 2인자니 하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고 평온한 마음으로 자기의 일을 능력껏 즐기면서 하는 사람은, 끝내 1인자가 되지 못한다 해도 아무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김연아는 그런 대범한 성품과 더불어 1인자의 출중한 능력을 함께 지녔을 뿐이지요.


황철웅을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약간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렇게 비교하고 보니, 저는 더욱 그 캐릭터가 매력없게만 느껴집니다. 만약 그의 과거에 좀 더 아픈 상처나 원한이 존재했다면, 지금 솟구쳐오르는 그의 분노에 타당성을 부여해서 공감을 일으킬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까지 보아 온 내용상 그가 악인이 된 원인은, 그냥 그 자신이 소인배라서 그렇게 되었을 뿐 다른 이유는 없어요.

그가 그토록 원하던 1인자가 아니라 한 번도 원해 본 적 없는, 그가 되려고 시도하거나 노력조차 해 본 적 없는, '대인배'가 될 수만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매력적인 악역이 아니라 다만 가련한 악역에서 머물고 있는 황철웅의 캐릭터를 매우 안타깝게 여기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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