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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더 이상 평균 이하 못난이들의 도전이 아니다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무한도전' 더 이상 평균 이하 못난이들의 도전이 아니다

빛무리~ 2010. 2. 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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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무한도전'을 보았습니다. 한때는 저도 '무한도전'의 애청자였는데, 언제부턴가 조금씩 멀리하게 되더니 한동안 시청하지 않고 있었거든요.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무한도전'이 만만치 않은 중량감의 메시지를 담기 시작하면서부터, 예능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저의 개인적 취향과는 조금씩 어긋났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예능을 보면서 그저 가벼운 웃음으로 일상의 무게와 고통을 날려버리고 싶어했던 저에게는 그 묵직한 메시지들이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도 같아요.


어쩌다가 참으로 오랜만에 시청하게 된 '무한도전'은 F1 특집이었습니다. 차량에 대한 지식이 전무(全無)한 저로서는 대체 F1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기 위해서도 설명을 대충 들어서는 안되고 주의 집중이 필요하더군요. "확실히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에는 약간 부담스러워졌어~" 고개를 살짝 저으면서도 왠지 모를 흡입력에 빨려들듯 계속 보고 있었습니다.

후발대로 합류했으면서도 마치 전문 카레이서처럼 막강한 실력을 보여준 유재석은, 뭐랄까 대낮의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더군요. 아직은 그의 시대가 한참 더 남았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미 정점을 찍었으나 서쪽 하늘로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 태양... 크고 우렁찬 엔진소리와 함께 거침없이 스피드를 즐기며 달리는 그의 모습은 뜨겁게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멋있었습니다.


유재석은 정상의 자리에서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히 보입니다. 정준하와 길의 사이에 끼어탄 채, 깜짝 카메라를 당하던 유재석의 모습 중에서 제 눈에 가장 인상적으로 띄었던 부분은 비명을 지르는 얼굴이 아니라 예상외로 굵고 튼실한 팔뚝이었습니다. 안경 쓴 그의 얼굴은 언제 보아도 강함보다는 약함의 이미지에 가까운데, 어느 새 그의 몸은 약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강한 남자의 몸으로 거듭나 있었군요.

'무한도전'의 시초는 2004년의 '무모한 도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독립 프로그램이 아니라 토요일 저녁 예능의 한 코너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야말로 죽을 고생을 하면서도 왜 그런 도전을 했는지 이유조차 알 수 없었던, 참으로 무모하고도 가엾은 예능이었지요.


이를테면 대중목욕탕의 크기가 똑같은 두 탕 안에 물을 가득 채워 놓고, 한쪽은 사람의 손으로 물을 퍼내고 다른 한쪽은 배수구를 열어놓는 식이었습니다. 배수구에서 물 빠지는 속도보다 빠르게 물을 퍼낸다고 해서 얻을 것도 없건만, 그들은 매주 체력고갈 상태가 될 때까지 그런 무모한 도전을 계속했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지쳐서 나가떨어졌던 멤버는 바로 유재석이었지요. 어떻게든 열심히 해보려는 마음가짐은 그때도 역력히 드러나 보였으나, 도저히 체력이 따라주지 않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나날이 국민MC로서의 명성은 더욱 드높아지고 스케줄은 더욱 빠듯하게 그의 생활을 압박했으련만, 어느 틈에 그렇게 운동을 해서 체력을 키우고 몸짱까지 되어버린 걸까요?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너무 완벽해서 할 말을 잃을 지경이에요. 오죽하면 같은 멤버들조차 유재석의 레이싱을 보고 경탄하는 모습들에서 존경심이 뚝뚝 떨어지더군요.


그리고 제 눈에 매우 신선한 모습으로 들어온 또 한 멤버가 있었으니, 생각지도 않았던 박명수였습니다. 사실 저는 '호통개그' 와는 굉장히 코드가 맞지 않기 때문에 그를 한 번도 좋아해 본 적이 없습니다. 버럭대는 호통소리를 들으면 저는 불쾌감이 치밀고 짜증이 나거든요. 설정과 캐릭터 때문이라는 것을 알지만, 제가 싫어하는 모습을 줄창 내보이고 있는데 굳이 좋아질 이유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꾸준히 시청하고 있던 '해피투게더'에서는 도대체 왜 그 자리에 앉아 있는지조차 의문스러울 만큼 박명수의 역할이 미미했습니다. 재치있는 언어를 구사하지도 못하고, 예전처럼 자신있게 호통을 치지도 못하고(비록 저는 싫어하는 스타일이었지만 그래도 일종의 개성이었는데 그조차 많이 죽었더군요), 박미선처럼 유재석을 보조하여 깔끔한 진행을 선보이지도 못하고 눌러 앉아만 있으면서, 개편 때만 돌아오면 자리를 뺏길까봐 노심초사하는 그 모습도 제가 보기에는 그저 비호감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시청한 '무한도전'에서는 어느 새 박명수가 어엿한 2인자로 자리잡은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멘트 좀 해보려고 하면 늘상 꼬이는 발음 때문에라도 1인자의 자리는 아직까지 요원해 보였으나,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서서 솔선수범하는 태도와 적극적인 자세는, 유재석 없는 동안의 1인자로서 손색이 없었습니다.

선발대 3명 중에서 박명수는 가장 연장자이며 체력도 약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차량에 제일 먼저 탑승했고, 겁 없는 레이싱으로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가장 실력 좋을 것 같은 노홍철이 계속 시동을 꺼뜨리며 출발조차 못하고 버벅대는 동안 '하찮은' 이라 불리우는 박명수는 의젓하게 앞서 나가다가 기다려주는 여유조차 선보이고 있었던 것이지요. 동생들을 거느리고 맏형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는 박명수의 모습이 제 눈에는 너무도 신선했습니다.


다음날 도착한 후발대를 골탕먹이며 재미를 주기 위한 '깜짝 카메라'를 이끈 것도 박명수였습니다. 카레이서 유경욱 선수와 더불어 공항까지 마중나가 모든 촬영을 주도했고, 나중에는 손수 한 번 더 시범을 보이기까지 했지요. 그러잖아도 혼비백산이 되어 있다가 명수가 핸들을 잡자 기겁하며 "형은 하지 마!" 라고 외치는 동생들의 모습에서 그야말로 빵 터졌습니다.

'무한도전'이 처음 시작할 때 슬로건으로 내세운 것은 "대한민국 평균이하의 여섯 남자들이 벌이는 무모한 도전" 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못난이들의 도전' 이라고 해도 좋았습니다. 최초의 '무모한 도전(무리한 도전)' 에서는 그들의 저질 체력을 보여 주었고, 한동안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거꾸로 말해요, 아하~' 에서는 그들의 저질 두뇌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따금 간식으로 주어지는 초코파이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그들이 안간힘을 다해 벌이는 배신과 다툼의 현장은, 비록 그것이 만들어진 상황이라 해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참 못났다" 라는 생각을 하게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무한도전'은 대한민국 평균 이하 남자들의 집단도 아니며, 그들이 벌이는 도전이 결코 무모한 도전도 아님을, 저는 F1 특집을 보면서 생생히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국민MC 유재석을 누가 진심으로 평균 이하의 남자라고 생각했을까마는 어쨌든 방송 중에는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가 있었거든요. 허약하고 겁 많은 모습만을 부각시키면서 말이지요. 어디까지나 예전에는 그랬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제 허약하지도 않고 겁도 없는 유재석은 명실상부한 강한 남자로 거듭났고,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호통개그로만 일관하며 딱히 하는 것도 없어 보이던 박명수는 솔선수범하여 아우들을 이끄는 듬직한 맏형으로 변모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준하, 정형돈, 길, 노홍철 네 사람도 결코 평균 이하의 못난이들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와는 완전히 프로그램의 컨셉이 달라져 버린 거예요.


아직도 '무한도전' 공식 홈페이지의 프로그램 소개에는 '대한민국 평균 이하임을 자처하는 여섯 남자' 라는 멘트가 걸려 있는데, 이건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적절한 검토를 거쳐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미 그들은 평균 이상이 되고도 넘쳐서 최고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보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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