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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 지훈은 모르고 있을까? 아니면 성격파탄자일까?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지붕뚫고 하이킥

'하이킥' 지훈은 모르고 있을까? 아니면 성격파탄자일까?

빛무리~ 2010. 1. 20.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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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뚫고 하이킥' 92회를 시청한 후, 제 머릿속은 혼란스러웠습니다. 대체 이지훈(최다니엘)의 정체는 뭘까요? 오늘 세경을 대하는 그의 행동을 보면 둘 중 하나라는 결론이 내려집니다. 그는 성격파탄자, 그러니까 원색적으로 말하면 진짜 나쁜놈이거나, 아니면 마음속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세경을 좋아하고 있거나, 이 둘 중 하나입니다.


저는 원래 지훈이 부지불식간에 세경을 좋아하고 있다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번 87회를 보고 난 후에도 '세경은 지훈과 준혁의 아픔이 되고' 라는 제목으로 리뷰를 올리면서 그러한 저의 생각을 풀어냈었지요. 그런데 저와 다른 생각을 하시는 분들의 리뷰를 읽어보고는, 근본적으로 굉장히 큰 차이점을 발견했습니다.
무엇보다 큰 차이라면, 지훈이가 스스로 세경에 대한 자기 마음을 정확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저의 생각과 달리, 그분들의 생각은 지훈이가 아주 명확히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세경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훈이 바보가 아닌 이상 어떻게 세경이 자기를 남자로 좋아한다는 것을 모를 수 있겠느냐,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다. 오히려 부담스러울 뿐이다. 그래서 수시로 세경에게 성공과 독립을 위한 격려를 하는 것이며, 자기를 향한 감정은 절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그분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읽고 보니 저로서도 확실히 그게 아니라고 자신할 수는 없더군요. 제 생각과는 다르지만 그분들의 생각에도 일리는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92회의 에피소드에서 보여준 지훈의 행동은, 자기를 향한 세경의 마음을 알고 있다면, 그리고 그 마음을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다면, 절대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었습니다. 만약 모두 다 알면서 그런 행동을 했다면 이지훈은 그야말로 진짜 나쁜놈이고 성격파탄자입니다.


낯선 곳으로 순재옹의 심부름을 갔던 세경은 뜻밖에도 지훈과 딱 마주칩니다. 마침 그 낯선 곳은 지훈이 다니던 대학 근처였던 것이지요. 학창시절의 은사님을 뵐 일이 있어서 모처럼 찾아왔던 지훈은, 교수님의 사정으로 즉시 뵙지 못하고 몇 시간 가량을 혼자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붕 떠버린 시간 속에서 세경과 마주쳤을 때, 지훈은 아무렇지도 않게 같이 밥을 먹자고 말합니다. 거기까지야 뭐 그럴 수도 있습니다. 머뭇거리던 세경도 결국 지훈을 따라나섰고, 욕쟁이 할머니의 국밥집에서 두 사람은 맛있게 식사를 합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학교 근처를 찾아온 지훈은 새록새록 옛 추억이 떠오릅니다.


자기를 향한 세경의 마음을 안다면, 그녀의 마음이 부담스러워서 정말 끊어내고 싶다면, 식사만 하고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훈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추억이 어린 장소들마다 그녀를 이끌고 다니며, 레코드점에서 함께 오래된 음악을 듣고, 헐리기 직전의 낡은 찻집에 마주앉아 커피도 마시며, 자신의 지난 이야기들을 그녀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약간 잡음이 섞인 LP의 음색으로 듣는 pale blue eyes는 그야말로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을 선사했습니다. 지훈이 자주 다니던 레코드점을 발견하고 들어서기 전에 함께 길을 걸으며, 세경이 그의 학창시절은 어땠느냐고 물었고, 지훈은 대답하기를 "그저 조용히 놀았다" 고 했지요. 그러자 세경은 살풋 웃으며 "어떻게 조용히 놀아요?" 하고 반문했구요.

지훈은 그 오래된 레코드점 한쪽 구석에 세경을 앉히고, 자기도 그 옆에 기대어 앉으며 말합니다. "어떻게 조용히 놀았냐구? 이렇게~" ... 이어서 꿈결같이 흐르는 오래된 음악... 벽에 기대어 눈을 감은 채 음악에 취한, 사랑하는 남자의 모습... 세경에게 있어 이보다 더 짙은 유혹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들러보고 싶은 곳이 또 있다면서 지훈이 세경을 데려간 곳은 자그마한 찻집인데, 주인이 장사 그만하겠다며 짐을 싸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오늘 안 왔으면 평생 못 올 뻔했네" 지훈은 기뻐합니다. 두 잔의 커피를 시켜놓고 두 사람은 마주앉았는데, 그 순간 교수님의 전화가 걸려와 지훈은 먼저 일어섭니다. "오늘 같이 있어줘서 고맙다..." 라는 시크한 인사와 시크한 미소만 남긴 채, 그렇게 걸어나가는 지훈을 보며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저거 저거 진짜 나쁜놈인가?

하지만 오히려 세경은 혼란스럽지 않은 모양이더군요. 그가 떠나고 없는 자리에 아무렇지도 않게 홀로 앉아 커피를 마시다가, 찻집 벽에 오래 전에 지훈이 남겨놓은 낙서를 발견합니다. "지훈이 다녀가다"


용감하게 그 아래쪽에 하트 표시와 함께 "세경이도 다녀가요" 라고 덧붙여 쓰는 세경의 모습을 보자, 오늘로써 그녀의 마음이 더욱 지훈에게 깊이 빠져들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난번의 '가정부 발언' 이후로 충격이 컸을 텐데도 지훈을 향한 그녀의 사랑은 식지 않았던 것입니다.

욕쟁이 할머니의 국밥집에 휴대폰을 두고 와서 다시 찾으러 간 세경에게, 할머니가 말씀하십니다. "너무 속태우지 말어. 인연이면 안될 것 같아도 저절로 되고, 인연이 아니면 아무리 애써도 안되는 법이야."

세경은 곧바로 집에 돌아가지 않고, 다시 지훈의 발자취를 따라서 레코드점으로 되돌아갑니다. 불과 한시간쯤 전에 지훈과 나란히 앉았던 구석자리에 홀로 앉아서, pale blue eyes를 다시 부탁하여 듣습니다. 부드럽게 흐르는 음악 속에... 어느 새 그녀의 곁에는 대학시절의 지훈이 앳된 모습으로 함께 앉아 있네요. 오늘 지훈은 자기의 가장 소중한 추억을 세경과 더불어 나누었습니다.


저는 그냥 원래의 제 생각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지훈은 스스로도 자기 마음을 명확히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속마음은 이미 세경에게 끌리고 있으며, 그녀의 아픔을 같이 아파하고, 자기의 추억을 그녀와 나누고 싶어합니다. 머리는 명석하지만 사람을 대하는 감정에 서툰, 지훈이다운 모습입니다. 그는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를 보는 세경의 마음도, 세경을 보는 자기의 마음도.

그렇지 않다면, 다 알면서도 오늘같은 행동을 했다면 이지훈은 그야말로 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재 그와 사귀고 있는 황정음이 예전부터 이지훈 때문에 화가 나면 늘 하던 말이지요. "이지훈, 개××"


스스로 불쌍한 아이라고 말하면서, 그 마음 받아줄 생각도 없으면서 자기를 좋아하는 세경에게 저토록 짙은 유혹을 날렸다면, 이지훈 캐릭터는 오늘부로 모든 매력을 잃게 됩니다. 설마 그렇지는 않을 거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공부는 잘하지만 사랑에는 서툴기 짝이 없는, 사회적으로는 어른이지만 마음은 아직도 상처받은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는, 오늘 저는 그러한 이지훈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조용히 지켜보며 감싸줄 수 있는 포근한 세경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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