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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 세경은 지훈과 준혁의 아픔이 되고...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지붕뚫고 하이킥

'하이킥' 세경은 지훈과 준혁의 아픔이 되고...

빛무리~ 2010. 1. 14.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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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지붕뚫고 하이킥'... 세경과 지훈과 준혁... 또 비껴가는 그들의 일기)



세경
: 내일이 준혁 학생의 생일이라고 한다. 나는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싶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이 집에서 나의 하루 하루는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다. 될 수 있으면 그가 원하는 것을 선물해 주고 싶어서, 일부러 용기를 내어 직접 물어 보았다. 준혁 학생은 지난번에 내가 떠 준 목도리로 충분하니 더 이상의 선물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나는 계속 말해 달라고 졸랐다. 그가 너무 편해서 나는 이렇게 졸라대기도 하고 장난도 치고 웃기도 한다. 그는 함께 영화를 보자고 말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서 다행이다.


준혁 : 내 생애 최고의 생일이다. 모든 것은 언제나와 똑같지만, 그 한가운데에 세경, 그녀가 있다. 오후가 되면 나는 그녀에게 선물받은 목도리를 두르고, 그녀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갈 것이다. 꿈만 같다. 맨날 툴툴거리는 막둥이 해리도 귀엽기만 하다. 그런데 친구 녀석들이 장난을 치다가 그녀가 선물해 준 목도리를 망가뜨릴 뻔했다. 헤벌쭉 웃고 있던 나는 갑자기 미친놈처럼 화를 냈다. 친구들이 당황해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다.


지훈 : 오늘도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깊은 밤이다. 하루의 피로가 밀려와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겁다. 그런데 아직도 세경이가 잠들지 않고, 나에게 먹일 사골을 끓이고 있다. 물론 누나가 시켰겠지만 저 아이는 조그만 요령도 피울 줄 모르고, 그냥 끓는 냄비 앞에 주저앉아 시간 맞춰서 국물을 따라내고 불을 줄이며 곧이곧대로 정성을 다해 사골을 끓이는 중이다 ...... 가시라도 박힌 것처럼 가슴이 먹먹하게 아파온다.


세경 : 그 사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다. 매일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는 그에게, 나는 밥상 한 번 차려줄 기회도 마땅치 않다. 그에게 먹일 사골을 우려내는 일이 나에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도 모르고, 그는 누나에게 말해놓을테니 앞으로는 하지 말라고, 앞으로는 정말 안 먹을 거라고 말한다. 안되는데...
......아랑곳 않고 그는 나의 앞날을 걱정해 준다. 지금이 나의 인생에는 천금같이 귀한 시기이니, 자기에게 먹일 사골을 끓이는 데에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열심히 검정고시 준비를 하라고 말한다.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목 밑까지 밀려 올라온다. 그의 목에는 오늘도 내가 선물한 검은 목도리가 둘러져 있다. 그는 나의 선물이 따뜻하다고 말한다.


준혁 : 들뜬 마음에 너무 일찍 영화관에 도착했다. 바보같다. 그녀가 오려면 아직도 한참이나 기다려야 할텐데, 자꾸 헤벌쭉 입이 벌어지며 저절로 웃음이 나는 것을 참을 수 없다. 누가 보면 정말 미친놈인 줄 알겠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그녀와 단둘이 영화를 본다. 두 시간 동안 나란히, 가까이 붙어 앉아 함께 팝콘도 먹고, 같이 웃고, 같이 울며, 우리는 같이 영화를 볼 것이다. 남들이 어떻게 보건, 오늘은 아무 상관이 없다.


지훈 : 어젯밤에 끓이던 사골국물을 가지고 세경이가 병원을 찾아왔다. 그녀와 몇 번 마주쳤다고 아는체하며 다가서는 동료 녀석들이 신경에 거슬린다. 세경이는 네놈들이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그런 여자들과는 다르다. 그 아이의 처지를 감당도 못할 거면서, 아예 그럴 생각도 없으면서 집적대는 녀석들한테 슬슬 화가 나려고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애를 건드려서 혹시라도 상처를 줄까봐 세경이가 나간 후, 나는 동료들에게 그애가 누구인지를 말해 주었다. 내가 안 보는 사이에라도 실없는 짓을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애가 상처받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세경 : 그에게 전하지 못한 말이 있어서 되돌아갔다가, 그가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세경이, 우리집 가정부야. 부모도 없이 시골에서 중학교 졸업하고, 동생 데리고 서울 올라와 우리집에서 가정부 일하는 불쌍한 애야."
알고 있던 일인데, 그의 목소리로 들으니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났다. 그를 보며 나는 무슨 꿈을 꾸었을까? 잡을 수 없는 곳에 핀 꽃이기에 그냥 쳐다보려고만 했던 것뿐인데, 쳐다보는 것조차 내겐 사치스런 꿈이었을까? 누가 빼앗은 것도 아닌데, 잡고 있던 꿈을 빼앗긴 것처럼 서럽게 눈물이 나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


준혁 : 그녀가 오지 않는다. 전화도 받지 않는다. 문자를 보내도 대답이 없다. 내게로 오는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걸까? 불안하다. 목이 바싹 타들어간다. 왠지 그녀를 잃어버릴 것만 같다. 언젠가 그녀가 우리 집을 떠나겠다고 했을 때처럼, 나는 미칠 듯 초조하다. 이 정체모를 불안감에 나는 달리기 시작한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어서 달려가 그녀를 붙잡아야 한다.


지훈 : 저만치 아직도 서성이고 있는 세경이가 보인다. 때때로 저 아이를 보면 나 자신을 보는 것 같다. 나는 언제나 공허감과 아픔에 익숙했다. 어려서부터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았고, 나의 응석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학시절, 유일하게 내 마음에 들어와 나를 가슴 깊이 안아주던 나영이조차, 아무런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떠났다. 3년 전에는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 그렇게 나는 항상 혼자였고 외로움에 익숙해졌는데, 그래도 가끔씩은 빈 가슴을 조여오는 아픔이 있어, 내가 살아 있다고 말해 주었다.


.......세경이를 보면 아프다.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아픔이 그애를 보면 깨어나는 것 같다. 그래서 외면하고 싶지만, 그래서 외면할 수도 없다. 나 자신의 얼굴과 마주 대하기가 두렵지만 결국 피할 수도 없는 것처럼, 그 아이는 언제부턴가 그렇게 내 가슴에 아픔으로 박혀 버렸다. 그런 그 아이가 울고 있다. 내가 사준 목도리를 잃어버렸다면서 슬프게 울고 있다. 그런 작은 일에도 하염없이 흘러내릴 만큼, 그 아이 속에는 눈물이 넘치도록 가득차 있는 거다. 나에게 미안하다면서 눈물을 그치지 않는 그애를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건조한 몇 마디의 말로 달래어 돌려보냈다. 자칫 나와 너무도 닮은 그 아픔에 휘말려들까봐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세경 : 어디에선가 그에게 선물받은 목도리를 잃어버렸다. 눈물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 찾을 수도 없다. 어느 새 준혁 학생이 쫓아와서 함께 찾아 주었지만, 어차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가 건네주었던 따뜻한 커피처럼, 한 모금 마셔 보지도 못하고 길바닥에 쏟아버린 그 커피처럼, 한동안 나를 따뜻하게 해주었던 그 목도리도 이젠 영영 잃어버린 것이다. 점점 더 눈물이 흘러 걷잡을 수가 없다. 그가 내 앞으로 다가와 괜찮다고 말해 주었지만, 그 따뜻한 목소리조차 견딜 수 없이 서럽다. 한 번도 가져본 적 없으면서, 마치 가졌다가 잃어버린 것처럼 서럽다. 오늘 내가 잃어버린 것은 목도리가 아니었다.


준혁 : 그녀가 울고 있다. 잃어버린 목도리를 찾아야 한다고 울면서 뛰어다닌다. 불안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그녀와 함께 목도리를 찾아다니다가, 삼촌과 마주쳤다. 그녀를 울게 한 빨간 목도리는 바로 삼촌이 선물한 것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선물한 목도리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기에, 나는 알아서는 안 될 그녀의 마음을 알아 버렸다. 그녀의 마음 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 버린 거다. 하늘이 무너진다. 정말 기막힌 생일 선물이다.


.......영화를 못 보게 해서 미안하다고 그녀가 내게 말했다. 나는 뒤틀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간신히 괜찮다고 말했다. 그녀는 선물상자를 내 무릎에 놓으며 "생일 축하해요." 라고 말했지만, 상자 안의 빛깔 고운 선물은 내 마음처럼 산산히 부서져 있었다. 그녀가 똑같은 것으로 다시 사오겠다고 했지만, 이미 나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것이었다. 몇 번이나 괜찮다고 했지만 그녀는 눈물 자국 번진 얼굴을 해갖고는 계속 고집을 부렸다.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고 말았다.


.......그녀가 우는 것은 나 때문이 아니라서, 나는 위로를 해줄 수도 없다. 그녀에게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서,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는데, 그녀는 문득 거리의 악기점에 들어서서 나에게 다시 말한다. "생일 축하해요."
.......내 생에 또 다시 이토록 슬픈 생일 축하 인사를 받을 날이 있을까? 그녀는 나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했다.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아름다움이었지만, 그녀의 모습도 피아노 선율도 온통 눈물에 젖어 아련했다.


세경 : 내 슬픔이야 오직 나의 것일 뿐, 준혁 학생에게 나누도록 할 수는 없다. 오늘은 그의 생일인데, 나는 아무런 선물도 주지 못하고, 영화를 보자던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기쁘고 행복해야 할 그의 생일을 내가 이렇게 눈물 범벅으로 만들어 버렸다. 너무 미안하고, 어떻게든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은데, 눈물이 자꾸 쏟아져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문득 악기점이 눈에 들어온다. 아주 오래 전에, 내가 신애보다 더 어렸을 때, 엄마 아빠는 내 손을 잡고 저런 악기점으로 들어가 피아노를 사 주셨었다. 그때는 엄마가 살아 계셨고, 아빠의 사업도 잘 되었고, 나는 슬픔을 아직 몰랐었다. 이제 엄마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셨고, 아빠도 멀리 계시지만, 내 손에 익혔던 피아노 음률은 그대로 남아 있을까? 너무 오랫동안 산에서 나물을 캐고 집에서 빨래를 하느라 거칠어진 손마디이지만, 저 하얀 건반은 지금도 내 손을 기억하고 있을까?


너무나 미안하지만... 선물도 위로도 되지 못하겠지만, 준혁 학생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거라고는 그렇게 허공을 울리는 피아노 소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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