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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 이나영, 한 편의 시(詩) 같은 멜로를 선물하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지붕뚫고 하이킥

'하이킥' 이나영, 한 편의 시(詩) 같은 멜로를 선물하다

빛무리~ 2010. 1. 11.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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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된 대로 '지붕뚫고 하이킥'에 이나영이 까메오로 출연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짧은 방송 시간에 두 갈래의 에피소드를 담다 보니 아무래도 충분한 표현을 하기에는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저 과거에 지훈(최다니엘)과 사랑했던 여인이며, 무슨 이유 때문인지 그를 버려서 죽을 만큼 힘들게 했으며, 이제와서는 또 무슨 이유 때문인지 다시 돌아와 본모습을 숨긴 채 그를 잠시 만나고 돌아갔다는... 그냥 그렇게 평범한 이야기만을 전달했을 뿐입니다.


특이한 점이라면 남장을 하고 나타났다는 정도겠군요.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몇몇 분들이 지적하셨던 것처럼 불편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최근에 찍은 영화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 홍보를 위한 까메오 출연임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말이죠. 이나영이 보여주던 순수한 모습을 사랑하던 저로서는 너무 상업적 목적이 눈에 보이는 이번 출연 자체가 그리 달갑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런가보다 하고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결말 부분에 가서, 생각지도 않았던, 아주 평범한 대사 한 마디에 불현듯 가슴이 울려 오더군요.

별 내용은 없었지만 간단히 요약한다면, 어느 날 갑자기 병원을 찾은 예쁘장한 남자(?)가 다짜고짜 지훈에게 무대포로 다가섭니다. 지훈이를 군대 후임 절봉이라고 부르면서, 자기 이름은 나봉이라고 소개합니다. 지훈이가 아무리 아니라고 부인해도 무조건 맞다면서 퍽퍽 때리고 우깁니다. 그러다가 결국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건만, 지훈의 주변 맴돌기를 그치지 않으며, 또 다짜고짜 무조건 친구 하자고 우기네요.


지훈이는 까칠해 보이지만 사실 속은 여리고 착한 남자입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그렇게 마구 들이대면 짜증을 낼 법도 하건만 그러지 않고 잘 참아 주다가, 나중에는 페이스에 말려서 엉겁결에 같이 삼겹살 집으로 저녁까지 먹으러 갑니다. 물론 단둘이는 아니고 병원 동료들과 정음이와 함께죠.

화장실에서 잠시 마주친 지훈에게 그 남자는 생뚱맞은 소리를 건넵니다. "그거 오래된 거죠? 그렇게 사람 설레게 웃는 거... 지훈씨 웃는 거 보니까, 난 좀 설렌다." 그러고는 지훈의 엉덩이를 탁 치고 밖으로 나갑니다. 지훈도 뭔가 다른 느낌이 있으니까 참았던 걸까요? 같은 남자가 저런 이상야릇한 짓을 하는데 그냥 봐주다니요..ㅎ

그러다가 술자리에서 동료들은 먼저 일어서고, 정음이는 계속 지훈에게 술을 먹이려는 그 남자(?)의 강요에 흑기녀가 되어 대신 술을 마셔주다가 급기야 또 떡실신하여 의자에 쓰러진 채 잠이 들고 맙니다. 그 상태에서 의문의 남자와 지훈은 잠시 둘만의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솔직히 이나영의 그 어설픈 남장을 못 알아본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서... 슬픈 느낌은 애초부터 완전 깨고 들어갔습니다)


계속 어디선가 만난 적 있는 듯한 낯익은 얼굴이라면서 궁금해 하던 지훈은, 드디어 술김에 눈앞에 어른거리는 얼굴을 보고는 기억을 해냅니다. "이젠 알겠네요. 누굴 닮았는지... 내가 제일 잊고 싶어하는 사람...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버렸거든요."

"우리 누나 아니었으면 그 때 나 죽을 뻔 했는데." ... "그런데, 용케 살아남았네"... "사는 게 바빠서...살아지더라구요" ... "모르긴 몰라도, 그 사람도 지훈씨 떠나고, 많이 아프고, 많이 보고싶었을 거예요. 어쩌면 지훈씨보다 더..."


두 사람은 이렇게, 꼭 정말로 술자리에서 나누는 대화처럼, 그렇게 해롱해롱, 다음날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당연히 잊어버릴 대화를 나눕니다. 너무 평범하고 현실적으로 보여서, 조금씩 슬퍼집니다. 그 현실적인 느낌이 이나영의 어설픈 남장과 어울리지 않아서, 그 언밸런스함 때문에 왠지 또 슬퍼집니다.

그런데 며칠 후, 다시 그 남자가 지훈 앞에 나타납니다. 이번에는 아주 심플하게, 자판기 커피 한 잔만 빼앗아 마시고는 작별을 고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 병원에 검사받으러 왔다고 했었는데 그게 사실인지는 모를 일입니다. 오늘은 검사 결과가 나온다는 식으로 얼버무렸지만 아무래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녀는 그냥 "이제 가겠다." 고 말합니다. 심드렁하게 인사를 받는 지훈을 향해 "이제 다시는 이 병원에 안 올 건데"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아주 멀리라도 가시나봐요?" 하고 멋없이 대꾸하는 지훈의 뺨에 기습적으로 입을 맞춥니다.

순식간에 남자에게서 키스를 당한 지훈은 당황하여 어쩔 줄 모릅니다. 그런 그에게 그녀가 마지막으로 건네는 인사입니다.

"잘 지내요. 지금처럼만"

제 마음을 울린 대사는 저것이었습니다. 그녀의 눈에는 지훈이가 지금 아주 잘 지내고 있는 것으로 보였나봐요. 매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나무토막처럼 지내고 있는데... 그나마 요즘은 새로 사귄 여자친구 황정음 때문에 조금 활기가 생기긴 했으나 아직도 물기가 부족하여 버석버석해 보이는데... 그래도 그녀가 보기에는 아주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았나 봅니다.


그녀가 왜 병원을 찾아왔는지는 모릅니다. 정말로 멀리, 이민을 가거나 해서 멀리 떠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떠나기 전에 지훈을 한 번만 다시 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왠지 그녀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비감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더군요. 그야말로 신파중에 신파이지만 말입니다.

오래 전에 그녀가 떠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때부터 아팠던 걸까요? 그러다가 이젠 정말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날 시기가 닥쳐온 걸까요? 참, 식상하고 진부한 설정이지만 묘하게도 조금은 새로운 아픔을 전해 주었습니다. 바로 저 말 때문에요.

"잘 지내요. 지금처럼만"

저 평범한 대사 한 마디 때문에, 왠지 그들의 사랑은 한 편의 오래된 시(詩) 처럼 느껴졌습니다. 그저 무심하게 살아가며,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되어 그녀를 무심하게 바라보는 남자와... 혼자만의 사랑과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몰래 숨어서, 멀리서 그를 지켜보는 여자의 모습이라니... 참 흔한 사랑 이야기지만, 고전이 현대에도 꾸준히 사랑받는 것처럼, 슬프고도 순수하고 애절한 사랑 이야기는 시대 장소를 불문하고 언제나 사랑받을 수밖에 없나 봅니다.

이나영 덕분에 오늘 '지붕뚫고 하이킥'은 비록 짧고 부족해서 아쉽지만 서정적인 느낌으로 가득한 한 편의 TV영화를 본듯한 느낌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나저나 최다니엘과 이나영... 센치한 듯한 분위기가 매우 비슷하네요. 굉장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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