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STORY 2014 우수블로그
TISTORY 2012 우수블로그
TISTORY 2011 우수블로그
TISTORY 2010 우수블로그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하얀 거탑' 장준혁 VS '하이킥' 황정음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지붕뚫고 하이킥

'하얀 거탑' 장준혁 VS '하이킥' 황정음

빛무리~ 2010. 1. 9. 06:56
반응형


제가 만약 2007년 초에도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다면, 저는 '하얀 거탑'의 장준혁 캐릭터에 대해서 거침없이 비판을 해댔을 것이며, 어쩌면 지금 제가 '하이킥'의 황정음 캐릭터를 비판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수위가 되었을 것입니다. 장준혁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현실적이기는 하지만 옳지는 않은" 캐릭터였습니다. 


당시 '장준혁 신드롬'의 선풍적 인기를 기억하십니까? 그 장준혁 신드롬에 정면으로 대항할 수만 있다면, 저는 하고 싶었습니다. 연기자 김명민에 대해서야 감탄과 존경을 금할 수 없는 마음이 저도 남들과 똑같았으나, 장준혁 캐릭터에 대해서만은 남들과 다른 의견이었습니다.

장준혁은 명의(名醫)였지만, 인의(仁醫)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의사도 사람이기에, 자기 자신의 일이 환자보다 우선일 수밖에 없음이 어쩌면 당연한 현실일 것입니다. 의사라고 해서 모두 천사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아무리 그것이 현실이라 해도, 그것이 옳다고 우길 수는 없습니다. 이해할 수는 있지만, 비호(庇護)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분명 자기가 담당하고 있는 환자가 이상 증상을 보인다는 보고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출내기 레지던트가 식은땀을 흘리며 쫓아와서는, 한번만 그 환자의 상태를 다시 보고 새로운 오더를 내려달라고 그렇게 애원하는데도 장준혁은 답변을 내려주지 않고 급하게 휭하니 떠나 버렸습니다. 바로 그 시각, 그의 출세길을 열어줄 수 있는 VIP의 아내가 멀리 다른 지역의 병원에서 그의 집도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결국 이상 증상을 보이던 그 환자는 사망했고, 그로 인해 불어오는 후폭풍은 참으로 다이내믹한 드라마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 시청자 게시판을 비롯하여 그 어디엘 가봐도, 장준혁에 대한 공감과 찬양만이 보일 뿐, 비판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그의 열정,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졌고,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불구하고, 거대한 기득권의 벽에 부딪혀 꿈을 이루지 못하는 그의 안타까움... 사람들은 장준혁의 이런 면에만 집중하며 그를 불쌍히 여기고 그에게 감정을 이입하며 공감을 느끼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환자의 안위보다 자기의 출세를 우선시한 의사의 선택에 대해서는 마땅한 비판이 있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히려, 장준혁에게 보고를 올렸던 젊은 레지던트가 상황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면서까지 책임자였던 장준혁을 비호하려 했습니다. 저는 그러한 장준혁 신드롬을 보면서 굉장한 위험성을 느꼈습니다.

김명민의 신들린 연기가 단단히 한 몫을 하긴 했으나, 그보다도 근본적인 원인이라면 장준혁이라는 캐릭터가 상당히 현실적이었음을 들 수 있겠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기득권의 벽을 뚫기 어렵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최고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어도, 최종 목표에 이르지 못하고 억울하게 좌절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를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캐릭터 장준혁은 현실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장준혁들의 감정을 그대로 흡수하여 신드롬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그로 인해 옳고 그름의 판단조차 흐려지게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시 장준혁의 강렬한 매력에 여지없이 밀려서 초라하게 무너져버렸던, 드라마의 다른 한 쪽 기둥이었던 최도영(이선균)의 캐릭터는 오히려 "현실적이지는 않지만 지극히 옳은" 인물이었습니다. 최도영은 진정한 인의(仁醫)로서, 어린아이의 몸에 차가운 청진기를 대기 전에 자기의 손으로 따뜻하게 덥혀 주는 마음씨를 지녔으며,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기의 손해나 위험을 무릅쓰고 언제나 약자 편에 서는 올바른 선택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현실 속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이상적 인물을 표현한 최도영 캐릭터는 대다수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부당한 비난에 시달렸습니다. 친구인 장준혁의 반대편에 서서 증언을 했다는 이유로 '하얀 거탑' 시청자 게시판에는 온통 최도영에 대한 욕설이 도배되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친구의 감정을 떠나서 최도영은 양심적 증언을 했던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현실적인 것 = 옳은 것" 이며 "비현실적인 것 = 그른 것" 이라는 비뚤어진 공식이 성립할 수도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말이지요. 


최근에 '지붕뚫고 하이킥'의 황정음 캐릭터를 보면서도 저는 그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습니다. 황정음의 모습이 너무 현실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빠져들게 됩니다. 게다가 연기자 황정음에게는 김명민과 같은 수준의 연기력은 없지만, 그 대신 아찔한 미모가 있습니다. 이리하여 '예쁜 외모''현실성'이라는 양쪽 날개를 달고 황정음 캐릭터는 거침없이 하늘을 날기 시작하더군요.

솔직히 황정음 신드롬은 장준혁 신드롬 때만큼 위험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때보다야 훨씬 덜 심각하고 덜 무겁지요. 그러나 역시 변하지 않은 저의 소신은 "현실적이라 해서 그것이 바로 옳지는 않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 캐릭터의 치명적 단점에 대해 "옳지 않다!" 고 소리치고 싶은 욕구를 저는 블로그에 풀어놓았던 것입니다. 제가 황정음 캐릭터를 혹독하게 비판해 온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장준혁은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으나, 황정음은 어떨지 모르겠군요. 지금의 알콩달콩한 행복 모드가 끝까지 이어질지, 아니면 어떤 변수가 생겨서 달라질지, 아직은 모르겠는데 어쨌든 현재의 상태는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한때 빚쟁이 된장녀였던 정음은 지훈 왕자님을 만나서 행복한 신데렐라가 되었어요. 든든한 남친 덕분에 이젠 마음에 여유도 생겼으니, 부지런히 새벽에 일어나 왕자님의 도시락도 싸주고, 불쌍한 할아버지를 위해서는 할머니처럼 변장하여 위로도 할 줄 아는 천사가 되었어요.


그녀는 이렇게 예쁜데다가 착하기까지 한데, 왕자님이 설마 그녀를 버리기야 하겠어요? 그깟 얼마 안되는 카드빚 따위는 걱정할 필요도 없어요. 그녀에게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건 옆에 앉은 지훈 왕자님을 꽉 잡는 거예요. 다행히 왕자님은 정음이한테 홀딱 반한 것 같네요. 앞서가며 50년 후의 일까지 상상하고 있어요. 아싸, 지금 이대로만 잘 나가면 돼요. 아주 잘 되어가고 있어요..^^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