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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뚫고 하이킥' 아빠에게 보내는 세경의 편지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지붕뚫고 하이킥

'지붕뚫고 하이킥' 아빠에게 보내는 세경의 편지

빛무리~ 2009. 12. 2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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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아빠의 바다는 오늘 어땠나요? 신애와 저는 매일 밤, 잠들기 전에 기도해요. 아빠가 계신 곳에 거친 바람이 불지 않게 해달라고, 그 바다에는 언제나 잔잔한 파도만 일게 해달라고 말이예요. 우리는 잘 지내고 있어요. 조금도 걱정하지 마세요.


나중에 아빠께 보여 드리려고, 신애가 받아 온 시험지랑 성적표랑 모두 잘 간직하고 있어요. 우리 신애, 얼마나 똑똑하고 열심히 하는지, 저는 그것들을 볼 때마다 기운이 새록새록 솟아나요. 아빠도 보시게 되면 분명히 좋아서 펄쩍펄쩍 뛰시게 될 거예요.

며칠 전에 좋은 소식이 있었어요. 길에서 우연히 뵙게 된 할머니를 도와 드렸는데, 뜻밖에도 그 할머니는 엄청난 부자이셨어요. 우리 사정을 듣고 딱하게 여기시더니, 제가 마음에 드신다면서 할머니의 집 일을 도와달라고 제안하셨어요. 지금 여기서 받는 월급보다 세 배도 넘는 많은 월급을 약속하시면서 말이예요.


한편으로는 너무 기뻤어요. 그 집으로 옮기면 지금보다 일도 훨씬 편할 테고, 아빠와 다시 만나기 전까지 돈도 훨씬 많이 모을 수 있을 테고... 무엇보다 우리 신애, 더 좋은 환경에서 편안히 공부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무언가 제 마음에 걸려서, 얼른 그러겠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어요.

처음 서울에 와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정말 힘들었을 때, 순재 할아버지가 우리를 받아 주셨었지요. 현경 아주머니는 제가 너무 어리고 신애까지 데리고 있다면서 반대하셨는데, 그래도 할아버지는 갈 곳 없는 우리 자매를 불쌍히 여기셨던지, 저의 간절한 부탁을 들어 주셨던 거예요. 저는 아직도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있어요. 


보석 아저씨가 음식을 갖고 생트집을 잡으시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아저씨는 워낙 투정이 심한 분이니까요. 하지만... 신애... 우리 신애도 해리만큼이나 귀한 아이잖아요. 처음 들어오던 날부터 동갑내기 해리한테 뺨까지 맞고, 대들지도 못하던 우리 신애... 매일 숙제도 빼앗기고 먹을 것도 빼앗기는 신애를 보면서 참는 건... 저도 힘들었어요.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이렇게 간사한 건가 봐요. 갈 곳이 없을 때는 그래도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이제 갈 곳이 생기니까 갑자기 참을 수 없게 느껴지는 거였어요.

저는 신애를 데리고 그 할머니께 가기로 결심했어요. 어쩌다 보니 제가 말씀드리기도 전에 온 가족이 그 사실을 알아 버렸네요. 그런데 가족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많이 차가웠어요. 보석 아저씨가 저한테 투정이 심하시긴 하지만 그래도 미워하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지금 당장 나가라고 하시는 걸 보니, 제가 정말로 많이 미우셨나봐요. 저는 한 번도 아저씨를 미워한 적 없는데... 제가 그렇게 잘못했을까요?


순재 할아버지는 제가 일하는 것이 마음에 드신다면서 월급을 좀 올려주고 붙잡으라 하셨고, 현경 아줌마는 저쪽 할머니가 제안하신 것만큼 올려줄 수는 없기 때문에 저를 붙잡을 수 없다고 하셨어요. 아줌마에게도, 할아버지에게도, 중요한 것은 제가 아니라 돈이었어요. 저와 헤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나봐요. 


그래도 준혁 학생은 저와의 헤어짐을 슬퍼해 주었어요. 함께 공부해서, 내년에 같이 학교에 가자고 말했지만, 사실 제가 항상 귀찮게나 했을 뿐이죠.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는데, 그래도 준혁 학생은 진심으로 저를 붙잡아 주네요. 정말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예요. 가족들에게 아주 조금 서운한 마음이 생기려고 했었는데, 준혁 학생 때문에 그 마음은 눈녹듯이 사라졌어요.

그런데 제 가슴에는 아직도 뭔가가... 생선가시처럼 답답하게 걸려 있어요... 아빠, 난 무서워요. 그게 무엇인지를 아는데... 알고 있는데... 마주 대하기가 두려워요.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어요. 또 중요한 서류를 집에 두고 갔다네요. 나는 그 사람에게로 달려가기 위해 급히 집을 나서요. 가족들이 내 문제로 다투고 있거나 말거나, 상관없는 일이예요.

온 가족이 알고 있는데, 이제 곧 나를 볼 수 없게 되리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데, 이 사람만 모르고... 저렇게 웃고 있네요. 나는 걱정되는데... 이렇게 중요한 물건을 수시로 잊고 다니는 그 사람이 걱정되어 죽겠는데, 그는 믿는 사람이 있다면서 저렇게 속 편히 웃고 있네요. 나는 이제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는데... 이젠 그가 놓치고 간 서류를 들고 달려와 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말이예요.


나는 이를 악물고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지 않으려 해요. 그런데... 저절로 내 눈에 들어오는 그의 모습... 너무 정신없이 바빠 보여요. 분명히 내일도... 저 사람은 뭔가를 잊어버리고 나에게 전화를 할 거예요.

내가 챙겨주지 않으면, 추운 새벽에 따뜻한 죽 한 그릇도 먹지 않고 빈속으로 나가버릴 사람인데... 내가 가져다주지 않으면, 중요한 물건을 잊고 와서 바쁜 중에도 매일 혼날 사람인데... 이젠 그가 믿어주는 그 사람... 나는 그의 집에 없을 텐데... 그런 줄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빠, 어쩌면 좋아요? 나는... 저 사람을 두고 못 가겠어요. 내가 쳐다보면 안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아는데, 너무 잘 알고 있는데 ... 그런데 ... 이 가슴에 박혀있는 가시를 뽑을 수가 없네요. 뽑으려 하니, 너무 아파서 뽑을 수가 없어요. 그냥 이렇게 가시 박힌 채로 살아야 하나봐요. 

추운 집 앞에서 떨고 있던 준혁 학생이 나를 보고 달려와요. 얼마나 오랫동안 그러고 있었던 걸까요? 온통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눈물까지 글썽거리면서 나에게 가지 말라고 하네요. 준혁 학생은 차마 떠날 수 없는 나에게... 이곳에 머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지 않겠다고 대답했지요. "고마워요. 내가 있는 걸 좋아해 줘서..." 고맙다는 말은 진심이었어요.


아빠, 미안해요. 신애를 위해서도 아빠를 위해서도, 제가 이번에 떠나는 것이 좋았겠죠? 하지만, 아빠... 내 가슴이 너무 아파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고, 병원에도 갈 수 없는데, 너무 아파요... 아빠는 이해하시죠? 오늘은 아빠가 더 많이 그립네요. 그곳에는 오늘도 조용한 바람이 불고, 잔잔한 파도가 일렁거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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