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STORY 2014 우수블로그
TISTORY 2012 우수블로그
TISTORY 2011 우수블로그
TISTORY 2010 우수블로그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재벌집 막내아들' 진도준(송중기), 주인공은 인간적이어야 하는가? 본문

드라마를 보다

'재벌집 막내아들' 진도준(송중기), 주인공은 인간적이어야 하는가?

빛무리~ 2022. 12. 29. 14:36
반응형

동명의 인기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성공적인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주인공을 맡아 열연했던 배우 송중기는 물론 모든 출연진과 제작진이 기쁨의 축배를 들었을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적잖은 아쉬움을 남긴 드라마였다. 모든 리메이크 작품이 원작의 스토리와 주제를 똑같이 이어가야 할 필요는 없으나, 굳이 신파적인 요소를 듬뿍 첨가하여 식상하게 만들어야 했을까? 내 생각에 이러한 변화는 작품성을 훼손시키는 일이다. 어쩌면 다수의 시청자들이 신파적 요소를 좋아한다고 판단했을지 모르나, 과연 시청률에 이러한 선택이 도움을 주었을지도 의문이다. 

 

'재벌집 막내아들' 진도준 (송중기 분)

원작의 주인공 진도준(환생 전 윤현우)은 결코 인도주의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선악과는 별개로 철저히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했던 속물적 인간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더욱 현실적이고 평범한 인간형일 것이다. 환생하기 전 윤현우는 순양그룹 오너 일가의 충견으로 살며, 오너 일가의 부정부패를 누구보다 명백히 알고 있었지만 굳이 선악의 기준으로 판단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의 명령에 한치의 망설임 없이 복종함으로써 자신에게 얻어질 것이 더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향은 사냥개처럼 버려져 죽은 후 진도준으로 환생했을 때 더욱 강해진다. 

 

흙수저였던 윤현우가 금수저로, 그것도 자신의 원수인 순양 일가의 막내로 환생했을 때 그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것은 크나큰 야망과 복수심이었다. 어쩌면 그에게 있어 복수심과 야망은 한 개의 맥락으로 이어져 있었다. 자기를 이용해먹고 죽이도록 지시한 진성준(김남희)을 개인적으로 파멸시키는 것보다 더 근본적이고 큰 복수는, 그들 일가에게 목숨보다 소중한 순양그룹을 빼앗아 자신이 차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 살 소년으로 환생한 그 순간부터 진도준은 순양그룹을 차지할 계획을 세우고 10여 년에 걸쳐 차근차근 진행해 나간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절대적인 강점을 이용해 그의 계획은 거의 완벽히 실행된다. 순양그룹 창업주 진양철(이성민)은 막내 손자의 내면적 실체를 상상조차 못 한 채 그저 천재적 영특함과 날카로운 판단력을 지닌, 자신의 혈육들 중 가장 쓸만한 놈이라 여기고 진도준을 특별히 총애하며 그에게 날개를 달아준다. 한국 경제는 물론 정치권까지 쥐락펴락하는 할아버지와 환상의 티키타카를 주고받으며 눈부시게 날아오르는 진도준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시청자(원작에서는 독자)들에게 짜릿한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그거면 충분하다. 굳이 약자에 대한 동정이라든가, 불의에 대한 분노라든가 하는 권선징악적인 (나쁘게 표현하면 신파적인) 요소를 집어넣을 필요는 없었다. 남의 기업을 무너뜨리고 헐값에 인수하는 것은 맹수가 다른 짐승을 잡아먹는 포식행위일 뿐이다. 그 와중에 '직원들의 고용 승계'를 고려하여 좀 손해를 보더라도 인도주의적인 방법을 선택한다면, 복수와 성공을 위해 달려가는 주인공 진도준의 캐릭터는 혼란스러워질 뿐이다. 가장 황당한 삽질은 전생 윤현우의 어머니(서정연)를 개미투자자로 등장시킴으로써, 주식을 신나게 갖고 놀아야 할 진도준을 고뇌에 빠뜨린 내용이었다. 

 

처음부터 그 쪽의 주제를 내세우고 출범한 작품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 일관성 있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되었을 일이다. 하지만 통쾌한 복수극과 짜릿한 성공물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시청자들 앞에 느닷없이 권선징악, 인도주의 같은 뜬금포 설정이나 주제를 곁다리처럼 끼워넣으면 그것은 유치한 신파로 느껴질 뿐이다. 예술 작품의 주제에는 선악이 없다. 반드시 주제가 선해야만 좋은 작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인간적이어야만 매력적인 주인공이 탄생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 드라마는 언제쯤이 되어서야 신파 강박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