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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우리는' 최웅(최우식)의 새털구름 같은 매력 본문

드라마를 보다

'그 해 우리는' 최웅(최우식)의 새털구름 같은 매력

빛무리~ 2022. 8. 1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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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웅(최우식), 그의 느낌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나는 '새털구름 같은 남자'라 부르고 싶다. 한없이 가볍고 포근하면서도 가장 높은 곳에서 눈부신 빛을 발산하는 그런 사람... 말하자면 이건 그냥 '사기캐'다. 매우 비현실적인 존재라는 뜻이다. 

 

꿈도 욕심도 없다고 스스로 말해 온 사람, 낮에는 햇빛 아래 누워 있고 밤에는 등불 아래 누워 있는 것이 제일 좋다고, 평생 그렇게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던 한심한(?) 소년... 하지만 그는 타고난 재능으로 불과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세계적인 스타 화가가 되어 있다. 

 

그런 최웅에 비해 국연수(김다미)의 느낌은 상당히 무겁고 어둡다. 또 그만큼 현실적이기도 하다. 부모 없이 할머니와 단둘이 살며, 그러잖아도 빠듯한 생활에 얼굴도 본 적 없는 삼촌의 빚까지 떠안아야 하는 그녀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다. 좀 더 험하게 말하면 찌들어 있다. 내면의 부드러움이 겉으로 드러나기에는 그녀의 현실이 너무 차갑고 까칠하다. 

 

물론 최웅도 화가로서 작업을 할 때는 며칠 밤을 새워 몰두하긴 한다. 그러나 자신의 직업에 특별히 열정적인 캐릭터로 보이지는 않는다. 좋은 기회가 생겨도 자기는 별 생각 없다며, 더 간절한 사람한테 양보하겠다고 말한다. 누가 자기 그림을 교묘히 베껴도 굳이 탓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기한테 위작 작가라는 오명이 씌워져도 해명조차 하지 않는다. 직업적 명예와 성공 자체가 그에겐... 뭐 그렇게 아주 중요한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남들은 기를 쓰고 발버둥쳐도 얻지 못하는 것들이 왠지 그의 손에는 거저 쥐어지는 것만 같다. 느긋하게 그늘에 누워 쉬다가 잠깐만 작업해도 그의 그림에는 천재적 재능이 묻어난다. 모짜르트를 질투하는 살리에르의 입장에서는 (이 작품에서는 '누아 작가'라고 불리는 곽동연 캐릭터) 정말 얄밉기 그지없을 것이다. 게다가 최웅은 따뜻한 품성과 넘치는 사랑과 더불어 엄청난 재력마저 갖춘 부모님의 외아들이기까지 하다. 온 동네를 장악한 '웅이네' 음식점 체인을 운영하시는 그 부모님(박원상, 서정연)이 비록 친부모는 아니라지만, 오히려 그러니까 최웅(웅이 도련님)은 더한 행운아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김지웅(김성철) 역시 국연수 만큼이나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사는 캐릭터이다. 물론 드라마의 주연들인 만큼 능력들은 좋아서 두 사람 모두 자기 직업 분야에서는 인정받고 있으니, 진짜 현실 속 인간들보다는 훨씬 나은 처지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친엄마와 살면서도 평생 애정과 관심에 목말랐고, 평생 친구인 최웅을 부러워해야 했던 김지웅의 처지는 어떻게 보면 이 드라마에서 가장 짠내나는 캐릭터였다. 그가 평생 사랑해 온 여자는 국연수였는데, 결국은 모든 것을 다 가진 (경제적 풍요와 더불어 부모님의 사랑도 듬뿍 받는) 최웅이 그녀마저 낚아챘으니 말이다. 

 

국연수를 향한 최웅의 명대사들 - "어차피 항상 지는 건 나야" / "네가 날 사랑하는 걸 보고 싶었나봐... 나만 사랑하는 널 보고 싶었나봐..." / "네가 말하는 건 다 듣고 다 기억하니까, 계속 말해 줘..." 이 외에도 무척 많다. 너무 많아서 일일이 주워섬길 수가 없다. 그냥 듣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뛰고 눈물이 샘솟는 달달한 사랑의 명대사들... 시청자로서 내가 보기에 국연수 캐릭터는 똑 부러지는 것 말고는 크게 특별한 것 없어 보이던데, 당최 무슨 복인지 모르겠다.  

 

양부모가 아무리 잘해 주셔도, 아무리 사랑하고 사랑받아도, 역시 친부모의 부재는 최웅의 가슴속에 커다란 구멍으로 자리잡혀 있었다. 자기 존재에 대한 근원적 의문... 내 것이 아닌 남(양부모의 죽은 친아들)의 인생을 빼앗아 살고 있다는 자책감이 바로 허구헌날 누워 있기만 좋아하고 매사에 의욕 없어 보였던, 그 무기력함의 실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웅은 사랑하는 국연수와 이어짐으로써 마지막 하나의 빈칸을 채워, 결국 완벽한 인생, 흠결없는 행복을 이루어냈다. 어찌 보면 참 운이 좋아서 쉽게 얻어낸 꿈결같은 인생이었다. 

 

아이돌 출신 톱스타로서 최웅을 짝사랑하는 엔제이(노정의) 역시 특별하지만 현실적인 캐릭터다. 알려진 이름의 무게 만큼이나 빡빡한 삶을 견뎌와야 했던 그녀로서는, 새털구름 같은 최웅의 존재가 그 자체만으로도 휴식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 무엇에도 (국연수를 제외하고는) 집착하지 않는 듯한, 그 텅 빈 듯한 공허함이 극도의 자유로움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니 숨결 하나마저 통제받으며 살아 온 그녀 입장에서는어찌 동경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많은 것을 가졌지만, 또 그만큼 갖지 못한 것들에 목마른 그녀였고, 그 중에도 자유는 충분히 갈구할만한 큰 가치였다. 

 

사실 대부분 현실적인 캐릭터들 속에 오직 남주인공 최웅만이 극도로 비현실적이었다. 어릴 때 친부모에게 버림받았지만 그보다 훨씬 좋은 최고의 양부모님이 거저 주어지고, 뼈를 깎는 치열한 노력 없이도 직업적 명예와 성공이 쉽사리 굴러들어오고, 잠시 몇 년간 헤어져서 고통받았지만 결국은 단 하나의 사랑마저 큰 장애물 없이 획득하고 마는, 위너 중의 위너가 최웅이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별로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ㅎㅎ

 

어쩌면 바로 그래서 최웅 캐릭터가 더 매혹적이었던 것 같다. 그를 보고 있으면 이 숨막히는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니까. 그의 달달한 대사를 듣고 있으면 이 쓰디쓴 현실 속에 잊고 있던 꿈을 되살리게 해 주니까. 그래서 '그 해 우리는' 이 드라마의 핵심은 최웅이었던 것 같다. 그 존재만으로도 저 햇살 아래 나부끼는 청춘의 교복 만큼이나 아련하고 눈부신,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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