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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야청청(獨也靑靑) 하리라 본문

나의 생각

독야청청(獨也靑靑) 하리라

빛무리~ 2022. 8. 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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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의 낙락장송(落落長松)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滿乾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 성삼문(1418~1456) 

 

 

아주 오래 전, 학생 시절부터 좋아하던 시조였는데 문득 오늘 다시 떠올랐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2행은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고, 제1행과 제3행만 생각났을 뿐 아니라 지은이조차도 누구였는지 가물가물했다. 평생 나름 괜찮은 기억력과 암기력을 자신해 왔건만, 좋아한다면서도 어느 덧 저 짧은 시조 한 수마저 온전히 기억 못하게 되어버린 세월에 나는 고소(笑)했다. 하지만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인간의 본성이란 쉽게 변하지 않는 것... 나는 10대 여고생이었던 수십 년 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여전히 '독야청청'이라는 단어에 매혹된다. 

 

흰 눈은 원래 깨끗함과 순수함의 상징이지만, 이 시조에서는 반대의 의미를 품고 있다. 건곤()은 천지를 의미하고 만(滿)은 ‘가득 차다’라는 뜻이니 만건곤(滿)은 '온 세상에 가득찬' 풍경을 가리키는데, 이 시조의 저자인 성삼문(成三問)은 세상을 가득 채운 흰 눈에 홀로 동화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조에서 흰 눈(白雪)은 추악한 욕심으로 온 세상에 피를 뿌리며 군림한 권력자들과 그에 부화뇌동한 자들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흰빛 지옥이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 홀로 푸른빛을 유지하겠다는 저자의 보기 드문 기개(槪)를 생각할 때, 나는 오늘도 전율한다. 

 

주위의 백 명이 모두 맞다고 할 때, 혼자 아니라고 말해 본 적이 있는가? 또는 주위의 모든 사람이 누군가를 욕하고 비난할 때, 친분 때문이 아니라 그게 옳지 않다는 생각만으로 왕따가 된 사람의 편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어느 경우에나 참 쉽지 않은 일이다. 다수의 반대편에 선다는 것은...... 나는 시류에 휩쓸리거나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는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남들의 무관심이 더 편안할 때가 많았고, 무엇이든 유행에는 별 관심이 없으며, 남들이 뭐라거나 말거나 내 스타일대로 고집스레 살아왔다. 나름대로는 독야청청했던 걸까? 아니, 내게는 결정적인 요소가 부족했기에 감히 그렇다고는 못 하겠다.

 

나는 용기가 부족했다. 남들 앞에 나서서, 그들과 다른 나의 생각을 외치기에는 나약하기 그지 없었다. 그저 골방에 틀어박혀 스스로를 세상과 차단시키며, 어쨌든 세상의 더러움에 동화되지는 않을 수 있었노라고 자신을 위로했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는 '독야청청'을 그리는 꿈이 있었는데...... 이 시조를 지은이가 사육신 중 한 사람인 성삼문이라는 사실을 오늘  문득 되새기니, 과연 그 '독야청청'이 얼마나 큰 용기와 희생을 요구하는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그럼 이제부터라도 나는 '독야청청'할 수 있을까?

 

망설임 없이 즉시 고개 끄덕일 자신은 솔직히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소망한다. 언젠가는 나의 서슬푸른 기개를 당당히 온 세상에 떨칠 수 있기를, 아마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언제나 소망할 것이다. 그리고 매우 느린 걸음이나마 조금씩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그 '독야청청'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날도 오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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