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성추행 피해자 여군의 죽음, 치떨리는 2차 가해의 결과 본문
동료에게 성추행을 당한 후
안타깝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군 중사의 소식에 가슴이 저리다.
물론 1차 범죄자는 성추행 가해자이나
내 생각에는 그 일을 은폐하려 하고
오히려 피해자를 설득하려는 시도로
2차 가해를 했던 공군 상관들 역시
성추행범 못지 않은 범죄자라 생각한다.
"없던 일로 해주면 안 되겠느냐?"
"살면서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일인데"
아, 정말 위의 두 문장을 읽기만 해도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저런 경우가 이 사회에 너무도 흔하기에
그래서 더욱 치가 떨린다.
https://news.v.daum.net/v/20210603063703602
분명한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을 때
사건 축소와 은폐를 목적으로
피해자를 설득하거나 화해를 종용하는
그런 일은 사회 어디에서나 일어난다.
내가 겪은 일은 성추행은 아니었지만
도저히 덮을 수 없는 큰 상처를 입었을 때
같은 단체 내부 사람들이 저런 식으로
별 일 아니라며 대충 지나가길 요구하고
가해자와 억지 화해까지 권했을 때
그들은 부인하겠지만
내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명백히
가해자 편에 서 있는 행동이었고
거듭 가해지는 2차, 3차, 4차 가해였다.
단지 화해를 권했을 뿐인데
화해하는 건 서로 좋은 일인데
그리고 조직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인데
그게 왜 가해자를 편드는 거냐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그건 100% 가해자를 편드는 것이 맞다.
그런 경우 피해자는 방패도 없이
적진에 홀로 서 있는 심경이 된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무수한 폭격을
혼자 맨 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 절망적이고 막막한 심경은
겪어 본 적 없는 사람은 모른다.
게다가 이 사건의 경우 피해자는
성추행이라는 수치스런 일을 겪었고
군대라는 폐쇄적 조직 안에 있었기에
더욱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상관들이 대부분 남성들이었을텐데
그들 앞에서 피해 사실을 털어놓기도
사실은 죽기보다 싫었을텐데
그 수치심을 감당해야 할 만큼
결코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상관들은 그녀의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껌처럼 씹어버렸다.
단언컨대 2차 가해가 없었다면
성추행을 당한 일 자체만으로는 결코
죽음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 특히 힘을 가진 사람들이
피해자의 편에 서 주지 않고
오히려 가해자의 편에서 회유할 때
그녀는 살아갈 힘을 잃었을 것이다.
어떤 심정인지를 너무 잘 알기에
나는 간신히 위기를 넘겼지만
지금도 그 때를 떠올리면
뼛속까지 울분이 차오르기에
나는 그녀의 죽음에 깊이 분노한다.
어차피 가해자들의 처벌은
한없이 미약할 것이다.
그녀가 겪었던 고통과
그녀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겪어야 할
남은 시간의 고통에 비한다면
새털의 무게도 되지 않는
가벼운 대가만을 치르게 될 것이다.
어째서 세상은 항상 죄인들의 편인지...
슬픈 마음으로 되새겨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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