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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화 속으로' 학도병의 피로 지켜낸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 본문

책과 영화와 연극

'포화 속으로' 학도병의 피로 지켜낸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

빛무리~ 2021. 6. 6.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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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의 달 6월을 맞이하여, 특별히 오늘 6월 6일 현충일을 시작으로 몇 편의 영화 리뷰를 계획하고 있는데 그 중 첫번째 작품은 2010년 개봉작인 '포화 속으로'가 선택되었다. 전쟁의 모든 것이 비극이지만 그 중에도 어린 학도병들의 희생은 더욱 깊은 슬픔과 먹먹함으로 다가온다. 대부분 채 스무살이 못 되었던 그 청춘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죽어갔던 것일까? 

 

 

외국과의 전쟁이었다면 국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하겠지만 6.25 한국전쟁은 좀 다르다. 물론 외세의 개입이 있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이념에서 비롯된 동족 상잔의 전쟁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출발부터가 참으로 부당한 비극이었다. 당최 이념이 무엇이기에 한 민족, 한 나라의 국민들이 서로 피를 흘려야 했다는 말인가? 

 

그러나 인생 경험이 많아질수록 한 국가를 지배하는 이념이란 결코 단순한 감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결론부터 요약해 본다면, 과도한 희생을 치르기는 했지만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은 그 희생을 허망하다고 여기지 않을 만큼, 그들의 고귀한 희생이 후손에게 커다란 은혜로 기억될 수 있을 만큼 가치있는 것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1950년 8월, 남하하는 북한 인민군에 맞서 포항을 지키던 강석대(김승우) 대위의 부대는 낙동강 사수를 위해 집결하라는 명령을 받지만, 이제 전선의 최전방이 되어버린 포항을 비워둘 수 없었던 강석대는 어쩔 수 없이 총 한 번 제대로 잡아 본 적 없는 71명의 학도병을 그 곳에 남겨두고 떠난다. 유일하게 전투에 따라가 본 적이 있다는 이유로 오장범(최승현-TOP)을 중대장으로 임명하는데...  

 

 

"중대장 못하겠심니더. 저는 골목대장 한 번도 해본 적 없심니더!" 

나이도 어릴 뿐 아니라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도 않는 성격의 오장범은 자신 없음을 고백하지만... 

 

 

"마음으로 이끌어라. 진심으로 네 마음속에서 우러나올 때, 모두가 너를 따를 것이다."

강석대는 이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난다. 그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누나처럼 따뜻하게 장범을 돌봐주었던 간호사 화란(박진희)도 강석대의 부대와 함께 떠나버렸다. 상처를 치료하면서도 걱정스런 말투로 "아프나?" 물어봐주고 "너는 이름이 뭐냐?" 고도 물으며 친절하게 관심을 보였던 그녀...

 

시시각각으로 죽음의 공포가 닥쳐오는, 누구에게도 개인적 관심을 가질 수 없는 그 상황에서, 화란은 여전히 장범을 '인간'으로 보아주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녀를 볼 때만은 겁먹은 소년의 눈망울을 그대로 드러냈던 장범이었는데, 이제 그녀도 곁에 없다. 

 

 

살인미수죄로 소년원에 끌려가는 대신 전쟁터에 자원한 구갑조(권상우) 캐릭터는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에는 깡패처럼 보이다가 차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끼워넣은 인물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 가상 캐릭터로 인해서 실제 학도병들의 명예가 약간은 더럽혀졌다고 나는 느꼈다. 

 

소년원이 싫어서 지원한 학도병은 실제로는 없었다. 오히려 학도병들은 당시 기준으로 대단한 엘리트였다. 영화에서는 모두 고교생으로 묘사되었으나, 최승현이 연기한 학도병 중대장 김용섭은 서울대학교 2학년이었고 그 외에도 신원이 확인된 대학생 수만 10여 명이나 되었다. 영화 속 학도병들은 모두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여 포항 현지에서 모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대학생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포항여중에 모였던 71명의 학도병은 안동에서부터 김석원 사단장을 따랐던 수백 명의 학도병 중 일부로, 김석원이 제3사단으로 옮기게 되면서 자유롭게 행동해도 좋다는(집에 가도 좋다는) 지시를 내렸음에도 열렬한 사명감으로 포항까지 따라왔던 사람들이었다. 영화 속 학도병들의 모습은 실제에 비해 너무 어리고 나약한 느낌이 있는데, 그건 비극을 강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굳이 살인미수 깡패 캐릭터를 넣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부산은 이 박무랑이가 제일 먼저 접수합네다. 766은 포항으로 진격한다!”


이 때 영덕을 초토화 시킨 북한군 진격대장 박무랑(차승원)이 이끄는 인민군 766 유격대는 낙동강으로 향하라는 당의 지시를 무시하고 포항으로 방향을 틀었다. 영덕에서 포항을 거쳐 최단 시간 내에 최후의 목적지인 부산을 함락시키겠다는 전략이었다. 박무랑의 부대는 삽시간에 포항에 입성하고, 포항여중에 남아있던 71명의 소년 학도병들은 자신들만의 힘으로 북한군 정예부대인 766 유격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학생 동무가 오장범인가?" 

 

박무랑이 위압적인 어조로 묻는다.  

 

 

"그럼 당신은 뉘긴데?" 

 

골목대장도 해본 적 없다면서 중대장 못 하겠다고 애원하던 오장범이, 간호사 화란 누나 앞에서 송아지처럼 겁먹은 눈으로 그렁그렁 눈물까지 맺힌 채 올려다보았던 오장범이, 검은 늑대처럼 사나워 보이는 북한군 대대장 박무랑 앞에서 기죽지 않고 맞선다. 그는 의연한데 내가 눈물겹다. 탑 최승현의 연기가 아주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약간 어설퍼 보이는 모습이 학도병답게 더 순수해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제5사단 766부대 소장 박무랑이다. 우리 부대는 정확히 2시간 후엔 12시 정각, 이곳을 공격 점령할 예정이다. 만약 저 계양대 위에 백기를 걸고 투항한다면 모두 살려줄 것이다. 내가 학생 동무들에게 이런 은혜를 베푸는 것은 동무들 모두가 미제 승냥이들과 이승만 앞잡이들의 총알받이로 여기 나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또한 동무들은 이제 통일된 우리 조국의 미래를 책임질 역군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무랑의 어조에는 오만함과 더불어 약간의 동정심도 느껴지긴 한다. 

 

 

"12시에, 여기서 다시 만납시다!" 

 

오장범의 대답은 얼핏 항복하겠다는 소리처럼 들리지만, 그 형형한 눈빛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대대장 동지, 연락이 왔는데 아직도 백기를 안 올렸답니다!" 

 

소년들에게 항복할 뜻이 없음을 깨달은 박무랑, 그래도 잠시 망설이는데...... 

 

 

옆에서 부관이 공격을 재촉하며 그의 우유부단함을 질책하자 박무랑은 조용히 대답한다. 

 

"군인이라면 벌써 죽였소. 동무 눈에는 저 애들이 군인처럼 보이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끝내 결단을 내리고......  

 

 

한편 결전을 앞두고, 아니 어쩌면 죽음을 앞두고, 오장범은 어머니(김성령)를 생각한다. 여기서 유명한 '학도병의 편지'가 나레이션으로 흘러나온다.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 '부치지 못한 편지' 등의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는 그 편지는 당시 동성중학교 3학년이던 이우근 학도병의 품 속에서 사후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오장범의 실제 모델인 중대장 김용섭은 서울대학교 2학년이었으므로 '학도병의 편지'는 그가 쓴 것이 아니지만, 영화에서는 그의 목소리로 표현되었다. 전장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절절한 마음과 더불어, 무엇 때문에 전쟁을 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는 티없이 순수한 마음까지 드러나 있는 이 편지는 가슴아픈 전쟁의 유산이다. 

 

 

"어머님!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십여 명은 될 것입니다. 저는 두 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동성중학교는 전통적인 가톨릭 재단의 학교였고, 이우근 학도병의 친형은 훗날 뛰어난 작곡 실력으로 한국 가톨릭 교회음악에 큰 업적을 남기게 되는 이문근 사도요한 신부이니, 소년 이우근도 천주교 신자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그의 마음속에, 아무리 전쟁 중이지만 스스로 살인을 했다는 사실은 적잖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가엾게도 어린 소년은 본능적 두려움과 더불어 죄책감에도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 학도병의 편지 전문 보기

 

더보기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 (전문) 


이우근

어머님!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십여 명은 될 것입니다.
저는 두 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수류탄의 폭음은 저의 고막을 찢어 놓고 말았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제 귓속은 무서운 굉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머님,
괴뢰군의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우기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님!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님께 알려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저 옆에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볕 아래 엎디어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엎디어 이글을 씁니다.
괴뢰군은 지금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저희들 앞에 도사리고 있는 괴뢰군 수는 너무나 많습니다.
저희들은 겨우 71명 뿐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머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까 조금은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습니다.

어머님!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하고 부르며
어머님 품에 덜썩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제 손으로 빨아 입었습니다.
비눗내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한 가지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어머님이 빨아주시던 백옥 같은 내복과
제가 빨아 입은 그다지 청결하지 못한 내복의 의미를 말입니다.
그런데. 어머님, 저는 그 내복을 갈아입으면서,
왜 수의를 문득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어머님!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저희들을 살려두고
그냥은 물러갈 것 같지가 않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님, 죽음이 무서운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어머니랑, 형제들도 다시 한번 못 만나고 죽을 생각하니,
죽음이 약간 두렵다는 말입니다.
허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돌아가겠습니다.
왜 제가 죽습니까,
제가 아니고 제 좌우에 엎디어 있는 학우가
제 대신 죽고 저만 살아가겠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천주님은 저희 어린 학도들을 불쌍히 여기실 것입니다.

어머님 이제 겨우 마음이 안정이 되는군요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니 곁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웬일인지 문득 상추쌈을 게걸스럽게 먹고 싶습니다.
그리고 옹달샘의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벌컥벌컥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어머님!
놈들이 다시 다가 오는 것 같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뿔싸 안녕이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
그럼 ....이따가 또 ...........

 

 

 

하지만 중대장으로서 학도병을 이끄는 오장범의 자세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그는 앞에 나서서 외친다. 

"강석대 대위가 우리에게 물었다. 학도병은 군인인가? 군인이 아닌가?" 

학도병들이 힘차게 외친다. "군인이다!" 

오장범이 다시 목청껏 외친다. "학도병은 군인이다!" 

 

 

"학도병은 군인이다!", "학도병은 군인이다!"

"가자~ 포화 속으로!" 

"싸우다 죽으면 배고플 일 없어서 좋겠다!" 

모두 힘차게 외치며, 애써 크게 웃으며 전투를 준비하는 학도병들의 모습... 

 

 

드디어 붉은 깃발을 빼곡히 휘날리며 북한군이 포항여중으로 진격해 들어오고...... 

 

 

옥상에서 결연히 그 광경을 내려다보는 오장범의 모습.... 

드디어 전투가 시작된다. 비극이 예정된 마지막 전투가...... 

 

 

북한군 정예부대에 용감히 맞서지만 속절없이 쓰러져가는 어린 학도병들...... 

 

 

한편 낙동강 전선에 합류해 있던 강석대 대위는 포항의 위급한 상황을 알게 되어 상부에 보고하는데... 

 

"지금 인민군 766부대와 5사단이 포항으로 진격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놔두면 학도병들이 개죽음을 당하는 건 물론이고 포항까지 위험합니다. 지원 병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상관에게서 돌아온 것은 불호령이었다. 

 

"어디서 병력을 빼서 보내? 네 눈에는 안 보여? 낙동강 사방이 온통 피바다야. 학도병들의 생명만 소중한가? 모두의 생명이 소중해. 우린 끝까지 여기를 막아내야 해. 낙동강이 뚫리면 다 끝이야.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수밖에 없어!"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해야 한다고? 

 

아... 전쟁이란 그런 것이었다.

인간의 목숨이, 그것도 죄없는 소년 수십 명의 목숨이 사소한 일로 치부되는.... 

 

그래도 강석대는 뒤늦게나마 포항으로 달려가지만 

이미 학도병의 대부분은 짧은 불꽃같은 삶을 마친 후였다. 

 

 

1950년 8월 11일, 포항여중 전투에서 71명의 학도병들은 북한인민군의 남침을 11시간 동안 지연시켰으며, 이러한 그들의 눈물겨운 활약은 국군과 연합군의 반격에 크게 기여하였다. 

 

 

학도의용군 생존자 김만규 옹은 그 때를 회상한다. 

 

"엄청난 수가 몰려와서 총을 쏘아 댔지요... 괴뢰군들은 포항여중 뒷고지를 점령해서... 뒤에서는 박격포를 때리고 앞에서는 기관총과 따발총을 쏘면서 우리를 협공해 왔어요... 마지막에는 30미터 앞까지 와서 따발총을 쏘거나 수류탄을 던집니다... 그럴 때면 수류탄을 받아서 도로 던지든지 아니면 몸으로 맞아서 터지든지... 그런 전투를 했어요...." 

 

 

실제로 당시 학도병들에게는 실탄이 부족해서, 마지막에는 북한군이 던진 수류탄을 받아 되던지는 방식으로 처절하게 끝까지 싸웠다고 전해진다. 

 

당시 죽어가던 전우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치는 김만규 옹...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가슴 속에 맺힌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은 모습이다. 

 

 

또 한 분의 학도의용군 생존자 손주형 옹도 전우들을 추억한다. 

 

"통곡하지는 못할망정 마음의 울음은 더 크지요. 마음의 아픔은... 항상 허전한 마음이 있고... 난 그래도 살아서 여기 매년 오는데 우리 친구들은 먼저 갔구나, 하는 그 마음이... 항상 잊지를 못합니다..." 

 

 

"눈 감으면 다시 만날는지 모르겠지마는... 지금 이 시간에도 나는 여기 와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데.... 내 동료들은 그 젊은 나이에 떠나가 버렸구나 하는 게... 마음이 항상 아프죠..." 

 

손주형 옹의 담담한 어조가 오히려 통곡이나 절규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자유를 빼앗기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한 번 빼앗긴 것을 되찾아오려면 또 다시 엄청난 희생과 대가를 치러야만 할텐데..... 자유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서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채 피어나지도 못한 채 꽃처럼 산화해 간 젊은 영혼들의 희생에 우리는 어떻게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을까?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그들의 피와 맞바꾸면서까지 어렵게 쟁취한 자유를 결코 잃어버리지 않도록, 굳건히 소중하게 지켜나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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