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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 '검사내전' - 아이에게 화해를 강요하지 말라 본문

책과 영화와 연극

김웅 '검사내전' - 아이에게 화해를 강요하지 말라

빛무리~ 2021. 5. 30.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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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의 '공정한 경쟁'을 읽으면서 

김웅의 '검사내전'도 번갈아 읽고 있다. 

솔직히 이준석의 책보다는 

김웅의 책이 훨씬 더 재미있다. 

 

 

'공정한 경쟁'은 인터뷰 형식으로 쓰여져선지 

너무 단순하고 강렬하고 선이 굵은 느낌인데 

김웅의 필치는 매우 섬세하고 맛갈스럽다. 

공부도 잘 하고 글도 잘 쓰고... 좋겠다. ㅎㅎ 

 

'제1장 - 사기 공화국' 에 이어 

'제2장 - 사람들, 이야기들' 을 읽는 중인데 

특히 "아이에게 화해를 강요하지 말라"는 

소제목으로 쓰여진 

학교 폭력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검사내전 - 아이에게 화해를 강요하지 말라 

 

챕터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학교 폭력이 발생했을 때 

피해 학생에게 화해를 강요하는 어른들의 태도가 

얼마나 나쁜 것인지를 김웅은 주장하고 있었다. 

 

"학교폭력의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나, 그 정도가 심해진 원인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바로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어른들이 보인 행태 때문이다.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고 오히려 가해자 편을 들어 조용히 끝내기를 강요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학생들은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를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학교폭력 문제는 강요된 피해자의 용서나 전학으로 해결되었다. 피해자만 사라지면 모든 문제가 가장 간단히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피해자들은 사라졌고, 가해자들은 승리했으며, 학교폭력은 더욱 악랄해지고 한층 은밀해졌다."

 

"많은 학교폭력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을 더욱 분노케 하는 것은 학교와 가해자 부모들의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학교폭력이란 어려서 누구나 한 번씩 겪는 일이고, 유난 떨지 않는다면 그냥 학창 시절의 추억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폭력을 가했다기보다는 쌍방 과실인 것이고, 피해자의 유별난 기행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말이 나오면 일부 교사들은 반색을 하고 기뻐한다. 자신들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고 또 문제를 조용히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기보다 오히려 피해자에게 화해와 용서를 강요한다." - 김웅 '검사내전' 중에서  

 

단순히 공감한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너무 절절히 공감해서 가슴이 아플 정도였다. 

사실 저런 경향은 학교 폭력뿐 아니라 

어른들의 사회에서도 종종 드러난다. 

 

어느 집단에서건 문제가 발생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용히 덮고 넘어가길 원한다. 

특히 지도자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따지고 파헤쳐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괜히 문제가 커진다고 그들은 말한다. 

고통스러워하는 피해자에게 유난을 떤다고 

그까짓 게 뭐 별거라고 

대충 넘어가면 될 것을 피곤하게 군다고 탓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한데도

'쌍방 과실'을 주장하는 상황은 

때때로 교통사고나 폭행 사건을 다룰 때 

경찰서에서도 일어난다고 한다. 

왜냐하면 쌍방 과실로 대충 합의를 하면 

피곤하지 않게 빠르고 간단하게 

일처리를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사회에서도 대부분의 경우 

피해자는 얌전하고 내성적인 성품이며 

가해자는 공격적이고 목소리 큰 사람이라 

1:1로 상대해도 피해자 쪽이 밀리는데 

설상가상 주변에서까지 대충 넘어가라며 

화해를 종용하고 쌍방과실이라 주장하면 

억울함에 피가 거꾸로 솟을 뿐 

효과적으로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 

 

어른도 그러한데 하물며

어린 아이들이라면 더욱 막막할 것이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어 봐도 해결책이 없으니 

결국은 목숨을 끊는 일까지 발생하고 만다. 

 

"아이들은 학교와 우리 사회에서 한 가지 진실을 깨달은 것이다. 피해를 입었다고 말하는 것은 더 큰 피해를 불러온다는 점이다. 아무도 피해자의 편에 서지 않는다.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고 아무런 불이익도 받지 않지만, 피해자는 더 큰 보복과 따돌림을 당한다. 가해자들을 지원하는 사람들과 보호하는 절차는 겹겹이 쌓여 있지만, 피해자를 위한 관심과 보호의 손길은 턱없이 부족하다. 아이들은 더 심한 보복에 시달리게 되고 점차 고립된다. 우주에서 나 혼자뿐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만이 학교폭력을 벗어날 유일한 길이 된다." - 김웅 '검사내전' 중에서 

 

나는 어떠한 범죄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무조건 '사회'에서 찾으려는 태도에 

상당한 반감을 지니고 있다. 

분명 같은 사회에서 비슷한 처지에 놓였어도 

누구는 범죄자가 되고 누구는 그렇지 않으니 

사회보다는 개인적 원인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나의 사고 체계가

범죄의 일반이론(General Theory of Crime)'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이 책에서 배웠다. 
고트프레드슨과 허쉬(Gottfredson and Hirschi)

가 주장한 이 이론은 다음과 같다. 

 

"‘범죄의 일반이론’은 범죄나 그와 유사한 일탈행위가 모두 자아통제를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자아통제 부족’을 모든 범죄의 ‘일반적인 원인’으로 꼽기 때문에 일반이론이라고 불린다. 자아통제가 낮은 원인에 대한 설명이 재미있는데, 흔히 말하는 사회적인 원인이나 제도 때문이 아니라 어린 시절 부모나 보호자가 자녀의 행위를 주의 깊게 감독하지 않고, 그 행위에 대해 처벌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아통제에 대한 사회적인 영향은 매우 미미하다는 것이다. 결국 청소년 폭력의 원인은 사회가 아니라 부모가 아이를 잘못 양육한 탓이라는 뜻이다."


"흔히 범죄나 청소년 범죄를 사회 탓으로 돌린다. 경쟁 위주의 입시 등으로 원인을 돌리는 것은 여러모로 편리하고 저항도 덜 받는다. 모두에게 책임을 돌리게 되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구조적인 문제라는 피상적인 말잔치로 포장되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이론은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그 때문에 처음 발표된 199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비난을 받아왔다. 하지만 1993년 그래스믹Grasmick의 연구에서부터 2005년 맥도날드McDonald의 연구에 이르기까지, 이를 반박하기 위해 실시된 여러 조사들에서 오히려 일반이론이 옳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따라서 학교폭력의 원인을 경쟁이나 사회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비과학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 김웅 '검사내전' 중에서 

 

이보다 더 속시원한 논리가 없다. 

분명 자기가 죄를 저질러 놓고도 이 몹쓸 세상 탓, 사회 탓만 하고 있으니 생전 반성이란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뻔뻔한 인간이 수두룩해진다. 

 

그러므로 '범죄의 일반이론'에 입각하여 자기 잘못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시켜 주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사회에서 원인을 찾는다면 결국은 남 탓을 하게 되고 세상 무책임한 인간을 길러내게 된다. 

 

 

"흔히 처벌이 능사는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처벌만' 하면 안 된다는 말이지 처벌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끔찍한 학교폭력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해자를 처벌하는 건 비교육적인 처사라는 주장들이 적지 않다는 데 있다. 그들은 진심으로 가해자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것이니, 처벌이 아니라 관용과 이해를 베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심지어는 학교폭력을 저지른 학생에 대한 징계 내용을 생활기록부에 남기는 것은 인권 침해라는 주장도 있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장래에 오점을 남기는 현대판 주홍글씨라는 것이다... 이렇게 가해자를 두둔하는 분위기 속에서 어린 시절의 잘못에 대한 응당한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에 ‘자아통제 부족’이 생겨나는 것이다."


"인권 의식은 자신이 아니라 타인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아이들의 인권이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자신의 장래에 불이익이 되는 처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정말 알아야 하는 것은 폭력을 쓰면 친구와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사실이다. 왜 피해를 입은 아이들은 평생 그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하고, 가해를 한 아이들은 아무런 불이익 없이 살아도 되는가." - 김웅 '검사내전' 중에서 

 

세상이 다 그런 것인지 우리나라에서만 유난히 더 그런 것인지 사회는 언제나 가해자에게 너그럽다. 

열두폭 치마로 감싸지고 보호되는 것은 

언제나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 쪽이다. 

 

 

이런 부당함을 이토록 정확하게 

이토록 시원하게 꼬집어 준 책은 

내가 읽은 바로는 '검사내전'이 처음이다. 

 

 

화해를 강요받은 피해자들은 

그러잖아도 상처입은 자존감이 

더욱 바닥을 치게 된다. 

자신은 부당한 일을 겪어도 

항의조차 할 자격이 없는 

정말 하찮은 존재로 인식되는 것이다. 

 

화해 강요에 설득되는 순간 

피해자의 마음속에서 자기 자신은 

벌레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가해자가 자기보다 훨씬 가치있는 존재라서 

모두들 그의 편을 드는 거라고 느낀다. 

 

이런 상태에서는 

진정한 용서나 화해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비참하게 무릎꿇려진 굴복이며 

세상과 인생에 대한 모든 희망과 기대를

내려놓고 포기하는 행동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피해 당사자 아닌 타인이 나서서 

화해와 용서를 권하는 행위를 

매우 역겹게 여기고 증오한다. 

본인은 그것을 선의라고 주장하겠지만 

결과적으로 악에 동조하며 악을 키우는 행위다. 

 

너는 소중하고 존엄한 존재이며

가해자들과 친구가 되려 노력할 필요도 없고 

화해하거나 용서하려 노력할 필요도 없다고 

피해 학생들에게 말해 주었다는 김웅의 이야기에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진정 용서하고 망각하는 유일한 방법은 

 응징 혹은 정당한 징벌을 가하는 것이다. 

 죄인이 적절하게 징벌되고 나서야 

 나는 앞으로 움직일 수 있고 

 그 모든 일과 작별할 수 있다." -슬라보예 지젝 

 

너무 거칠고 노골적인 표현이지만 

내포된 뜻은 100% 이해한다. 

죄인이 적절한 징벌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진정한 용서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교 폭력에 관한, 

가해자와 피해자에 관한, 

그리고 처벌에 관한 김웅의 생각은 

내 마음 속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 주고 

답답했던 속을 뻥 뚫리게 해 주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이제 정치를 하기 시작했으니 

조금이나마 세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하도록 

힘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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