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STORY 2014 우수블로그
TISTORY 2012 우수블로그
TISTORY 2011 우수블로그
TISTORY 2010 우수블로그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드라마 '열혈사제'를 기대하는 이유 본문

드라마를 보다

드라마 '열혈사제'를 기대하는 이유

빛무리~ 2019. 2. 15. 17:42
반응형

나는 지금껏 드라마나 영화에 '천주교'라든가 '성당'이라든가 '신부(사제)' 라든가 '수녀'라는 존재들이 소재로 쓰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대중에게 더욱 친근한 종교로 다가가는 소통의 창구라고 볼 수도 있고, 그렇기에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이 많다고 볼 수도 있었지만,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매우 못마땅할 때가 많았다. 

가장 큰 이유는 작품 속에서 뭔가 '왜곡'된 부분이 드러날 때마다 심히 거슬렸기 때문이고, 또 한 가지 이유는 별 것도 아닌 분위기 메이킹을 위해 천주교나 성당 등의 소재를 너무 손쉽고 안일하게 사용한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천주교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주인공이 갑자기 성당에서 결혼을 한다든가, 뜬금없이 고해소에서 신부님에게 고민상담을 한다든가 이런 장면들조차도 나는 꽤 많이 불편했다. 

 

아무런 고민도, 별다른 조사도 없이, 그냥 "갑자기 콧물 나오니까 휴지 한 장 빌려 줘" 이런 식으로 천주교 관련 소재를 제멋대로 덥석 집어다 쓰고는 휴지통에 던져버리는 듯한 모습들이 불쾌했던 것이다. 결혼은 일반 예식장에서 하면 되고, 상담이 필요하면 신경정신과나 전문 상담가를 찾으면 될 것을, 뭔가 좀 그럴싸한 분위기가 필요할 때마다 성당과 신부님을 찾는 모습들은 현실적으로도 타당성이 없는 것이었다. 

 

그 외 성당 안에서 신자들이 개신교회의 찬송가를 부른다든가 '하느님'을 '하나님'으로 부른다든가, 기타 등등의 여러가지 오류들도 수시로 있어 왔다. 하긴 이렇게 따지자면 오류 투성이의 의학 드라마나 법정 드라마를 눈 뜨고 봐야 하는 현직 의사들이나 법관들의 심경은 어떨까마는, 나에게 있어 천주교 신앙이란 생명처럼 소중한 것이기에 좀처럼 쿨한 마음으로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최근 드라마나 영화에는 성당이나 신부님이 정말 많이 등장한다. 그나마 요즘은 예전보다 오류가 적어지고, 필요에 따라 쓰고 버리는 식의 가벼운 접근이 아니라 철저한 조사 과정을 거쳐 타당성 있고 진지하게 접근하는 작품들이 많아졌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작품들에도 거의 눈길을 주지 않았는데 어쩐지 보는 것 자체가 좀 부담스럽기도 했고, 가끔씩 느껴지는 미세한 삐걱거림조차 불편했기 때문이다. 

 

서론이 길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새로 시작되는 김남길 주연의 드라마 '열혈사제'를 기대하고 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벌써부터 나의 불안감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한가득이다. 등장인물의 무려 절반 이상이 신부님 아니면 수녀님 아니면 세례명을 지닌 천주교 신자들이기 때문이다. 관련 인물이나 소재가 많아질수록 오류의 가능성도 그만큼 커지는데... 혹시 박재범 작가가 천주교 신자인가 해서 검색까지 해 보았으나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어떤 배우들은 역할과 너무너무 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한데, 과연 괜찮을까? 이 모든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좋은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을까? 솔직히 의문스럽기는 하다. 게다가 요즘 드라마에 절대 빠지지 않는 그놈의 코믹 요소가 적잖이 들어간 작품이라는데, 개인적으로 시트콤 아닌 일반 드라마에 첨가되는 코믹 요소들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더욱 불안해지는 부분이다. 과연 유치하지 않고 신선하게 잘 표현해낼 수 있을까?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열혈사제'를 기대하는 이유는 홈페이지에서 읽게 된 작가의 '기획 의도' 때문이다. 나는 이 '기획 의도'를 읽는 순간, 머리부터 발끝까지 형언할 수 없이 시원하고 상쾌한 소름이 쫙 돋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온갖 추한 죄는 버라이어티하게 다 처 짓고,

간증 한 번 하고 [죄 사함]받았다며 혼자 정신승리 하고,

이를 무한반복하며 맘 편히 죄 지으려고 신을 믿는 역겨운 인간들!

예로부터 지금까지 세상에 가장 잘 먹히는 [코스프레]가 바로 이것이다.

 

사실 이런 인간들은 지 마음 편하자고 속죄하는 거다.

지한테 당한 사람들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하는 파렴치 한 [개아기]들이다.

아무리 만인에 평등한 종교라도 이젠 사람 좀 가려서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사람 가려 받고, 혼낼 일은 혼내고, 속세의 정의와 밸런스를 맞추는 것,

이것이 현대 종교가 가져야 할 새로운 정의관이 아닐까?

 

이에 쌈박한 정의관을 가진 성직자를 [우리의 바람]대로 그려보고 싶었다.

이 성직자를 통해 [종교적인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부패에 대해 무감각해진 한국인들의[모럴 해저드]를 보여주려 한다. 

더불어 썩어 빠진 세상에 있어서 불멸의 항생제는 역시나 [인간]이라는 사실도!

 

와... 정말 이 기획의도만으로도 박수를 쳐 주고 싶다. 어쩌면 이렇게 내 마음의 답답한 곳을 뻥 뚫리게 해주고 가려운 곳을 정확히 박박 긁어줄 수 있단 말인가! 특히 가장 내 마음에 드는 부분은 "맘 편히 죄 지으려고 신을 믿는 역겨운 인간들" 이라는 내용이었다. 역겨운 인간들... 그래, 역겨운 인간들... 나 역시 그런 인간들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시커먼 뱀의 심보를 해맑은 양의 얼굴로 위장한 그들을! 

 

그래서 저 기획 의도는 내 마음과 꼭 맞아 떨어졌다. 나의 소망과 일치했다. "아무리 만인에 평등한 종교라도 이젠 사람 좀 가려서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사람 가려 받고, 혼낼 일은 혼내고... "솔직히 나도 천주교가 그런 종교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사람을 가려서 받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혼낼 일은 혼내는" 것조차 쉽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오히려 성경에는 "악인에게 맞서지 말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마태오복음 5장 39절) 천주교는, 아니 그리스도교는 본질적으로 그런 종교다. 죄인을 벌하기 힘든 이유는 현실적인 제약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이와 같은 교리 때문이다. 단죄는 오직 하느님의 권한일 뿐...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물론 앞서도 밝혔다시피 나에게 천주교 신앙은 목숨처럼 소중하다. 그러나 실천하기는 커녕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조차도 어려운 가르침이 있다. 그저 이를 악물고 저 성경 구절을 되뇌이며 "아직 내 기도가 부족해서 그렇겠지, 언젠가는 되겠지, 살아서 안 되면 죽은 후에라도 되겠지" 할 뿐이다. 그런데 너무나 힘겹고 역겹다. 비록 죄를 벌할 권한이 인간에게 없더라도 때로는 통렬히 악인을 처단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비현실적인 것을 알지만, 종교의 본질과도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설정상으로 여러가지 불안해 보이는 부분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작품 '열혈사제'를 기대하고 응원한다. 부디 좋은 드라마로 탄생하기를, 그리하여 현실 속에서는 풀 수 없는 이 답답함을 작품 속에서나마 속시원히 풀 수 있기를 바란다. 신앙은 소중하지만 때로는 굴레처럼 느껴지는 이 역겨운 용서와 화해의 의무를 잠시나마 벗어던지고 싶다. 

 

참고로 모든 영화와 드라마를 통틀어 요 몇 년 동안 내가 가장 신나게 웃으면서 보았던 작품은 마동석 주연의 '성난 황소' 였다. 마동석의 단순한 맨손 액션이 어찌나 통쾌한지... 그의 손이 닿는 곳마다 우지끈 뚝딱 하면서 악인의 뼈 부러지는 소리와 벽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ㅎㅎㅎ 칼로 찌르거나 총으로 쏘는 거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맨손으로 악인들을 때려잡는 모습은 너무나 통쾌하고 즐거웠다. 

 

집에서 남편과 함께 보았는데 내가 계속 "아싸~ 우하하~ 킬킬킬" 하면서 보니까 남편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당신이 저런 영화를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정말 속시원한 권선징악에 목말라 있었다. 범죄물도 복수극도 죄다 고구마 투성이에 악인들만 너무 강하고 선역 쪽은 약하거나 물러터져서 재미가 없었다. 제발 이번에는 그렇지 않기를, 마동석 못지 않은 김남길의 속시원한 사이다 같은 드라마를 기대한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