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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사제' 김해일(김남길) 신부의 영웅 탄생기 본문

드라마를 보다

'열혈사제' 김해일(김남길) 신부의 영웅 탄생기

빛무리~ 2019. 2. 2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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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나에게 있어 '열혈사제'는 마음 편히 부담없이 볼 수 있는 드라마는 아니었다. 현재 6회까지 (중간 광고로 반토막씩 나누지 않는다면 3회까지) 시청하는 동안 나는 마치 우리 집 내부가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공개되는 것처럼 불안했고, 그 안에서 언뜻 언뜻 비치는 왜곡된 모습들에 불편했으며, 어쩌면 우리 집 가장(아버지)처럼 느껴지던 이영준(정동환) 신부님이 억울하게 살해당하고 더러운 누명까지 쓰게 되었을 때는 뻔히 픽션인 줄을 알면서도 슬픔과 분노에 손이 떨리고 가슴이 싸늘해질 정도였다. 

나는 작품 속 이영준 신부님과 매우 비슷한 느낌을 주던 신부님을 잘 알고 있다. 수십 년 동안 가톨릭 신앙 생활을 해 왔어도 그런 분을 만나 뵙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나는 운 좋게도 무려 7년 동안이나 가까이에서 일을 도와드리며 그분의 일거수 일투족에 감동하고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 신부님은 신앙 교리서를 집필하거나 외국 신앙 서적을 번역하여 책을 발간하는 소규모 출판사의 대표격인 분이셨고, 나는 원고 타이핑과 교정 교열과 편집 디자인과 책 관리까지 담당하는 단 한 명뿐인 직원이었다. 

 

몇 가지 불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그 무렵이 내 인생의 황금기라고 해도 좋을 만큼 즐겁고 행복했으며 그 신부님을 아버지처럼 존경하고 사랑했다. 드라마 속 이영준 신부를 보면서 예전에 함께 일하던 그 신부님이 너무 생생히 떠올랐기에, 이영준 신부의 죽음과 누명을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더욱 답답하고 분노스러운 것은 이영준 신부를 살해하고 누명 씌운 악인들보다도, 진실을 밝히려는 적극적인 노력 없이 사건을 축소하고 대충 덮어버리려는 교단 상부의 모습들이었다. 

화면에는 '한국 천주교 대교구' 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만약 드라마가 아닌 현실이라면 막연히 대교구가 아니라 어느 지역인지가 명시되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서울대교구, 대구대교구 하는 식으로...) '열혈사제'의 공간적 배경은 가상의 지역인 '구담시'이므로 차라리 '구담대교구'라고 표시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픽션이라는 것이 더 뚜렷해지니까... 아무튼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엄연히 한국 천주교회의 사제이며, 구담대교구 소속 사제이며,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으며, 교황청에서조차 높은 덕망을 인정받아 몬시뇰의 칭호까지 받았던 이영준 신부의 석연찮은 죽음 앞에, 교단 상부에서 그토록 냉담하고 무심하고 부당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아니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증거 없이 섣불리 결백을 주장했다가는 오히려 더 큰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영준 신부님께서 돌아가신 이상 명확한 진실을 밝히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일단 우리는 경찰의 발표를 믿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교단이 앞장서서 진실을 밝혀 달라고 찾아갔던 김해일(김남길) 신부는 구담대교구 측으로부터 위와 같은 답변을 들었고, 곧이어 언론에까지 나서서 이영준 신부의 죄를 순순히 인정하며 사죄하는 모습을 비추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사태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구담시에는 악의 세력들로 이루어진 카르텔이 있다. 구담구청장 정동자(정영주)를 비롯하여 부장검사 강석태(김형묵), 경찰서장 남석구(정인기), 국회의원 박원무(한기중) 등 거의 모든 분야의 꼭대기에 그들이 자리잡고 앉아 있다. 이들 세력은 자연히 종교계에도 손을 뻗쳐왔을 것이고...... 구담대교구의 주교와 임원 사제들이 그에 호응하지 않았다면 결코 이와 같은 결과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준다지만(코린토1서 13장 7절), 사람이 억울하게 살해당하고 누명까지 썼는데 그냥 덮어버리는 것이 어찌 사랑이고 정의이겠는가? 

 

내가 세상 물정 모르고 정말 순진했을 때, 내가 믿고 사랑하는 것에 대한 어떤 티끌도 인정하지 않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신앙은 신앙이고 사람은 사람이라는 것을, 세상 그 어디에나 마찬가지이듯 내가 사랑하는 이 천주교회 안에도 악한 사람 또는 악의 세력과 결탁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사제들이 비록 신의 대리자로서 높이 대우받지만 결국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따라서 내외적으로 얼마든지 심각한 결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한 신부님도 계셨지만, 한편으로는 젊은 나의 신앙을 뿌리까지 흔들어 버릴 만큼 큰 상처와 실망을 준 사제도 있었다. 대학시절이었는데 그 때문에 받았던 충격을 극복하기가 얼마나 힘들고 오래 걸렸던지를 기억한다. (나중에 전해들은 소문으로는 결국 사제복을 벗고 어떤 여자한테 장가를 갔더라나 뭐라나..;;;) 아무튼 성직자라고 해서 악에 물들지 말라는 법은 없기에, 구담대교구의 주교와 사제들은 이미 악의 카르텔에 포섭되어 버렸다는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주인공 김해일(김남길) 신부는 현실적으로 거의 힘이 없는 존재다. 구담 성당에 잠깐 손님 신부로 와 있을 뿐이라 친구도 동료도 없고 신자들과도 아직은 낯선 사이다. 돈도 빽도 전혀 없는 것 같다. 이영준 신부의 헌금 착복과 성추행을 증언한 사람들이 모두 카르텔의 사주를 받은 가짜 증인임을 명백히 입증했건만, 그가 제시한 증거 자료는 경찰과 검찰로부터 깨끗이 무시당하고 만다. (하긴 부장검사와 경찰서장이 카르텔의 일원인데...) 전직 국정원 특수팀 요원이었기에 신체적 (격투) 능력은 뛰어나지만, 지금 문제 해결에는 그 능력이 별로 쓸모가 없다. 

게다가 김해일은 인격적으로도 매우 큰 결함을 지닌 사람이다. 아무데서나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성질 난다고 툭하면 탁자를 쾅쾅 내리치는 등 무례한 행동을 하고, 심지어는 아무한테나 주먹질을 한다. 이영준 신부의 사건을 담당한 경찰들의 태도가 잘못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다짜고짜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 저질스런 행위를 어찌 좋게 볼 수 있겠는가?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좋은 사람도 아니다. 실제로 그런 사제가 있다면 천주교 망신이다. 그래도 어쨌든 악의 카르텔에 맞서 정의를 구현할 사람은 김해일 뿐인데...... 

 

그는 말이 사제이고 신부님일 뿐 아직까지는 진정한 자기 편도 없고, 쓸데없는 주먹질 발길질 실력 말고는 별 힘도 없는 외로운 서민일 뿐이다. 이런 김해일이 구청장, 경찰서장, 부장검사, 국회의원에다가 대교구의 상부 인물들까지 가세한 악의 카르텔을 깨부수고 승리하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서민 영웅의 탄생이 아니겠는가? 현재까지는 카르텔의 심부름꾼 정도로 보이는 검사 한경선(이하늬)과 말단 형사 구대영(김성균)이 어찌어찌하여 김해일 신부와 한 팀을 이루고 진정한 동료가 되면서 영웅 탄생의 서막은 천천히 오를 것이다. 

 

'열혈사제'의 초반부는 나에게 고구마를 백 개쯤 먹은 듯한 답답함을 안겨주고 있다. 다른 드라마를 시청할 때보다 열 배쯤 몰입이 되니까 훨씬 보기가 힘든데... 과연 김해일 신부는 속시원한 승리를 거두며 서민 영웅이 될 수 있을까? 답답한 마음을 애써 참으며 나는 믿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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