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STORY 2014 우수블로그
TISTORY 2012 우수블로그
TISTORY 2011 우수블로그
TISTORY 2010 우수블로그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정보석, 슬프기 짝이 없는 그의 시트콤 연기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지붕뚫고 하이킥

정보석, 슬프기 짝이 없는 그의 시트콤 연기

빛무리~ 2009. 9. 24. 12:45
반응형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요즈음 나의 관심을 끄는 인물은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얼굴을 비추는 정보석이다. 참으로 한결같은 연기자라고 생각하며 꾸준히 좋아하고 있는 배우인데, 이번에 보여주는 그의 이미지는 좀 다르다. 그는 지독히 슬픈 역할도 많이 맡았었건만, 내 눈에는 이번에 맡은 역할이 가장 슬퍼 보인다.


내가 정보석이라는 연기자를 기억하는 첫 모습은 1986년 김혜수, 길용우와 더불어 출연했던 드라마 '사모곡'에서의 악역이었다. 공부는 하지 않고 소설과 드라마에만 탐닉한다고 매일 야단을 맞던 나는 몰래몰래 부모님의 눈을 피해서 그 드라마를 보느라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당시 여고생 김혜수의 드라마 데뷔작이었던 '사모곡'은 그로부터 10년 후에 '만강'으로 제목을 바꿔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사모곡'에서 남자주인공 '만강' 역은 당시 30대 중반의 길용우였는데 18세의 김혜수와는 솔직히 좀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비록 악역이었지만 샤프하고 반듯한 외모에 젊음의 열정이 묻어나던 정보석은 굉장히 신선한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그 후 정보석은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너무도 많은 작품에서 각양각색의 연기를 보여주었기에 일일이 다 기억할 수도 없고 열거할 수도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가 맡았던 역할은 임성한 작가의 '보고 또 보고'에서처럼 반듯하고 젠틀한 이미지의 똑똑한 지성인 역할이었던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물론 '오!수정'에서처럼 룸펜에 가까운 경우도 있었고, '가시고기'에서처럼 처절한 부성애를 표현한 적도 있었지만 말이다.
최근 들어서는 '신돈'의 공민왕이나 '대조영'의 이해고 등 주로 사극에서의 거물로 출연했기에, 정보석이라는 이름이 주는 이미지는 상당한 진지함과 무게감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정보석은 이순재의 사위이며 이현경(오현경)의 남편이다. 어떤 사정으로 처가살이를 하고 있는지 확실히는 알 수 없으나 극중 캐릭터를 보아하니 '능력이 없어서'라고 봐야 할 듯하다.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는 것 같긴 한데 도통 무슨 일처리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기초적인 산수 계산도 안될 뿐 아니라 기억력도 제로에 가깝다. 머리가 나쁘면 매사에 꼼꼼히 메모하는 습관이라도 들여야 사회생활을 할법하건만, 언제나 잊어버리고는 아무런 대책이 없어서 쩔쩔매니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릴 수밖에 없다. 식당 예약을 18시로 해놓고는 자기는 오후 8시로 예약했다고 우기기도 하고, 거래처에 갈 때 의논해야 할 기본적인 사항도 외우거나 메모해두지 못했으니 매번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다.
심지어 집안에 있으면서도 아내가 외출하며 "감기에 걸린 아버지가 외출하시지 못하도록 잘 지키라." 고 당부하면 알았다고 끄덕일 뿐, 곧바로 소파에 누워 잠들어 버리니 노인네는 유유히 외출해 버린다. 멀쩡한 성인 남자이건만, 무슨 작은 일 하나도 마음 놓고 맡길 수 없으니 그냥 보면서도 속터질 지경이다.


게다가 성격은 어찌나 착하고 순한지 한 마디로 '맹물'이라고 할법한 캐릭터이다. 그러다보니 온 집안 식구 중에 그를 존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장인 이순재를 제외하고는 집안의 제일 큰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입장임에도, 아내 현경과 아들딸은 물론이요 손아래 처남 지훈(최다니엘)까지도 그를 만만하게 대하며 무시한다. 장인에게는 맨날 걷어차이는 게 일이다. 그래도 단 한번 항의할 줄도 모른다.

내가 정보석의 이번 역할을 '가장 슬픈 캐릭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그 '현실성' 때문이다. 극중 정보석은 현실에 충분히 있을법한 캐릭터인데다가 아무런 극적 효과도 없이 매우 담담하게 그려지고 있다. 가수 출신의 황정음이 매번 넘어지고 깨지면서 시선을 끄는 것과 달리 베테랑 연기자인 정보석은 극중에서조차 별로 눈에 띄지도 않는다. 왠지 무시해도 될 것 같은 분위기인 게다. 황정음 캐릭터가 누가 보아도 과장되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느낌이라면, 정보석 캐릭터는 현실의 인물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너무 슬프다.


어제 방송된 '지붕뚫고 하이킥' 13회에서는 정보석의 비중이 모처럼 크게 잡혀 있었다. 언제나처럼 허술한 일처리로 장인 이순재의 구박을 받던 정보석은 식당 예약을 확인하면서 계속 불려지는 자기 이름을 들으며, 문득 '보석'이라는 이름 때문에 어려서부터 놀림을 받아 왔던 과거를 떠올린다. 대학시절인 듯 한데 그의 친구가 자기 애인에게 청혼을 하면서 "다이아몬드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일 큰 보석을 선물로 줄게." 라고 하며 정보석에게 헤드락을 걸고 마구 끌고가는 장면은 안스러우면서도 꽤 우스웠다. 아무리 당해도 "하지 마~" 라는 말 외에는 제대로 대들지도 못하는 극중 정보석의 순한 성격이 회상씬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내 이름은 왜 보석일까?" 라는 의문을 40대 중반에서야 비로소 품게 된 정보석은 우연히 작은아버지와 연결된 전화통화에서 그 이름의 유래를 알게 된다. 그가 태어나던 날, 빛나는 별이 그의 집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찾아 온 '세 사람의 박사'(-_-;;)가 보석처럼 빛나는 사람이 될 거라고 예언하면서 지어 준 이름이었던 거다. 물론 황당 에피소드이기는 했지만 적어도 '방문에 부딪혀 기절하기' 보다는 나았다. 출생시의 꿈이라든가 별난 이야기들은 일반인의 가정에서도 그냥 재미삼아 전해 내려오곤 하니까 말이다.


그게 또 뭐 그리 자랑스런 일이라고, 하늘을 보며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될게요. 아부지~" 하고 있는 힘을 다해 외쳐대는 정보석의 모습은 언뜻 부자연스러울 것도 같은데 의외로 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매우 머리가 나쁘고 순진하고 착한" 캐릭터를 그 동안 워낙 잘 살려 놓았기 때문이다. 극중의 정보석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

'지붕뚫고 하이킥'은 솔직히 시트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슬프다. 표면적인 '슬픔의 축'은 이 풍요로운 시대에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며 설움을 겪고 있는 신세경과 신신애(서신애) 자매라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주인집 딸 해리에게 뺨까지 맞아가면서 눈칫밥을 먹고 살아가는 어린 신애의 캐릭터는 그 자체만으로도 슬픔 덩어리이다.


그리고 이제는 혼자 몸이신데 연애를 좀 하시면 어때서 자꾸만 죽은 엄마가 불쌍하다며 박박 대드는 딸 현경에게 제대로 호통 한 번 못 치시는 나약한 할아버지 이순재의 모습도 안스럽기 이를데 없다.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로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김자옥과의 데이트에 늦을까봐 노심초사하는 모습은, 차마 웃기에는 너무도 처절했다.

앞으로 더 추세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초반의 이토록 무겁고 슬픈 전개는 의외였다. 언제나 시트콤이 한창 전개될 때에는 빵빵 터지는 웃음을 선사하다가 결말에 가서는 슬픈 분위기로 급전환하던 김병욱 PD가 이번에는 아예 시트콤 전체에 그 슬픔을 깔아 놓기로 마음먹은 모양이다. 그럼으로써 한층 더 현실적인 시트콤이 탄생된 듯한 느낌은 든다. 그러나 시트콤을 시청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웃음'이라는 소망을 품고 있는데, 계속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면 김병욱 PD의 의도가 무엇이었든지간에 그 빛은 채 피어나기도 전에 사그라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우선은 그저 지켜볼 뿐이다. 명석한 젊은 의사로서 매사에 무심하고 시니컬한 나쁜 남자의 매력을 보여주고 있는 이순재의 아들 지훈(최다니엘)과, 전작 '거침없이 하이킥'의 '꽈당민정'의 뒤를 이어 '꽈당정음'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황정음은 좌충우돌하면서 알콩달콩 연애의 조짐을 모락모락 피워내고 있는데 아무래도 '웃음의 축'은 그들이 담당해 주어야 할 듯하다.
정보석이 세경, 신애 자매와 더불어 맡아주고 있는 '슬픔의 축'은 그 웃음과 켜켜이 엇갈리면서 독특한 재미를 선사해 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실망을 준 적 없는 김병욱 피디에 대한 믿음을 아직은 잃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