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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 사랑의 시작은 연민일까, 고마움일까?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지붕뚫고 하이킥

'하이킥', 사랑의 시작은 연민일까, 고마움일까?

빛무리~ 2009. 10. 9.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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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높고 푸른 하늘과 시원한 바람, 빨간색과 노란색으로 물든 단풍과 은행잎들... 이 모두가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지요.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학창시절에 거의 반강제적으로 외웠던 김현승 시인의 싯귀가 떠오르네요..^^

'지붕뚫고 하이킥'도 이 설렘의 계절 가을을 사랑이야기 없이 그냥 지나쳐보낼 수는 없겠지요. 바야흐로 그들의 러브라인이 점점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왜 보는 사람의 마음이 더 두근거리는지 모르겠어요.


귀여운 할아버지 이순재 옹은 자옥 여사와의 약속이 깨어지는 바람에, 예매해 둔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갈 수 없게 되자 외손자인 준혁(윤시윤)에게 표를 건네주십니다. 시간이 촉박한 탓에 표를 팔거나 처분할 방법이 없게 되자 준혁은, 자기가 꼭 보고싶었던 공연이라며 호들갑을 떠는 과외선생 황정음과 함께 얼떨결에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가게 됩니다.

한편, 현경(오현경)의 심부름으로 지훈(최다니엘)이 갈아입을 속옷을 가지고 지훈의 근무처인 병원을 방문했던 세경(신세경)은 우연히 뮤지컬 포스터에 시선이 머무르게 되는데, 항상 그녀를 안스럽게 여기던 지훈은 누나 현경에게 그럴듯한 핑계를 대어 시간을 벌어준 뒤, 세경에게 뮤지컬 관람을 시켜 주기로 합니다.

지훈은 공연장에 들어서기 전에 아는 선배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잠시 세경과 헤어집니다. 정음 역시 커피를 사오기 위해 잠시 준혁과 떨어집니다. 이렇게 해서 준혁과 세경은 각각 혼자서 먼저 뮤지컬 공연장에 들어섰다가 서로를 발견하고 놀랍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금방 온다던 지훈과 정음은 감감 무소식이고 벌써 공연은 시작되네요?


유쾌한 뮤지컬인데 왠지 세경은 공연을 보며 슬프게 울다가 뛰쳐 나가고 맙니다. 준혁은 혼자 웃으며 관람하다가 그런 세경을 보고 놀라 따라 나갑니다.

세경이는 왜 갑자기 울음을 떠뜨린 걸까요? 그녀는 집안에서도 항상 긴장해 있고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지요. 헤어진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계신지 생사조차 알 수 없고, 혹시라도 실수하여 집에서 쫓겨나게 되면 당장 갈 곳도 없어서 어린 동생 신애(서신애)와 함께 노숙자 신세를 면할 수 없을테니 언제나 발을 동동 구르며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예요. 게다가 신애는 동갑내기 해리(진지희)한테 매일 구박을 받고 있으니 언니로서 그 아픈 마음이 오죽하겠습니까? 세경의 마음속에는 항상 걱정과 슬픔과 긴장이 가득합니다. 그녀의 나날에 무슨 기쁨이나 즐거움이 있었겠어요?


그런데 모처럼 집안일에서 벗어나 마치 다른 세상 별천지에라도 온 것처럼 편안한 자리에 앉아 좋은 뮤지컬 구경을 하고 있다보니, 문득 얼음이 사르르 녹듯이 긴장이 풀리며 갇혀 있던 설움이 터져나온 거겠지요.

준혁은 그녀가 아버지와 헤어지게 된 경위를 듣고 연민이 한층 더해집니다. 언제나 준혁이가 세경과 신애 자매를 불쌍히 여기고 잘해주려 노력한다는 것은 벌써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오늘을 계기로 그의 마음은 더 깊어질 것 같네요. 연민은 생각보다 쉽게 사랑으로 변하기도 하거든요. 과외선생 정음을 바라보는 준혁의 시선이 차츰 따뜻해진다고 느꼈었는데, 이제 그 따뜻함은 세경에게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지 않을까요?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런 기운이 살짝 느껴졌습니다.


한편 선배에게 인사를 하고 오던 지훈과 커피를 가지고 돌아오던 정음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딱 마주치게 되고, 언제나처럼 티격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둘이 타고 올라오던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춰섰네요. 아, 이렇게 식상할 수가 있나요? 너무도 진부한 설정에 실망하는 순간, 지훈이 부들부들 떨며 얼어붙고 맙니다. 그 멀쩡하고 시크한 의사선생님에게 알고보니 폐소공포증이 있었던 거예요.

처음엔 남자가 겁이 많다며 고소하게 깔깔 웃던 정음은 점점 햐얗게 질려가는 지훈의 얼굴을 보고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낍니다. 걱정스럽게 괜찮냐고 묻는 정음에게 지훈은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괜찮을 거예요" 라고 말하지만, 괜찮지 않다는 건 누가 봐도 눈에 보입니다. 놀라서 엘리베이터 문을 두드리며 구해달라고 소리치는 정음에게 지훈이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내밀고 말합니다. "저... 미안한데... 손 좀 잡아 줄래요?"


원수가 돌아서서 은인이 되는군요. 그녀가 곁에 없고 혼자 있었더라면 어쩔 뻔 했을까요? 정음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심하게 떠는 지훈의 손을 잡고 어깨를 토닥이며 곁에 있어 줍니다. 괜찮을 거라고 위로해주면서 말이예요. 이윽고 밖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구출 작업이 시작되자, 갇혀있던 두 사람은 비로소 마음을 놓게 되고 지훈의 상태도 안정되기 시작합니다. 잡았던 손을 슬며시 놓고 어색한 침묵이 흐르다가 지훈은 아직도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합니다. "...고마워요" 그 인사에 화답하는 정음의 밝은 미소가 그 어느때보다도 예쁘게 보이더군요.

고마운 마음, 감사의 마음도 연민 못지 않게 사랑으로 변질되기가 쉽습니다. 특히 자기가 아주 절박하도록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곁에 있어주고 도와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은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별로 큰 도움을 준 게 아니므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도움을 받은 입장에서는 그 순간이 너무나 절박했기 때문에 몇십배로 부풀려진 감동을 느끼는 거예요.


저도 개인적으로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그분께 드린 도움은 정말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어요. 제 입장에서는 아주 약간의 불편함만 감수하면 되는 일이었고, 제가 예전에 그분께 도움받았던 일들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너무 당연한 일이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때 그분의 입장은 많이 절박했었고, 제가 드린 작은 도움이 그 마음에 예상외로 커다란 격려가 되었던가봐요.

그분은 저를 사랑하면 안되는 입장이었는데...(^^;;) 한동안 저 때문에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야 들었습니다. 저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는데 말이죠. 그 후로도 다행히 어색해지지 않고 지금까지 편하게 친한 사이로 지내고 있습니다...^^


하여튼 뮤지컬의 제2막이 시작되고, 드디어 나란히 앉은 네 사람... 지훈과 준혁의 눈길은 지금 누구에게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요? 연민과 고마움이 사랑을 향해 질주하는 중일까요? 그들의 잔잔한 눈빛 속에서 저는 서서히 일어나는 불길을 봅니다.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잠시 벤치에만 앉아 있어도 가슴이 시리도록 누군가 그리워지는 이 가을에... 살며시 시작되는 그들의 사랑이 우리의 시린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 주기를 저는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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