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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 생전 처음 듣는 이순재 옹의 노래 솜씨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지붕뚫고 하이킥

'하이킥' 생전 처음 듣는 이순재 옹의 노래 솜씨

빛무리~ 2009. 10. 2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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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자 이순재씨는 정말 볼수록 대단하십니다. 그분의 연기 열정은 세월을 거슬러 점점 젊어지시는 것 같군요. 제가 어려서부터 수도 없이 그분의 연기를 보아 왔지만 한 번도 노래부르시는 모습을 본 기억은 없는데, 이제 76세의 연세로 이순재 옹은 거침없이 사랑의 세레나데를 열창해 주십니다.



'지붕뚫고 하이킥' 에서 목하 열애중이신 이순재 옹과 김자옥 여사의 대화를 듣자 하니, 소녀 같으신 자옥 여사는 연세는 많아도 미혼이신 듯 합니다. 사귀기 시작한지 100일째 되는 날이 다가오는데도 까맣게 모르고 있는 순재 옹 앞에 살짝 서운한 기색을 내비치며 "저는 뭐든 선생님이랑 하는 게 처음이라서 그런지 가슴 설레고 기다려지는데, 선생님은 아닌 것 같으시네요. 하긴 뭐 선생님 마음이 제 맘 같겠어요?" 하는데, 생판 남이 봐도 짠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안돼 보이더군요.

예전에 유행했던 노래 가사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잖아요. "살아가는 동안~ 한번도 안 올지 몰라~ 사랑이라는 감정의 물결~ 그런 때가 왔다는 건~ 신이 가끔 주는 선물~ 지금까지 잘 견뎌 왔다는~" 그 내용이 정말 맞거든요. 어떤 사람에게는 참 여러 번도 찾아오는 쉬운 사랑이, 또 어떤 사람에게는 일생이 다 가도록 오지 않는 경우도 있거든요. 자옥 여사도 아마 그런 경우였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괜히 짠하더랍니다.


제가 보기에도 그랬는데, 이미 자옥 여사를 향한 사랑에 영혼을 다 바쳐버린 순재 옹이 보시기에는 얼마나 미안하고 가슴아프셨겠습니까? 얼마 전의 감기 에피소드에서는 열이 39도까지 펄펄 끓으면서도 자옥 여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리해서 집을 나섰다가 엠블런스에 실려가기도 하셨었지요.

이미 순재 옹의 마음속에 자옥 여사보다 큰 존재는 없습니다. 사귀기 시작한지 100일을 챙기는 거야 요즘 젊은 아이들의 신풍속도이니 순재 옹이 모르시는 게 당연하지요. 자옥 여사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는 절대 아니었답니다. 자옥 여사는 고등학교 교감선생님이시니 젊은이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서 알고 계시는 것이구요.

하여튼 자옥 여사의 서운한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순재 옹은 '깜짝 놀랄만한 서프라이즈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노라고 대책없는 허풍을 치십니다. 자옥 여사가 너무 궁금하니까 어떤 이벤트인지 조금만 알려달라고 보채도 결코 대답해 줄 수 없는 이유는 서프라이즈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 아이디어조차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지요.


하여튼 발등에 불은 떨어졌는데 하필이면 어리버리한 사위 정보석에게 이벤트 구상과 준비를 맡기시니 이건 또 웬일일까요?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너무 연세가 드신지라 스스로 이벤트를 구상하기는 벅차셨던 거겠지요. 그리고 아들이나 딸보다는 사위가 훨씬 편하고 만만하셨을 겁니다.

"보석아, 내가 너를 아들처럼 생각하는 거 알지? 너 말고는 아무한테도 이런 걸 부탁할 수가 없어." 호랑이처럼 무섭고 늘 자기를 구박만 하던 장인어른이 저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순하고 착한 보석씨가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는 없지요. 감동하여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밤새워 인터넷을 검색하고 연구한 결과 드디어 순재 옹이 만족할만한 이벤트 극본이 짜여졌더랍니다.


드디어 100일째 되던 날, 거의 버스 크기에 가까운 밴을 대령하여 자옥 여사를 모시러 온 사람은 사위 정보석이었지요. 자옥 여사는 처음부터 감동보다는 당황스러움과 부담스러움을 드러냅니다. 그녀가 원한 것은 따뜻한 마음의 선물이었을 뿐 이토록 거창한 게 아니었던 게지요. 젊은 세대에서나 연로한 세대에서나 남자와 여자의 생각 차이란 똑같은가봅니다. 남자인 순재 옹은 더욱 큰 비용을 들여서 세상에 둘도 없을 화려한 이벤트를 해주면 그만큼 자기의 사랑이 표현되는 거라고 생각하셨겠지만, 자옥 여사의 기대와는 오히려 조금씩 어긋나고 있었습니다.

한밤중에 커다란 스타디움을 통째로 대여하고 밴드까지 동원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기다리던 순재 옹은 자옥 여사가 도착하자 드디어 세레나데를 열창하기 시작합니다. 곡명은 '네버엔딩 스토리'... 최근 태봉씨의 열창으로 다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곡이지요.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 막상 직접 부르기에는 난이도가 상당한 곡이라, 듣는 사람이 더욱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처음 부분은 오~ 하며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괜찮았습니다. 박자가 좀 어긋나긴 했지만 중후한 목소리와 안정감 있는 음색은 예상외로 감동적이기까지 하더군요. 아니,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노래 솜씨보다는 그 풍부한 표정 연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한 여인을 향한 간절한 사랑이 그대로 생생하게 담겨 있는 표정이었으니까요.

제 생각에는 만약 노래를 끝까지 완벽하게 부르려고 결심만 하셨다면 가능했을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대본대로 흘러가야 하니까 그러실 수 없었겠지요. 노래 후반부에 옥타브가 높아지면서 순재 옹의 노래는 점차 엉망진창이 되어 갑니다. 와르르 깔깔 웃음 효과음이 깔렸으나 저는 조금도 우습지 않았습니다. 웃어 버리기에는 여전히 순재 옹의 노래는 진한 감동이었습니다.


너무 엄청나고 당황스런 이벤트에 아직도 적응 못한 자옥 여사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노래는 클라이맥스에 접어들고, 높아지는 음역에 무리하게 힘을 쓰신 순재 옹은 그만 쓰러지고 맙니다. 놀라서 달려드는 정보석과 밴드 단원들, 그리고 역시 놀라서 일어나는 자옥 여사의 모습에서 그렇게 이벤트는 종료되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지붕뚫고 하이킥'은 웃음보다는 눈물을 더 요구하는 기묘한 시트콤입니다. 예전에 꼬마 신애(서신애)가 길거리에서 언니 세경(신세경)을 잃어버리고 울면서 거리를 헤맬 때,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남의 집 앞에 놓여있는 우유를 다 마셔버리고, 편의점 앞 테이블에서 누가 먹다 남긴 음식을 먹으며 헤매는 모습도 사실은 우스운 장면이 아니라 아프도록 슬픈 장면이었지요. 하지만 울다가 뚝 그치고 허겁지겁 먹고, 다 먹고 나면 곧바로 다시 울기 시작하는 신애의 리얼한 연기는 눈물섞인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순재 옹이 온 힘을 다 바쳐서 부르는 애절한 세레나데는 "몸이 늙는 것일 뿐 마음이 늙는 것은 아니다" 라는 말이 과연 진실임을 우리에게 생생히 보여 주었습니다. 사랑과 열정은 마치 젊은이들의 전유물처럼 인식되어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주시는 분들을 보면 저절로 애정과 존경이 솟구쳐오릅니다. 연기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으로 마침내 '마지막 로맨티스트'의 왕좌까지 차지하신 이순재 옹에게 그 애정과 존경을 바치며, 부디 아주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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