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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문' 김무(곽희성)의 쓸쓸한 최후, 그러나 미친 존재감 본문

드라마를 보다

'비밀의 문' 김무(곽희성)의 쓸쓸한 최후, 그러나 미친 존재감

빛무리~ 2014. 10. 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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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문' 7회에 처음 등장한 김무(곽희성)는 외로운 들개처럼 처연하고 위험해 보였다. 그는 현직 영의정이며 노론의 영수인 김택(김창완)의 버려진 자식이었다. 기생첩에게서 태어나 평생 바람처럼 떠돌던 그를 김택이 불러들였을 때, 그는 아비에게 인사를 올렸다. "오랫동안 격조하였습니다, 대감마님!" 어쩌다 칼 쓰는 법을 익히고 살수가 되었는지, 김무의 사연은 다뤄지지 않았다. 세도가의 얼자이며 기생의 아들로서 세상 어떤 집단에도 속할 수 없었던 그의 척박한 삶을 어림짐작할 뿐이다. "이제는 그저 사냥이나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대감의 청을 받들지 않을 것입니다!" 아비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들은 반항했다. 



그러나 아비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너를 찾아 불러올리느라 애 좀 먹었다. 따라 나서거라. 갈 곳이 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멀리 떠돌았던 것일까? 제 어미가 죽어 어디에 묻혔는지도 몰랐던 김무는 낯선 무덤 앞에서 그대로 얼어붙었다. "술이라도 쳐. 네 어미가 반가워할 게다." 아비가 말했으나 아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감격했니? 기생첩인 네 어미를 선산 발치에 묻어서 말이다... 난 네 어미를 좋아했다. 어쩌면 여자는 네 어미 하나뿐이었는지도 몰라. (무덤 곁을 가리키며) 나 죽으면 저기에 묻힐 거야!" 어미의 생전 모습이 뇌리를 스치는 듯, 김무의 서늘한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번 일만 잘 되면 네 어미의 소원을 들어줄 생각이다. 신분을 세탁해서 양자로 삼아주마. 얼자라면 출사길이 열리질 않으니... 나를 아비라 부르고 싶지 않니?" 김택의 나직한 목소리가 김무의 심금을 울렸다. 아비의 승리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초야에 묻혀 사냥꾼으로 살아가던 김무는 그렇게 또 사람 잡는 칼을 손에 쥐었다. 강필재(김태훈)를 처단하고 '맹의'를 빼앗아 오라는 것이 아비의 명령이었다. 그러나 김무는 강필재를 살해하고도 맹의를 나철주(김민종)에게 빼앗겨 실패한 채 돌아오는데, 질책하지 않고 너그럽게 토닥이는 아비의 모습은 차라리 섬뜩했다. "괜찮다. 아비는 너 무사한 걸로 됐다!" 



김무는 그런 아비를 위해 나철주에게 독침을 쏘아 잡아들이지만 맹의는 이미 박문수(이원종)의 손에 넘어간 후였다. 이에 김택은 박문수를 불러 강필재를 살해한 진범과 맹의를 바꾸자는 거래를 제안하고, 박문수는 강필재 살해 혐의를 쓰고 의금부 옥사에 갇힌 사도세자(이제훈)를 구하기 위해 제안을 받아들인다. 김택은 스스로 의금부에 전갈을 넣어 김무의 은신처를 알려준 후 시치미를 떼고 김무에게 달려가 외쳤다. "어서 피하거라. 이 곳이 발각되었다!" 김무가 머뭇거렸다. "소인이 이대로 가면 대감께서 곤란해지십니다!" 김택이 서글픈 눈빛으로 말했다. "불쌍한 놈, 끝내 나를 한 번도 아비라 부르지 못하는구나!" 


"어서 가거라. 맘 놓고 아비라 부르게 해주지는 못했지만, 네 목숨만은 이 손으로 지키게 해 다오. 무야... 부디 무탈하거라!" 김무는 아비와 애끓는 이별을 하고 몸을 피하지만, 곧이어 들이닥친 의금부 군사들에게 쫓기다 끝내 잡히고 만다. 그런데 포승줄에 묶여 흙바닥에 질질 끌려가는 김무의 눈에 멀찌감치 아비의 모습이 비친다. 김택은 평온한 표정으로 의금부 판사 홍봉한(김명국)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 장면을 보고서도 의금부에 자신을 고발한 자가 누구인지를 모른다면 천치가 아니겠는가? 그 때 김택은 홍봉한에게 말하고 있었다. "국문 과정에서 긴 말 못하게 해. 고신 중에 사고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지 않나!" 혹시라도 토설하지 못하도록 최대한 빨리 숨이 끊어지게 하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사도세자가 국문장에서 김무를 설득하며 살인을 청부한 자가 누구인지를 캐묻는 바람에 김택은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한다. 아비의 배신을 깨닫고 울분에 차 있던 김무가 진실을 말하려는 찰나, 김택이 한 발 앞서서 외친다. "접니다!" 모든 이의 놀란 시선이 김택에게로 향하는데, 김택은 노구를 이끌고 김무의 곁에 무릎을 꿇는다. "전하, 이 아이는 소신이 평생을 살며 단 한 번 가졌던 정인에게서 얻은 소신의 자식입니다. 이 모든 죄 소신으로부터 비롯된 바, 하오니 이 모든 죄를 소신에게..." 그 순간 아들은 아비를 완전히 용서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어미를 정인이라, 자신을 아들이라 인정하는 그 순간. 


"아니, 아니오, 아버지는 아닙니다. 자식에 대한 책임감으로 인해 자복을 하였을 뿐, 아버지는 이 사건과는 아무 관련이 없소이다!" 난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불러보는 '아버지'였다. 그리고 김무는 아비의 죄를 이미 죽은 자에게 덮어씌운다. 사도세자가 옥사로 찾아와 아직도 늦지 않았으니 진실을 말할 기회를 주겠노라 설득하자 김무는 되묻는다. "어떤 진실 말인가? 아비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살인을 청부했다. 헌데 쓸모 없어지니 버리려 한다. 국청에서 보여준 아비 노릇은 가증스런 연기에 불과했다. 이런 진실 말인가?" 알고도 당했던 거냐며 아연실색하는 세자에게 김무는 담담히 말한다. "아버지니까!" 



"네가 감싸려는 그 잘난 아비로 인해 죄 없는 자들이 수없이 죽어나갔다. 심지어 네 아비는 친아들조차 사지에 던지고 혼자서만 빠져나가려 하고 있어. 김택은 눈물겨운 효성을 바칠만한 이가 못 된다. 억울한 또 다른 희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부디 진실을 밝혀 다오!" 세자는 간절히 부탁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죽는 거야 죄를 지어 죽는 게지. 아비로부터는 그저 추억 하나 챙겨가는 거야. 연쇄살인마... 세상이 두려워하고 질시하는 나 같은 놈을 그래도 아들이라 당당하게 말해준 아비... 그 아비에 대한 추억조차 없으면 저승가는 길이 너무 쓸쓸하지 않겠나?" 흔들리지 않는 김무의 굳건함에 세자도 힘없이 돌아서고 마는데. 


그 시간 김택은 노론파 대신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좌의정 김상로(김하균)가 얍삽하게 웃으며 김택에게 말한다. "무모한 작전이었어요. 만약에라도 그놈이 그 자리에서 토설을 했으면 대감은 지금쯤 황천길 초입까지는 가셨을 겁니다." 그러자 김택은 한심하다는 듯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한다. "그럴 일 없어. 천한 것들은 원래 잔정에 약하니까..." 김택의 마음 속에서 김무는 한 번도 자식이었던 적이 없었다. 오직 '천한 것'이며, 필요에 따라 쓰고 버리는 도구였을 뿐이다. 그런 줄을 알면서도 김무는 아버지라는 한 마디에, 자식이라는 한 마디에 기꺼이 제 목숨을 바친 것이다. 



김무의 초연한 등 뒤에서 시리도록 하얗게 춤추던 망나니의 칼날은 너무 쉽게 붉은 피로 물들었다. 그 칼 아래 꿇어앉은 이가 주인공이었다면 누군가 급히 달려와 "멈추시오!" 하고 외쳤으련만, 아니면 그 칼이 떨어지기 전에 서글픈 음악이라도 한참 흐르며 지나온 날들을 되새겼으련만, 조연보다 단역에 가까웠던 김무의 최후는 매우 간단하고 쓸쓸했다. 무거운 칼날이 순식간에 휙 떨어지고 그대로 끝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떠나간 김무의 존재감은 '비밀의 문' 7회부터 10회까지를 온통 지배할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사도세자는 물론 영조(한석규)마저도 김무가 활약하는 동안에는 그 미친 존재감을 넘어서지 못하였다. 


"아비는 누구이며 아들은 또한 누구인가... 진심은, 그 진심만은 계산한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사도세자의 쓸쓸한 독백만이 김무의 영전에 바쳐지는 노래였으나, 아비의 진심을 가장한 연기가 철저히 계산된 것이었음을 알기에 더욱 가슴이 먹먹할 뿐이었다. 단역 캐릭터의 최후에 이토록 짙은 슬픔의 카타르시스가 녹아들다니! 모두가 끝없이 맹의만을 뒤쫓는 스토리의 따분함에 지쳐가던 즈음, 혜성처럼 등장하여 푸른 불꽃처럼 짧은 삶을 불태우고 떠나간 김무의 존재는 매우 신선하고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아비를 위해 죽어야만 했던 김무의 최후는 훗날 사도세자의 죽음과도 맞닿아 있으니, 어쩌면 이로써 작품의 주제까지 형상화된 셈이다.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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