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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너무 현실 같아서 울화통 터지는 드라마 본문

드라마를 보다

'미생' 너무 현실 같아서 울화통 터지는 드라마

빛무리~ 2014. 11. 3.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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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tvN에서 방영중인 드라마 '미생'의 인기가 나날이 치솟고 있다. 평범한 직장인들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이 작품에는 대부분 직장 경험이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다. 현역 아이돌로서는 최고의 연기력을 자랑하는 임시완이 주인공 '장그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내고 있으며, 그 곁에서 믿고 보는 '오과장' 이성민이 든든하게 서포트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잘 만들어진 드라마를 감상하다 보면 캐릭터에 몰입하여 작품 속 상황을 함께 체험하는 순간이 오는데, 이 작품의 경우는 번번이 극심한 울화통이 솟구쳐 시청하기가 상당히 괴롭다. 슬픔이나 공포에는 카타르시스가 있지만, 울화나 짜증에는 그런 것도 없다. 



이 작품 속 인물들은 직장 생활 중에 수많은 고난을 겪게 되는데, 대부분은 자신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억울한 경우에 해당한다. 신입이라는 이유로, 또는 여자라는 이유로 괜한 왕따와 갈굼을 당한다. 하급자라는 이유로 상급자의 잘못을 대신 덮어쓰기도 한다. 부당함을 알고도 모른체할 수 없어서 입바른 소리 한 번 했다가 잘근잘근 짓밟히기도 한다. 철저한 계급 사회인 그 곳에서 모든 인간 관계는 상하의 갑을관계로 나뉘어지고, 을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갑의 선처만을 바랄 수 있을 뿐 자신의 힘으로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웃기는 것은 한 때 을이었던 사람들도 갑의 입장이 되면 대부분 똑같은 갑질을 한다는 사실이다. 


개구리가 올챙잇적 생각 못 하고, 시집살이 독하게 했던 며느리가 나중에는 더 못된 시어머니 된다더니, 어쩌면 그것은 인간의 본성 중 가장 비열한 부분일 것이다. 자기보다 강한 자에게 당했던 설움을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 되갚는 것... 그러면서 인간 계급 사회의 악순환은 끝없이 반복된다. 누군가는 짓밟히고 누군가는 짓밟으며... 그런데 타인을 괴롭히는 게 정말 그토록 재미있고 신나고 즐거운 일일까? 괴롭힘 당하는 것만큼이나 괴롭히는 것도 스트레스 받고 힘든 일 아닌가? 무슨 원수진 사이도 아닌데 못마땅하면 그냥 소 닭보듯 하면 될 것을 굳이 집요하게 괴롭히는 심리를 난 솔직히 이해할 수가 없다. 


종합상사에 근무하는 '장그래'는 수많은 거래처를 방문하는데 그 때도 역시 갑을관계가 적용된다. 오랜만에 학창시절의 친한 친구를 만나게 된 오과장은 거래를 문제없이 성사시킬 수 있겠다며 즐거워하는데, 뜻밖에도 그 친구의 생각은 달랐다. 학창시절 자기보다 뛰어났던 오과장에게 열등감을 품고 있던 친구는 드디어 자신이 갑인 상황에 처하자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았다는 듯 혹독한 갑질을 부렸던 것이다. 하지만 을의 입장이 되어버린 오과장은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을로서 갑에게 당하는 것보다 더 울화통 터지는 것은, 자신이 갑의 입장이면서도 오히려 을에게 당하는 박대리(최귀화)의 모습이었다. 



종합상사와의 관계를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거래처 사람들은 자신이 을이면서도 담당자인 박대리의 착하고 순한 성품을 이용해서 뻔뻔하게 갑질을 했다. 일처리를 성실히 안 하고 매번 꼼수를 부려 놓고는, 늘상 봐주던 박대리가 원칙대로 하겠다고 나서자 오히려 화를 내며 큰소리를 탕탕 치는 것이었다. 그 앞에서 기죽어 있는 박대리의 꼴을 보고 있자니 정말 분통이 터져서 뒷목 잡고 쓰러질 지경이었다. 다행히도 장그래의 활약으로 위기를 넘기고 일이 잘 해결되었지만, 끝까지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고 거래처를 비호하는 박대리의 모습에서는 감동이 아니라 짜증이 밀려왔다. 싫컷 밟혀놓고도 자신보다 상대의 발이 더 아플까봐 걱정하는 바보같았다. 


남들은 '미생'을 보며 슬픔을 느낀다는데, 내가 항상 느끼는 감정은 슬픔이 아니라 분노와 울화에 가깝다. 별 이유도 없이 못되게 구는 사람들을 보면 미워서 화가 나고, 박대리처럼 착한 사람을 보면 답답해서 화가 난다. 더욱 분하고 화가 나는 이유는 드라마 속 상황과 인물들의 언행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영화나 드라마를 너무 현실과 가깝게 만드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악마를 보았다'에서도 최민식이 여성들을 납치해서 살해하는 과정이 너무 사실적으로 그려진 탓에, 짜릿한 공포의 카타르시스를 즐기기는 커녕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로 극심한 두통과 괴로움에 나는 며칠이나 시달렸다. 


인생에서 배워야 할 것이 좋은 것들 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좋은 것들 못지 않게 나쁜 것도 배워야 할 것이 참 많다. 부당함을 보고도 꾹 참는 방법, 꼼수를 부리며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방법, 필요할 때면 비굴하게 엎드려 바닥을 길 줄도 아는 철면피 신공... 이런 것들을 모두 배우고 익혀야만 비로소 사회에 적응할 수 있다. 정의롭고 성실하고 당당하게 살고 싶지만,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곧이 곧대로 그렇게 살다가는 왕따나 호구로 전락하며 사회에서 도태되기 마련이다. 어쩌면 철들고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좋은 의미보다 나쁜 의미가 더 큰 듯한데, 이 더러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놓은 '미생'이 나는 감탄스러우면서도 몹시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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