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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 장보리' 연민정을 동정하되 공감해서는 안 되는 이유 본문

드라마를 보다

'왔다 장보리' 연민정을 동정하되 공감해서는 안 되는 이유

빛무리~ 2014. 10. 14.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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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시청률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종영한 드라마 '왔다 장보리'의 악녀 연민정(이유리)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이유리가 연기를 무척 잘 했기 때문에 높은 인기를 얻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리가 어찌나 몰입감 있게 연기를 잘 했던지, 후반에는 못된 짓만 골라 하는 연민정이 오히려 칭찬(?)을 받고 선한 주인공 장보리(오연서)는 반대로 욕을 먹었다. 물론 그 이유 중에는 배우들의 연기뿐 아니라 주인공 캐릭터를 너무 답답하게 그려놓은 대본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유리의 연기를 칭찬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연민정의 캐릭터까지 호감형으로 돌아선 모습에서는 적잖은 위험성이 느껴진다. 



연민정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비록 잘못된 방향일망정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일관성있는 언행을 보여준다는 점에 있었다. (그 특징은 최종회에서 와장창 깨져 버렸지만) 장보리는 선역이지만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집을 부렸고,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입으로는 항상 떠들면서도 속시원한 한 방조차 날리지 못했다. 친모와 양모가 모두 큰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친모의 죄만 엄히 추궁하고 자신을 평생 학대한 양모의 죄는 너무 쉽게 용서하는 등 일관성 없는 모습으로 짜증을 유발하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악행의 대가로 수많은 위기를 겪으면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자신의 목표를 향해 독하게 전진하는 연민정의 모습은 꽤나 매혹적이었다. 


연민정을 칭찬하는 이유가 오직 이것뿐이라면 다행이다. 어쨌든 일관된 자세로 꾸준히 노력하며 살아간다는 자세 하나는 본받을만한 장점이니까. 그런데 한 발 더 나아가 연민정 캐릭터에 공감하며 그 입장에 깊이 몰입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좀 달라진다. 연민정은 항상 소리 높여 주장한다. 자기는 잘못한 게 없다고,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남들처럼 부자로 살아보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한 것뿐인데 그게 어째서 죄가 되냐고 말이다. 연민정의 논리에 따르면 가난한 자가 부를 얻기 위해서 하는 행동은 그 목적 자체만으로 모두 정당화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에 일부나마 공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것 없는 사람은 아무리 평생 애쓰며 발버둥쳐도 금수저 물고 태어난 사람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 어쩌면 그게 현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관건은 '욕망의 크기'에서 비롯된다. 사실 연민정은 아름다운 외모와 디자이너로서의 능력을 타고났기에 과한 욕심만 부리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는 인물이었다. 반드시 재벌가의 며느리가 되어 돈을 물쓰듯 해야만 행복한 삶인가? 문지상 역시 능력있는 남자였기에 그와 결혼했어도 별로 궁핍한 생활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열심히 살면서 조금씩 재산을 모으고, 정상적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딸 비단이를 애지중지 키웠다면 그야말로 행복한 삶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연민정은 가슴 속에 품은 욕망의 크기를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무너져갔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1% 상류층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욕망은 온갖 범죄와 악행으로 그녀를 이끌었던 것이다. 거짓말과 협박과 도둑질과 중상모략을 일삼는 것은 물론, 책임질 생각 없이 아이를 낳아서 버리고 심지어 옛 애인을 의도적으로 살해하려 들만큼 연민정의 악행은 끝간 데 없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민정 캐릭터가 동정을 넘어 공감까지 얻는 이유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장보리와 그녀의 운명이 극적으로 대비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민정과 달리 장보리는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부당한 행동을 한 적이 없다. 



 

"저한테 죄가 있다면 마땅히 죗값을 치르겠지만, 양딸이라서 차별받는 거라면 억울합니다!" 비술채 침선장 경합에서 연민정은 외쳤다. 그녀는 도둑질을 하고도 당당했으며, 양엄마의 약점을 틀어쥐고 협박해서라도 침선장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연민정의 범죄는 천하에 폭로되었고, 장보리는 친딸 프리미엄의 혜택 없이 자기 실력으로 승리했다. 하지만 연민정은 패배에 불복하며 악을 썼다. "아니야! 보리가 딸이니까, 친딸한테 물려주고 싶었던 거지. 나 같은 것한테 그 자리를 넘겨주기 싫었던 거지. 난 인정 못해!" 이쯤 되면 돈 없고 빽 없는 게 오히려 유세다. 그게 범죄의 이유가 되고 변명이 된다면. 


사실 연민정 캐릭터는 '청담동 앨리스' 한세경(문근영)의 업그레이드 버젼이다. 연민정처럼 범죄를 저지르지만 않았을 뿐, 기본적인 마음가짐은 한세경도 똑같기 때문이다. 자기가 능력은 있지만 오직 가난하기 때문에 성공의 길이 막혀 있다고 판단한 그녀들은 재벌2세 남자와 결혼함으로써 신분 상승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한세경은 "그것도 사랑이다!" 라고 노골적으로 주장했다. 사랑은 총체적인 거니까, 한 남자를 사랑하는 이유에는 그의 재력도 포함된다는 논리다. 연민정도 마찬가지다. 문지상(성혁)이 부잣집 아들이라는 이유로 유혹해서 연인이 되고 동거까지 했으나, 문지상의 집안이 망해서 가난해지자 연민정은 일각의 고민도 없이 그를 헌신짝처럼 버렸다. 


이재희(오창석)를 대하는 연민정의 마음도 문지상의 경우와 전혀 다르지 않다. 강제로 이혼당하고 자기 운명이 나락으로 떨어진 최후까지 변함없이 사랑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니 일부 시청자들은 연민정에게도 단 하나의 진심은 있었노라고, 이재희를 향한 사랑만큼은 진짜였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재희가 만약 문지상처럼 가난뱅이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연민정은 차갑게 벌레보듯하는 시선으로 무시했을 것이다. 끝까지 사랑(?)하며 애틋한 시선을 보낸 까닭은 이재희가 아직도 부자이기 때문이었다. 가난뱅이가 되어버린 문지상과의 사랑은 거기서 끝났지만, 아직도 부자인 이재희와의 사랑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돈에 대한 욕망을 인간에 대한 사랑과 구별 못하는 자들은 천박하다. 욕망을 욕망이라 솔직하게 인정 못하고, 감히 사랑이라 포장하는 모습은 역겹고 추하다. 한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부자일 때와 가난할 때가 다르다면 그것을 어찌 사랑이라 하겠는가? 연민정은 자신의 불행에 대한 책임을 부모와 사회에 돌리려 했지만, 진짜 원인은 그녀 스스로에게 있었다. 이 점을 시청자는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 연민정이 동정받아야 할 이유는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비뚤어진 생각으로 망가뜨린 그 인생이 불쌍하기 때문이다. 부디 '없는 이의 감정'에 호소하는 대사의 처절함과 이유리의 연기력에 설득당해 본질을 착각하는 사람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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