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꽃보다 청춘' 라오스 제작진의 무리수, 나영석 PD 부재의 결과였을까? 본문
'꽃보다 할배'를 시작으로 '꽃보다 누나'를 거쳐 '꽃보다 청춘-페루 편'까지 이어져 오는 동안 '꽃보다~' 시리즈를 향한 대중의 반응은 온통 열광과 감탄과 호평뿐이었다. 그런데 '꽃보다~' 시리즈의 최종편이라고 알려진 '꽃보다 청춘-라오스 편'에서 뜻밖에도 시청자의 날선 반응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비록 처음 생겨난 잡음이고 시리즈도 거의 다 끝나가는 참이니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지만, 꼭 한 번만으로도 '꽃보다~' 시리즈의 완벽했던 명성에 흠집을 남기기는 충분하다 싶을 만큼 대중의 분노는 거세고 뜨겁다. 진짜 문제는 그 분노가 일부 트집잡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방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다수의 시청자가 공감할 수밖에 없을 만큼 타당한 이유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라오스 방비엥 시내에서 천연 워터파크로 유명한 블루라군까지 들어가려면 자전거나 오토바이, 버기카 등으로 30~40분 가량 달려야 한다. 세 명의 꽃청춘 유연석, 손호준, 바로(차선우, B1A4)는 대여료가 가장 저렴한 장바구니 자전거 3대를 빌려서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비포장도로인 길이 꽤 험한지라 다른 여행객들은 모두 산악자전거나 오토바이나 버기카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꽃청춘들은 오직 젊음의 혈기 하나로 장비의 열악함을 이겨내고 눈부신 속도로 달려서 블루라군에 도착했다. 라오스는 시간도 천천히 흐르고 욕망도 사라지는 곳이라기에 어떤 분위기일까 궁금했는데, 힐링의 쉼터 블루라군을 보니 그 의미를 알 것도 같았다. 복잡한 세상사를 잊고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그 곳에서 꽃청춘들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문제는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서 발생했다. 꽃청춘들은 이미 블루라군까지 달려오는 동안 적잖은 체력을 소모했고, 블루라군에서 신나게 놀아주며 방송 분량을 뽑느라 그야말로 체력이 방전된 상태였다. 설상가상 그 와중에 많은 양의 비가 쏟아졌고, 가뜩이나 험한 비포장도로에는 곳곳에 흙탕물 가득한 웅덩이가 패였다. 출연자들과 달리 제작진은 오토바이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고통스러워하던 꽃청춘들은 급기야 제작진의 오토바이를 탐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오토바이를 대여했던 제작진의 체력은 훨씬 많이 비축되어 있을 테니까, 지칠대로 지친 출연자들을 한 번쯤은 배려해 주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를 타던 바로가 실수로 살짝 넘어지자 유연석과 손호준은 막내가 다쳤다며 호들갑을 떨었고, 결국 세 명의 꽃청춘은 제작진의 오토바이를 강탈(?)해서 편안히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반면 졸지에 자전거 페달을 밟게 된 세 명의 제작진은 예정에 없던 다리 운동을 실컷 하게 되었다. '1박2일' 때부터 낯이 익은 대주 작가도 그들 중에 끼어 있었다. 사실 제작진과 출연진의 기싸움은 '1박2일' 때부터 나영석 PD가 매우 즐겨 설정하던 방송 아이템으로서, 꽃청춘들 때문에 제작진이 고생을 좀 했기로소니 그걸 탓할 일은 전혀 아니었다. '1박2일'에서는 출연진과의 내기에서 제작진이 패배하는 바람에 무려 80여 명의 스태프가 단체로 야외취침을 한 적도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유연석과 손호준이 한 대의 오토바이에 탔고 바로는 조연출의 오토바이 뒤에 올라탔는데, 그 조연출은 뒷좌석의 바로에게 중얼중얼거리며 계속 이런 말을 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이거 방송에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해맑게 웃고 있던 바로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정말요? 이렇게 되면 방송에 못 나가요?" 23세의 순진한 바로는 급격히 긴장한다. 숙소 근처의 오토바이 대여소에 도착한 꽃청춘들은 자전거로 뒤쫓아 오는 제작진을 기다리는데, 좀처럼 그들이 도착하지 않자 모두들 걱정하기 시작한다. "그냥 우리가 자전거 탈 걸 그랬나봐!"
드디어 제작진이 자전거를 몰고 도착했다. 꽃청춘들은 몹시 미안해하며 달려가서 끌어안고 위로하는데, 한 명의 여성 PD가 나서서 카메라를 유연석에게 넘겨주며 이렇게 말한다. "너무 피곤해서 오늘은 제작진이 촬영 못할 것 같으니까 저희는 빠질게요. 저희가 카메라랑 메모리랑 드릴 테니까 지금 이 시간부터는 알아서 여행 즐기시고 촬영도 해주세요!" 굉장히 쌀쌀맞은 목소리와 새침한 말투였다. 듣자 하니 '꽃청춘-페루'편과 '라오스'편의 촬영 일정이 겹쳐서 '라오스'편에는 나영석 PD가 참여하지 못했다고 하던데, 제작진 중 수장인 듯 보였던 그 여성은 짐작컨대 신효정 PD가 아니었을까 싶다.
카메라를 넘겨받은 유연석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제작진의 오토바이를 빼앗아서 편하게 타고 왔다는 사실 때문에 미안해하고 있던 참인데, 쌀쌀맞은 목소리로 "우리는 너무 피곤해서 촬영 못 하겠으니까 빠질게요. 이제부터는 당신들이 알아서 하세요!" 이렇게 말하면서 카메라를 넘겨주면 그 누가 좋은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는가? 제작진은 자막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변호했다. 그것은 결코 빈정 상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자유 여행의 시간을 주고자 함이었다고 말이다. 페루로 떠났던 40대 청춘들은 갑자기 제작진이 사라졌어도 그들끼리 즐거운 여행을 즐겼는데, 이 순진한 20대 청춘들은 (손호준과 유연석은 31세지만 대충 만으로 29세라 치고) 제작진의 속뜻도 모른 채 고민에 빠진다는 식으로 자막이 뜬다.
하지만 40대 청춘들도 만약 이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결코 제작진의 의도롤 좋게 해석하며 즐겁게 여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놓고 빈정 상했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카메라를 주고 가는데 누가 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 물론 제작진보다 나이도 많고 사회적 위치도 견고해서 나영석 PD조차 깍듯이 형님 대접을 하던 유희열, 윤상, 이적에게는 감히 그런 태도를 보일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일부 시청자의 지적대로 손호준, 유연석, 바로가 나이도 어리고 신인급의 연예인들이라는 이유로 제작진이 어설픈 '갑질'을 한 것일까? 솔직히 그 쪽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다고 생각된다. '꽃보다~' 시리즈의 출연진을 통틀어 제작진이 만만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들은 오직 '라오스'의 꽃청춘들 뿐이었으니까.착하고 순진한 꽃청춘들은 제작진의 살벌한 기색에 주눅들고 점점 더 미안해하며 심한 마음 고생을 시작한다. 숙소에 들어와서도 모두 고개를 푹 숙인 채 안절부절 못하는데, 유연석이 바로에게 "너 굉장히 힘들어 보인다" 라고 말하자 바로는 "저... 죽을 것 같아요!" 라고 하소연한다.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면 죽을 것 같다고 했을까? 그들은 제작진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사과도 하고 기분도 풀기 위해 방을 나섰지만, 제작진의 숙소는 텅 비어 있다. 별 수 없이 셋이서만 한식당에 들어가 저녁을 먹는데, 그토록 그리웠던 김치와 삼겹살이 눈앞에 잔뜩 있는데도 우울한 표정으로 잘 먹지를 못한다. 심지어 삼겹살은 무한리필이었는데!
그런데 알고 보니 제작진은 숨어서 그들의 모습을 찍고 있었다. '페루'편에서도 그랬듯이 자유 시간을 준 후에 몰래 숨어서 찍는 것은 원래 계획된 일정이었을 것이다. 우울한 저녁 식사 장면이 지나가고 다음 장면은 바로의 인터뷰였다. 자막에 의하면 그 인터뷰는 다음날 이루어졌다고 한다. "우린 너희가 오토바이 타고 간 걸 잘못이라고 생각할 줄은 꿈에도 상상 못하고 그냥 자유 여행 시간을 주었던 거야. 오토바이 타고 신난 분위기를 몰아서 즐겁게 놀라고, 제작진이 함께 있으면 편하게 못 놀까봐 카메라를 주고 갔던 거야!" 신효정 PD로 짐작되는 여성은 그 전날과 비교되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해명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안심한 듯 바로는 편안한 웃음을 짓는데...
다음 날 인터뷰 시간까지 바로가 상황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자막 내용이 사실이라면, 제작진은 그야말로 심보가 못됐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손호준, 유연석, 바로는 우울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다시 제작진의 숙소를 찾았더랬다. 아무래도 화해하지 않고 그냥 잠을 청하기엔 너무나 마음이 불편했던 탓이다. 아까는 비어 있었던 숙소에 대주 작가를 비롯한 몇 명의 스태프가 돌아와 있는데, 꽃청춘들이 미안했다고 사과하며 다리는 괜찮으시냐고 걱정하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별 일도 아닌데 뭐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세 명의 꽃청춘은 심하게 기죽어 있었으며, 거듭 거듭 사과하는 모습은 비굴해 보일 지경이었다. 보기가 매우 거북했고 약간은 불쾌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데 다음 날 이루어진 인터뷰에서야 바로가 사정을 알게 되었다면, 그날 밤 꽃청춘들이 숙소까지 찾아가서 그토록 애닳게 사과할 때까지도 제작진은 그들에게 사정을 말해주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꽃청춘들은 하룻밤 내내 마음 편히 잠들 수도 없었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심보였을까? 이건 내 추측이지만 아마도 제작진은 그날 밤늦게 나영석 PD와 전화 통화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나영석 PD는 필시 후배들의 잘못된 처신을 꾸짖으며, 내일의 인터뷰에서라도 꽃청춘들의 마음을 잘 다독여 주라고 명령했을 것 같다. 그래서 다음 날 여성 PD가 유난히 오버스럽게 말한 것 아니었을까? "우린 너희가 오토바이 타고 간 걸 잘못이라고 생각할 줄은 꿈에도 상상 못하고... 오토바이 타고 신난 분위기를 몰아서 즐겁게 놀라고... 우리가 함께 있으면 너희 편하게 못 놀까봐...!"
하지만 제작진의 그 해명은 민망하도록 어설픈 것이었다. 그 상황에서, 그런 태도로, 그렇게 말하면서 카메라를 넘겨주면 누구나 오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제작진이 몰랐을 리가 없다. 내 생각에는 진짜 빈정이 상해서 그런 것은 아닌 듯하고, 일부러 오해하게 함으로써 꽃청춘들의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했던 것 같다. 나름대로는 그런 모습들이 방송의 재미를 더해줄 거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악의 없이 출연진을 골탕먹이면서 멘붕에 빠진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1박2일' 때부터 나영석 PD가 즐겨 사용해 온 기법이었으니까 말이다. 수위만 적절하다면 깨알 재미가 보장되는 기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영석 PD가 자리를 비운 '라오스' 팀의 제작진은 수위 조절의 노련미가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세 명의 꽃청춘들은 자신들이 크게 잘못해서 제작진의 심기를 상하게 한 줄 알고 진심으로 걱정했으며, 고단한 여행 중에 돌덩이라도 맛있게 씹어먹었을 한창 나이의 장정들이 모두 저녁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수저를 내려놓을 만큼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고, 가장 어린 바로는 "죽을 것 같다"고 하소연할 만큼 극심한 긴장감에 짓눌려 있었다. 이런 모습들을 과연 어떤 시청자가 마음 편히 재미있게 볼 수 있었을까? 적절한 수위 조절을 하려면 최소한 저녁을 먹던 한식당에 제작진이 들어가서 사정을 말해줌으로써 꽃청춘들이 기분좋게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했다. 그 밤을 불편하게 지내도록 방치한 후 다음 날에야 알려준 것은 지나친 무리수였다. 역시 수장의 부재는 티가 날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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