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꽃보다 청춘' 유연석, 어미새의 감동적인 아기새 먹여 살리기 본문
여행을 하다 보면 일상 속에서는 쉽게 드러나지 않던 사람들의 또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때로는 그 모습이 서로를 힘들게도 하지만, 어쩌면 숨겨진 모습들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진짜 재미가 아닐까? '응답하라 1994' 멤버들이 다시 뭉쳐 떠난 여행 '꽃보다 청춘' 라오스 제1편에서 가장 먼저 포텐을 터뜨린 사람은 배우 유연석이었다. 이 남자는 참 알면 알수록 스펙터클하고 어메이징한 매력이 있다. 누구보다도 매끄럽고 세련된 서울 남자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그가 사실은 무뚝뚝한 상남자의 본고장인 경상도 출신이라는 사실로 놀라움을 주더니만, 이번에는 다정한 어미새처럼 친구와 동생을 살뜰히 챙기는 모습으로 또 한 번의 신선한 충격을 준다.
tvN 채널 광고를 찍는 줄만 알고 모였던 유연석, 손호준, 바로(B1A4, 차선우)는 곧바로 나영석 PD와 제작진에 의해 납치되어 동남아의 라오스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40대 청춘들인 유희열, 윤상, 이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청춘 여행의 콘셉트는 역시 자유로움과 의외성에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미리 철저한 준비를 갖춰 놓고 떠나는 어른들의 여행이 아니라, 그저 어느 날 갑자기 생각이 떠오르면 즉시 배낭 한 개만 들춰메고 훌쩍 떠날 수도 있는 청춘만의 특권... 40대 청춘들도 멘붕의 시기를 거친 다음에는 설렘과 즐거움을 주체하지 못했는데, 20대~30대 초반의 이 청춘들은 감정의 진행 속도가 한결 더 빨랐다. 아주 잠시 동안 멘붕을 겪는가 싶더니 금방 신난다며 폴짝폴짝 뛰는 것이었다. 특히 23세의 막내 바로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듯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유연석이 실로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게 되었다. 손호준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권이 있어야 제주도에 갈 수 있는 줄 알았을 만큼 지독한 '여행무식자'이고, 바로 역시 해외 공연 경험만 많을 뿐 여행 경험은 없는 초짜였기 때문이다. 멤버 구성이 이렇다 보니 프랑스, 영국, 캄보디아 등을 혼자 여행해 본 베테랑 유연석이 총대를 멜 수밖에 없었다. 40대 청춘과 비교하자면 '희리더' 유희열과 비슷한 위치인데, 여기는 '적총무' 이적의 역할을 맡아 줄 멤버가 없다 보니 유연석의 역할은 리더 겸 총무로서 더욱 막중하기만 했다.
바로는 그저 깨물어주고 싶도록 귀여운 애교쟁이 막내이며, 털털해 보이는 손호준은 의외로 까탈스러워 윤상과 비슷한 포지션을 맡고 있다. 주체적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리더가 애써 준비한 계획에 터덜터덜 쫓아다니면서 힘들다고 찡찡대는 캐릭터다. 생각해 보니 '꽃할배'에서는 백일섭이 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PD의 멤버 조합은 언제나 참으로 기막히고 절묘하다. 명확히 구분된 캐릭터가 재미있을 뿐 아니라 포장 능력도 뛰어나서 멤버 각각의 개성적인 매력까지 충분히 어필해 준다. 자칫 비호감으로 비춰지기 쉬운 찡찡이 캐릭터조차 사랑스럽게 만드는 것이 '꽃보다' 제작진의 힘이다.
손호준의 경우는 초반에 살짝 염려스런 부분이 있는데, 이제 곧 그만의 독특한 매력이 포텐 터지기 시작하면 금세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나이도 젊고 심신 건강한 청년이 음식 투정을 하면서 찡찡거리는 모습이 선뜻 이해되지는 않았다. 백일섭처럼 노인성 질환으로 무릎이 아픈 것도 아니고, 윤상처럼 예민한 체질과 약물 부작용에 시달리는 것도 아닌데, 지방 출신으로 혼자 상경해서 무명 배우 생활 10년을 버텨왔는데, 그 척박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입이 짧을 수가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타지에서 고생하다 보면 입이 짧던 사람도 그냥 아무거나 잘 먹게 되던데... 아무튼 의외의 트러블메이커 손호준 때문에 '꽃청춘' 라오스편 첫방송에서는 유연석의 포텐이 제대로 터졌다.
어영부영 떠맡게 된 리더 자리였지만 유연석은 초반부터 긍정적 의욕을 불태웠다. 여행 경험이 없는 두 친구에게 여행이 얼마나 즐겁고 좋은 것인지를 알려주고 싶다며 밤낮으로 여행 책자를 들여다보는 모습에서는 얼핏 '꽃누나'의 이승기가 떠올랐다. 나PD의 꼼수로 이서진이 하루 늦게 합류했던 '꽃할배' 스페인 편에서 하루 동안 리더 역할을 담당했던 팔순의 맏형 이순재가 떠오르기도 했다. 유연석은 악역을 할 때조차도 인상이 매우 선해 보인다 싶더니만, 역시 사람의 내면은 눈빛에서 많이 드러나는 모양이다. 젊은 나이에 그토록 배려 넘치고 자상하기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
무작정 떠나왔으니 현지에서 먹고 자고 입는 것이 모두 미션이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이었다. 일단 제대로 먹지 못하면 기운이 없으니 여행 자체가 어려워질 뿐 아니라 건강도 크게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거나 잘 먹는 유연석과 달리 나머지 둘은 음식 적응에 문제가 있었다. 바로는 패스트푸드만 좋아하는 아기 입맛이고, 손호준은 초밥이나 스파게티를 못 먹을 정도로 편식이 심했기 때문이다. 오직 김치 밥 라면 된장 등만 고집한다니 그래 갖고서야 어찌 여행을 꿈꿀 수나 있을까 싶은데, 서른이 넘은 친구가 여행에 대한 환상까지 갖고 있으니 매우 철부지처럼 보인다.
최고급 호텔방에서 룸서비스나 시켜 먹고 초호화 수영장에서 비키니 미녀들이나 감상하는 것이 그가 꿈꾸던 여행이었는데, 최저가 라오스 배낭여행이 입맛에 맞을 리가 없었다. 바로는 그래도 국수나 만두 등을 잘 먹으면서 적응하는 반면, 손호준은 한 젓가락 입에 넣더니 곧바로 수저를 내려놓는 엄청난 편식 내공을 선보인다. 아침을 쫄쫄 굶고 나서 몇 시간이나 걸은 후 점심을 먹는데, 나른한 표정의 손호준은 역시 수저를 들 생각이 없다. 그러자 유연석은 막내에게만 햄버거를 시켜주고는 밖으로 나가서 과일장수를 찾는다. 최소 경비의 여행이기에 언제나 알뜰 절약하던 그이지만, 이번에는 값도 묻지 않은 채 망고와 과일 몇 개를 사들고 온다. 오직 손호준을 위한 속 깊은 배려였다.
유연석의 이러한 노력에 차츰 감복한 듯 과일을 맛있게 먹은 손호준의 표정이 확 변했다. 그 후로도 여행 내내 유연석은 바로와 손호준을 거둬먹이느라 여념이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스태프들의 아이스크림을 훔쳐다가 먹일 때는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쳤던 장발장의 고뇌가 보이는 듯도 했다. 그 노력의 결과 여행을 마칠 무렵에는 바로와 손호준이 현지 음식에 완벽 적응하여 폭풍 식탐을 선보일 정도였으니, 슬쩍 비춰진 몇 장면만으로도 그 놀라운 변화가 그저 흐뭇할 뿐이었다. 혼자 책을 들여다보며 여행 계획을 짜고 돈을 관리하는 것만도 피곤한 일인데, 아기새한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어미새처럼 입 짧은 동료들의 식사를 살뜰히 챙기는 모습은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유연석과 손호준은 마치 이순재와 백일섭처럼 여행 스타일이 달라서 내내 투닥거렸지만, 사실은 외롭고 고달픈 서울 생활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친구였기에 투닥거리는 모습조차도 정겨워 보였다. 그리고 바로는 형들 사이에서 적절히 분위기를 조율하는 속 깊은 막내였다. 이들의 라오스 여행이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가 매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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