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STORY 2014 우수블로그
TISTORY 2012 우수블로그
TISTORY 2011 우수블로그
TISTORY 2010 우수블로그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풀하우스' 친하지도 않으면서 남의 사생활은 왜 묻나?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풀하우스' 친하지도 않으면서 남의 사생활은 왜 묻나?

빛무리~ 2014. 9. 11. 04:30
반응형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를 무심히 보다가 샘 해밍턴이 제시한 질문에 완전히 꽂혀버렸다. 외국인인 샘에게 있어 민감하고도 사적인 질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퍼붓는 한국 사람들의 습성은 매우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광고를 찍으면 출연료는 얼마나 받았는지 묻고, 결혼해서 이사를 하면 집은 몇 평인지 얼마나 들여서 입주했는지를 묻고, 심지어 아이는 언제 낳을 거냐는 질문까지 하는데 무척 곤욕스럽다는 것이었다. "그런 질문을 하는 한국 사람들이 문제인가요? 아니면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기분 나빠하는 제가 문제인가요?" 처음 표결에 부칠 때까지만 해도 나는 압도적으로 '한국인들의 질문 습관이 문제다' 쪽에 표가 몰릴 줄 알았으나 결과는 전혀 예상 외였다.

 

 

15명의 패널 중 '한국인들이 문제다'는 7명이었고 오히려 '샘이 문제다' 쪽이 8명으로서 약간 우세했다. 나는 정말 기절초풍에 이르도록 식겁했다. 요즘은 누구나 '싫어하는 질문'이 뭔지를 다 알고 있는 사회 분위기 아니었나? 그래서 다들 자제하려고 하지만 습관적으로 내뱉고 나면 아차 싶어서 반성하는 그런 분위기 아니었나? 별 생각 없이 하던 질문들이 상대방에겐 엄청난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았으니, 최소한의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들 그런 질문은 삼가야겠다고 굳게 결심했을 것이라 나는 믿었다. 그런데 오히려 '기분 나빠하는 쪽이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니, 이건 상대가 스트레스 받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계속 고집스레 그런 질문을 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도대체 왜?

 

탤런트 박정수는 한국 정서에 대한 샘의 이해가 아직 부족해서라 주장했고, 이경규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별 수 있나'하며 농담식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런 문제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단지 외국인에 한정되지 않는다. 한국인 중에도 그런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이 매우 많고, 나 역시 오랫동안 그러했다. 아무리 문화가 소중하다 해도 명백히 잘못된 문화가 있다. 그 문화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고통스러워진다면 그것은 잘못된 문화이니 없애야 마땅하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소수 국가에 아직도 존재한다는 여성 할례, 그 끔찍한 행위조차 문화라는 미명으로 존중하며 지켜나가야 할까? 단언컨대 남의 사생활이나 민감한 부분에 지나친 관심을 갖고 질문 공세를 퍼붓는 것은 한국인들이 반드시 고쳐야 할 그릇된 언어적 습관에 불과하다. 

 

 

나로 하여금 이런 포스팅까지 하게 만든 사람은 패널 중 한 명인 의사 오한진 교수였다. 그는 갑자기 침이라도 튀길 듯 흥분하면서 이런 말을 쏟아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농경사회입니다. 그래서 옆집에 밥그릇이 몇 개고 숟가락이 몇 갠지를 다 알던 사이예요. 그래서 그런 것을 쉽게 물어보는 거거든요. 이게 하나도 해가 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걱정을 해주는 거고 진심으로 물어보는 거예요. 근데 이것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가지고 "야, 더 이상 묻지 마. 애가 생겼는지 안 생겼는지 왜 물어봐. 너랑 나랑 벽 쌓고 살아!" 이러면 안 되죠. 정말 친해지는 것은 내 속을 보여줘야 친해지는 거예요. 내 속을 보여준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은 건드려야 되는 거예요." 마치 학생들을 가르치듯 단호한 어조였다. 기가 막혔다.

 

도대체 무슨 황당한 논리일까? 분명 그런 질문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하나도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예로부터 농경사회니 뭐니 그런 소리는 할 것도 없다. 꼬맹이부터 노인들까지 전부 다 스마트폰을 쥐고 살아가는 21세기에 수백 년 전 이야기는 왜 하나? 그게 다 걱정해 주는 거고 진심으로 묻는 거라니, 그 말을 듣는 순간 혈기가 뻗쳐서 브라운관을 주먹으로 때릴 뻔했다. 그런 질문을 안 하면 서로 벽 쌓고 사는 거라니, 당최 어느 책에서 규정해 놓은 인간 관계인가? 정말 친해지려면 속도 보여주고 힘든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그게 일방적이면 당연히 문제가 된다. 질문하는 사람의 감정과 의도만 중요하고, 대답하기 싫은 질문을 받은 사람의 입장과 감정은 무시해도 된다는 말인가?

 

 

이 때 샘 해밍턴이 핵심적인 발언을 했다. "사람하고 친해지려면 속을 보여줘야 되는 것은 맞지만, 솔직히 아기에 대한 질문같은 것은 친해지고 나서 해야 될 것 같은데요. 정말 친한 사람이 물어보면 오해하지 않아요. 하지만 친하지 않은 사람이 그런 질문을 하면 거부감이 드는 거죠." 유인경 기자도 샘을 거들었다. "언제 결혼하냐, 언제 애 낳냐, 언제 취직하냐, 학교에서 몇 등 하냐, 그런 질문들 받기 싫어서 명절이나 가족 행사에도 안 가는 사람이 아주 많아요. 그런데도 좋은 뜻으로 걱정해 주는 거라고만 생각하긴 어렵죠." 그런데 뜻밖에도 '크서방'이라 불리는 미국인 크리스가 반기를 들었다. "근데요, 불편하게 안 만들면 항상 벽이 있는 거예요." 도대체 무슨 소리? 불편하게 안 만들면 벽이 있는 거라니.

 

그러자 더 이상은 못 참겠던지, 이윤석이 본격적으로 입을 열었다. 깡마르고 허약한 연예인의 대표격인 그는 결혼한지가 꽤 오래 되었는데도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서 주변의 온갖 질문들에 무척이나 시달려 온 모양이었다. "아이는 왜 안 낳느냐고들 묻지만, 일부러 안 낳는 게 아닐 수도 있잖아요. 일부러가 아니라고 대답하면 또 이것 저것 주워섬기면서 그런 노력들 좀 해보면 어떠냐고 참견하는데, 본인 입장에서는 그런 노력들도 벌써 전부 다 해본 것일 수 있잖아요. 친한 사이가 아니면 모르니까요. 굳이 걱정 안 해줘도 괜찮으니까,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제발 좀 알아서 하게 내버려뒀으면 좋겠어요. 그 사람은 처음 물어보는 것이겠지만 나한테는 101번째 질문이 될 수도 있거든요."

 

 

이윤석의 진심어린 당부를 듣고 나서야 더 이상 반기를 드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죄 없는 한 사람이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털어놓기 싫은 자기 집안의 예민하고도 힘든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밝혀야만 그 시끄러운 입들을 닫게 할 수 있는 것일까? 이윤석도 처음부터 그렇게까지 말할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부인 입장도 있고 하니까 말하기가 매우 조심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입을 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오한진 교수를 비롯한 여러 패널들의 전혀 논리에도 맞지 않는 억지 주장이 너무 강하게 어필되었기 때문이다. 난 정말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 질문을 안 하면 혀에 가시가 돋기라도 하나? 듣기 싫다는 질문은 그냥 안 하면 되지, 왜 '기분 나빠하는 네가 잘못' 이라면서 계속 하겠다는 걸까?

 

걱정해서 그러는 거라고? 진심으로 상대를 생각해서 묻는 거라고? 참 내 그야말로 "웃기시네!"다. 샘도 말했지만 사생활이나 민감한 부분에 대한 질문이 불쾌하게 느껴지는 것은 대부분 '친하지 않은 경우'에 해당한다. 그리고 정말 친한 사이라면 굳이 묻지 않아도 무슨 사정이 있는지를 벌써 다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친하지도 않은 사이에 오랜만에 만나서 민감한 질문을 하는 것이 '진심으로 걱정해서'라고?? 저마다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에, 자기 가족들만 챙기면서 살기도 빠듯한 세상에, 친하지도 않은 남의 사적인 일을 진심으로 걱정할 인간은 없다. 남이야 결혼을 하든 말든, 아기를 낳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솔직히 상관없지 않은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거라고 끝내 주장하고 싶다면, 나는 꼭 한 마디만 묻겠다. "아기는 왜 안 낳아?" 라고 물었을 때 상대방이 "사실은 우리가 임신이 좀 어려워서 시험관 아기를 해보려고 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네. 생활도 어려운데 좀 도와줄 텐가?" 라고 묻는다면 선뜻 도와줄 의향이 있느냐고 말이다. 전혀 친하지도 않고 그저 얼굴이나 몇 번 본 사이라고 가정할 때, 제대로 도움을 주려면 최소 몇십만 원은 주어야 생색이라도 날텐데 그럴 의향이 있냐는 말이다. 그럴 생각이 없다면 이 순간부터 질문하는 그 입을 꾹 닫으시라. 질문 퍼붓는다고 쌀 한 톨의 도움이라도 되는 게 아니다. '하나도 해가 안 되는 이야기' 라니 오한진 교수는 의사로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스트레스가 얼마나 건강에 해로운지를 잘 알만한 사람이.

 

샘 해밍턴이 제시한 질문 목록에는 아기에 대한 것도 있지만, 경제적인 부분에서의 민감한 질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CF 수입이 얼마냐고 묻는 것도 '걱정하는 마음'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걱정은 개뿔, 그냥 궁금하니까 또는 자기랑 비교하려고 묻는 것 아니겠는가? 사실 민감한 질문 공세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어딘가 평범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늦도록 결혼을 안 했거나 취직을 못 했거나 자식이 없거나 등등... 사회적인 시선으로 볼 때 약점(?)이 있으니까 온갖 하이에나들의 표적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를 향해 그런 질문을 하기 전에는 필히 자아성찰을 먼저 해보시라. 지금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혹시 저 사람과 나를 비교하면서 만족감을 느끼려는 못된 심리가 자리잡고 있는 건 아닌지를 말이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