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류시화 - 목련 / 아프고 시린 청춘의 詩 본문
목련을 습관적으로 좋아한 적이 있었다
잎을 피우기도 전에 꽃을 먼저 피우는 목련처럼
삶을 채 살아 보기도 전에 나는
삶의 허무를 키웠다
목련나무 줄기는 뿌리로부터 꽃물을 밀어올리고
나는 또 서러운 눈물을 땅에 심었다
그래서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모든 것을 나는 버릴 수 있었지만
차마 나를 버리진 못했다
목련이 필 때쯤이면
내 병은 습관적으로 깊어지고
꿈에서마저 나는 갈 곳이 없었다
흰 새의 날개들이 나무를 떠나듯
그렇게 목련의 흰 꽃잎들이
내 마음을 지나 땅에 묻힐 때
삶이 허무한 것을 진작에 알았지만
나는 등을 돌리고 서서
푸르른 하늘에 또 눈물을 심었다
- 류시화 '목련'
류시화 시인의 '목련'... 내가 꽤 오래 전부터 좋아했던 작품이다.
대략 20대 초중반쯤이 아니었나 싶다.
파릇파릇한 그 나이의 내가 가장 공감했던 구절은 바로 이것이었다.
"삶을 채 살아보기도 전에, 나는 삶의 허무를 키웠다."
당시의 내 마음을 어찌나 정확히 짚어냈던지
나는 그 싯귀를 되새길 때면 항상 가슴이 서늘해지곤 했다.
허무는 그 실체를 아직 깨닫지 못했을 무렵부터
어쩌면 10대 후반의 여고생 때부터 나의 내면을 지배하던 감정이었다.
삶을 채 살아보기도 전부터.
사춘기와 20대를 좀 더 치열하게 보냈더라면
치열했던 그만큼 빨리 벗어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겁이 많았던 탓인지 오만했던 탓인지
나는 참 시리고 막막했던 그 청춘의 터널을
아주 천천히, 기어가듯 천천히 통과했다.
친구들은 일찌감치 터널을 통과해서 또 다른 세상에 도착했는데
나는 지겹도록 오랫동안 그 터널 안에 갇혀 있었다.
"모든 것을 나는 버릴 수 있었지만, 차마 나를 버리진 못했다"
스스로 감당하기 벅찬 내적 고통에 시달리다 보면
영원히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 속의 話者처럼 나 역시, 차마 나를 버리진 못했다.
"목련이 필 때쯤이면"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들이 따스한 봄빛 속에 살아나는데
그 생동감 넘치는 모습들이
오히려 나를 밀어내는 듯 한없이 서럽던 시절
"내 병은 습관적으로 깊어지고, 꿈에서마저 나는 갈 곳이 없었다"
세상 그 어디에도 내가 발붙일 자리는 없는 듯
꿈에서마저 살지도 죽지도 못하고 길 잃은 채 헤매던 시절...
청춘의 병은 참으로 지독하고 깊었다.
돌이켜 보니 故이은주, 故정다빈...
내가 많이 좋아했던 여배우들이 스스로 세상을 버렸을 때, 나이는 25~26세였다.
그들은 무사히 청춘의 터널을 통과하지 못하고 그렇게 떠났다.
어쩌면 다른 이유들도 있었겠지만.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그 터널을 통과하여
이제 다시 류시화의 '목련'을 읽으니 감회가 새롭다.
지금 아프고 시린 청춘들에게 모두 행운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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