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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둥지' 복수에 공감 실패하면 희망은 없다 본문

드라마를 보다

'뻐꾸기 둥지' 복수에 공감 실패하면 희망은 없다

빛무리~ 2014. 6. 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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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희의 처연한 모습으로 흰빛 화면을 가득 채웠던 '뻐꾸기 둥지' 예고편은 많은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다. '인어 아가씨', '아내의 유혹' 이후 복수극의 여신이라 불리는 그녀가 다시 복수극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은 일말의 설렘마저 느끼게 했다. 그런데 이번에 장서희는 복수의 주체가 아니라 그 대상이다. 복수를 하는 쪽이 아니라 당하는 쪽인 것이다. 독한 연기를 할 때조차 여리고 상처받은 이미지로 가슴 저리게 하는 배우인데 설상가상 억울하게 처절한 복수를 당하는 비련의 여인이라니, 이제 '뻐꾸기 둥지'는 안방극장에 넘치는 눈물을 예고한다.  

 

그런데 문제는 복수의 타당성이다. 타당한 복수는 시청자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고, 시청자는 복수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통해 쾌감을 얻는다. 장서희를 복수극의 여신으로 만들어 준 '인어 아가씨'와 '아내의 유혹'은 복수의 타당성을 충분히 확립한 드라마였다. '인어 아가씨'의 여주인공 아리영(장서희)의 아버지(박근형)는 불륜녀와 결혼하기 위해 임신한 아내와 어린 딸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돌보지 않았다. 참담한 환경 속에 자폐아로 태어났던 아리영의 남동생은 어려서 유괴 살해되었고, 엄마는 그 충격으로 눈이 멀었다. 연이은 불행의 원인을 오직 아빠의 불륜에만 돌리는 것은 약간 확대된 경향이 있지만, 어쨌든 아리영의 삶이 불행해진 결정적 이유를 아빠가 제공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아내의 유혹'에서도 역시 남편의 불륜이 등장한다. 여주인공 구은재(장서희)의 남편 정교빈(변우민)과 불륜녀 신애리(김서형)는 악의 축 한 쌍이라고 할만하다. 신애리는 친한 친구였던 구은재를 배신하고 그 남편을 유혹했으며, 정교빈은 신애리와 결혼하기 위해 임신한 구은재를 살해하려고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구은재가 남편과 신애리에게 복수하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인어 아가씨'의 아리영이 부친에게 갖는 복수심에도 시청자들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더욱이 주부 시청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일일드라마의 특성상, 남편(또는 아버지)의 불륜이라는 소재는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고, 그에 따라 더욱 큰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뻐꾸기 둥지'는 어이없게도 1회에서 이미 복수의 타당성을 상실했다. 여주인공 백연희(장서희)는 복수의 객체이며, 사실상 복수의 주체는 이화영(이채영)이다. 이화영이 백연희에게 복수를 결심한 것은 오빠 이동현(정민진)을 죽게 만든 사람이 백연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동현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은 백연희가 아니라 그 아버지인 백철(임채무)이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이동현의 죽음은 지독히 운 나쁜 사고였을 뿐, 백철에게도 그 직접적인 책임을 묻기는 다분히 억지스런 상황이다. 그런데 이동현과 사랑하는 사이였을 뿐 아무 죄 없는 백연희에게 엉뚱하게도 앙심을 먹고, 대리모라는 위험한 선택으로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면서까지 미친 복수를 꿈꾸는 이화영의 캐릭터가 어찌 공감을 얻을 수 있겠는가?

 

 

부잣집 딸과 가난한 청년의 만남이라는 흔한 스토리에서 비극은 시작되었다. 천금같은 딸이 '그런 놈'과 사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던 백철은 급기야 부하(?)들을 이끌고 두 남녀가 동거하던 집으로 쳐들어가 백연희를 끌어내 차에 태운다. 만삭의 연인이 아버지에게 강제로 붙잡혀 가는 것을 지켜만 볼 수 없던 이동현은 오토바이를 몰고 차를 뒤쫓다가 불행히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동현의 가족들 입장에서 백철을 원망할 수는 있겠으나, 결코 살인이라 주장할만한 요소는 없다. 더욱이 백연희는 이동현이 죽은 후 6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백철의 뜻에 따라 정병국(황동주)과 결혼했지만 자궁의 이상으로 불임이 되어버린 상태다.

 

이동현의 누이동생 이화영의 입장에서도 백철을 원망할지언정 백연희를 미워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비극으로 끝나버린 그녀의 사랑과 현재의 불행을 가련히 여길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화영은 백연희를 사무치게 증오하며 그녀의 인생을 파멸시키기 위해 독한 복수를 전개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이화영의 캐릭터는 복수의 여신이 아니라 전형적인 못된 악역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고, 백연희는 처음부터 끝까지 억울하게 당하기만 하는 순하고 착한 여자의 캐릭터로서 시청자들을 복장 터지게 할 가능성이 높다. 복수극의 속시원한 카타르시스는 아예 기대할 수도 없고, 여주인공 백연희에게 몰입하면 할수록 짜증만 나게 될 것이다.

 

 

최초의 설정이 이렇게 잡혀 버렸으니 '뻐꾸기 둥지'의 앞날은 매우 염려스럽다. 차라리 백연희가 조금이라도 악녀적인 면모를 보여준다면, 그래서 이동현의 죽음에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반전이 이루어진다면 그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백연희의 캐릭터는 평면성을 탈피해 역동적인 면을 보여줄 수 있고, 이화영의 캐릭터는 복수의 타당성을 입증할 수 있으니 말이다. 차후의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나, 1회에서 보여준 설정이 전부라면 솔직히 희망은 거의 없어 보인다. (백연희의 남편 정병국이 이화영의 옛 애인이라는 설정도 있지만, 그 역시 복수의 타당성을 부여하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성실한 여배우 장서희가 오랜만에 돌아왔으니, 그녀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작가가 좀 더 최선을 다해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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