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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이방인' 한재준(박해진)의 각성, 복수극의 새 지평을 열다 본문

드라마를 보다

'닥터 이방인' 한재준(박해진)의 각성, 복수극의 새 지평을 열다

빛무리~ 2014. 6. 11.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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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이방인' 리뷰는 처음 쓰는 것이지만 굳이 지난 줄거리를 요약할 생각은 없다. 내용이 워낙 복잡다단하고 등장인물들의 사연이 구구절절하며 벌여놓은 일들이 많아서 요약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 한껏 욕심을 부려 스케일을 크게 잡았지만 효과적으로 수습하지 못하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고... 어쨌든 '닥터 이방인' 리뷰를 읽는 독자들이라면 대충의 스토리는 알고 있으리라 여기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위주로 풀어나가려 한다. 

 

 

주인공은 박훈(이종석)인데, 나는 자꾸만 한재준(박해진)에게 더 마음이 끌린다. 내가 절대로 탤런트 박해진의 개인적 팬은 아닌데, 이상하게도 요즘은 그가 출연하는 작품마다 그의 캐릭터가 마음에 꽂힌다. '별그대'에서도 나는 도민준(김수현)보다 이휘경(박해진) 캐릭터에 더욱 공감이 갔었다. '너목들' 이후로 이종석을 보면 저절로 '수하'라는 이름이 입가에 맴도는데, 유감스럽게도 훈이는 수하보다 좀 덜 매력적인 듯하다. 장난기 넘치는 귀여운 성격, 청년 의사로서 매번 선보이는 놀라운 수술 실력, 게다가 따뜻한 인간미까지 박훈은 나무랄 데 없는 캐릭터인데 왜 끌리지 않을까? 

 

결정적으로 송재희(진세연)와의 러브라인에 공감이 안 가서 그런 것 같다. 둘이는 나름대로 애틋한 것 같은데 당최 몰입이 안 된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이보영과 더불어 자아내던 중독적인 케미와는 너무도 차이가 크게 난다. 진세연은 볼수록 예쁜 인형같은 느낌만 들고, 게다가 여주인공 송재희는 매번 박훈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할 뿐이다. 북한에서 자라난 천재 의사 박훈이 남한으로 내려와 이방인으로서의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최고의 인의 및 명의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언제나 송재희 때문에 무릎이 꺾인다.

 

 

명우대학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보호자 동의 없이 3년차 전공의에게 수술을 맡겼고, 서툰 솜씨의 전공의는 의료사고를 냈다. 하지만 병원측에서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환자에게 고지하지 않았다. 의료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환자와 보호자가 알게 되면 당연히 소송을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병원 이미지에 큰 타격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잘못 수술된 심장 때문에 환자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늙은 의사는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하는 경우야 흔한 일이지!" 라고 태연히 말한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재수술이 꼭 필요하지만, 재수술을 한다는 것은 의료사고를 인정한다는 뜻이므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내가 메디컬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저런 모습을 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이다. 누구나 아프면 병원에 갈 수밖에 없는데, 병원에 가서 의사를 믿지 못하게 되면 어찌 맘 편히 몸을 맡길 수 있겠는가? 그런데 자꾸만 드라마 속에서 저런 의사의 모습을 보다 보면 저절로 마음속에 불신감이 자리잡게 된다. 설령 현실이 그렇다 해도, 현실을 알고 불신감을 갖는 데서 끝날 뿐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힘이 없는데 어쩔 것인가? 알아봤자 괜시리 마음만 불편해질 뿐이니, 차라리 그냥 모른 척 질끈 눈 감고 무조건 믿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병원측이 의료사고를 덮기 위해 희생시키려는 그 환자는 한 아이의 소중한 어머니이며 한 남자의 귀한 아내였다. 박훈은 심장내과 교수의 결사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진행하려 했지만 끝내 가로막힌다. 이방인인 자기 힘으로는 병원의 압력을 거스르기 힘들다고 느낀 박훈은 그 수술을 한재준에게 넘긴다. 박훈과 한재준은 국무총리 장석주(천호진)의 수술을 앞두고 대결을 벌이는 중인데, 그 대결에서 승리해야만 총리의 수술을 집도할 수 있으며, 두 사람 모두 꼭 승리해야 할 개인적 이유를 갖고 있다. 첫번째 대결에서 박훈이 이겼기 때문에, 한재준은 나머지 두 차례의 대결을 모두 이겨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그런데 박훈이 "이 환자를 수술해서 살려내기만 하면 두번째 대결은 무조건 네가 이기는 거다" 하니 한재준도 의욕적인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명우대학병원의 최고 실세인 이사장 오준규(전국환)가 막아섰다. "그 환자를 수술하는 놈이 무조건 지는 거다!" 이렇게 되면 한재준은 물러설 수밖에 없다. 이번에 지면 끝이니까, 오랫동안 준비해 온 복수를 시작도 못한 채 모든 목표가 좌절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미리 취득한 승점 덕분에 여유로운 박훈이 다시 나선다. "어쨌든 두번째 대결은 이 환자의 수술로 결정된 거죠? 그럼 내가 하지 뭐!"

 

 

오준규 이사장과 늙은 의사들의 당혹스런 시선을 뒤로 하고 수술을 강행하려는 박훈에게 치명적 태클이 들어온다. 북한에서 파견된 간첩 차진수(박해준)다. 한승희로 이름을 바꾼 송재희 역시 차진수의 지시를 받는 간첩의 일원이다. 북한측에서는 무엇 때문인지 장석주 총리의 수술을 반드시 박훈에게 맡기려 하고 있는데, 두번째 대결에서 자진하여 패배하겠다는 박훈의 결정은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었다. 연인 송재희의 목숨을 손에 쥐고 위협하는 차진수 앞에서 결국 박훈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박훈이 수술을 포기하자 한재준은 분노한다. 그는 이미 환자의 어린 아들에게서 자신의 예전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간단한 수술이라며 걱정 말라고 웃던 아버지가 의료사고의 피해자가 되어 차디찬 시신으로 돌아왔을 때, 어린 한재준은 복수를 다짐했다. 사고를 내고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뻔뻔하게 굴던 원흉이 바로 오준규 이사장이었다. 지금 한재준은 명우대학병원 최고 실력의 외과의가 되어 있고, 오준규의 외동딸 오수현(강소라)과 연인 사이다. 하지만 오준규에게서 병원과 딸을 한꺼번에 빼앗아 버리기에는 아직 힘이 약간 부족했다. 조금만 더, 한 걸음만 더 나가면 되는데 여기서 장애물을 만나고 말았다.

 

 

박훈 이 자식이 수술을 못 하겠다니, 그럼 저 아이의 엄마는 꼼짝없이 죽게 될 것이다. 엄마의 억울한 죽음을 눈 뜬 채로 멀뚱멀뚱 지켜보아야 할 그 아이의 모습이 자꾸만 과거의 자신과 겹쳐져서 미칠 것 같았다. 결국 한재준은 메스를 잡고 아이의 엄마를 수술대에 올린다. 분노한 오준규가 펄펄 뛰며 욕설을 퍼부어도 개의치 않았다. "우선은 환자를 살려놓고 봐야 합니다. 우리가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의료 소송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한재준의 말에 오준규가 일갈했다. "아니, 그런 식으로 소송을 피해간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우리가 한 번도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재준은 결연히 외쳤다. 그러나 수술 중에 긴장한 스태프가 실수하여 대량 출혈이 발생했고, 가뜩이나 어려운 수술이었기 때문에 환자는 수술 중 사망할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 맘 졸이며 지켜보던 박훈은 결국 손을 씻고 수술실에 들어선다. 대결을 벌이던 한재준과 박훈이 승패에 연연하기는 커녕 자신의 미래와 목숨을 걸고 한 명의 환자를 살리기 위해 힘을 합치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오준규의 협박도 차진수의 총칼도 두 사람을 막을 수 없었다.

 

 

박훈은 원래 주인공이고 선(善)의 인물이지만, 한재준은 박훈의 대척점에 서 있는 악(惡)의 인물처럼 보였었다. 개인적인 복수심에 가득 차 타인의 입장이나 마음 따위는 돌볼 여유가 없는, 냉혹하고 비정한 사람처럼 보였었다. 그런데 12회에서 보여준 한재준의 새로운 모습은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변화된 모습이 어찌나 반갑고 기뻤던지! 청명한 밤하늘에서 수천 수만개의 별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대도 그처럼 황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우리가 한 번도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라고 외칠 때, 한재준은 정말 멋있었다. 뜨겁게 포옹하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이로써 한재준의 캐릭터는 복수극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는 진정한 복수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 셈이다. 원래 복수의 정석이라면 원수로부터 소중한 것을 모두 빼앗고 철저히 파멸시키는 것이겠지만, 그런 복수의 결과가 기쁨과 행복으로 돌아오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오히려 복수를 끝낸 후의 마음에는 허탈감만 남았을 뿐이다. 그런데 한재준은 진정한 의사가 무엇인지를 보여줌으로써 가장 통쾌한 복수를 이미 이루었다. 가짜 의사들은 병적인 우월감으로 환자의 목숨을 업신여겼지만, 그 피해자의 아들이 훌륭히 성장하여 진짜 의사가 됨으로써 그들을 이기고 만 것이다.

 

 

물론 여기서 끝은 아닐 것이다. 박훈과 연결된 북한 쪽의 일도 해결봐야 하거니와, 명우대학병원 내에서도 죄 지은 자들은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재준이 참된 의사의 길을 각성한 이상, 오준규를 비롯한 몇몇 썩은 의사들이 어떤 식으로 처벌받게 될지는 이미 중요치 않다. 나는 원래 용서한다 어쩐다 하면서 얼싸안고 질질 짜는 것보다는 차라리 매정하고 깔끔한 복수극을 선호하는 편인데, 속시원히 철퇴 한 방을 내리는 것보다 더 유쾌상쾌통쾌한 복수극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한재준이 변화되면서 '닥터 이방인'에도 급격히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다음 주 월요일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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