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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둥지' 진실의 열쇠는 의사 선생이 쥐고 있다? 본문

드라마를 보다

'뻐꾸기 둥지' 진실의 열쇠는 의사 선생이 쥐고 있다?

빛무리~ 2014. 6. 12.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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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둥지'는 마치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것처럼 속도감이 끝내주는 드라마이다. 일일연속극이니 최소 100부작은 넘게 달려야 할텐데, 이제 겨우 8회만에 주요 내용의 절반 이상이 지나가 버린 느낌이다. 물론 지금은 빨라서 재미있고 좋은데, 이렇게 해서는 결코 방대한 분량을 채울 수 없을테니 나중에 얼마나 늘어지게 될지 좀 걱정스럽기도 하다. 어쨌든 초반의 빠른 전개와 자극적인 내용으로 시청자를 사로잡기에는 성공한 듯 싶다.

 

 

엄밀히 말해서 이 드라마는 '복수극'의 계열에 포함시킬 수 없다. 우선 죄 지은 자가 있고 그 다음에 복수하는 자가 있어야 하는데, 이 드라마에는 복수를 당해야 할 만큼 '죄 지은 자'가 없기 때문이다. 죽은 오빠 이동현(정민진)의 복수를 한답시고 대리모를 자처한 이화영(이채영)의 행동은 사실 복수가 아니라 '화풀이'에 불과하다. 지독한 가난 때문에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화풀이 대상을 찾고 있던 중, 하필 오빠의 연인이었던 백연희(장서희)가 자신의 옛 연인이었던 정병국(황동주)의 아내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맞춤형 타겟으로 선택했을 뿐이다.

 

"오빠는 죽었고 나는 이렇게 불행한데, 너는 부잣집 며느리가 돼서 떵떵거리고 살다니!" 복수의 이유는 이게 전부다. 논리적 당위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화영의 감정적 푸념일 뿐이다. 백연희가 과거를 모두 잊고 행복하게 살고 있기라도 하다면 모르겠는데, 오히려 백연희는 이동현의 죽음으로 인한 죄책감과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자궁암에 걸려 영구불임이 되는 불행까지 겪고 있다. 게다가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지 모를 백연희의 시집 식구들은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야만 한다고 백연희를 압박하는데, 며느리의 영구불임을 꽁꽁 숨겨 온 시어머니 곽여사(서권순)는 급기야 대리모 선택을 강요하기에 이른다.

 

 

이화영이 그 대리모를 자청한 이유는 대략 3가지쯤으로 압축된다. 첫째, 백연희의 시어머니가 2억원 이상의 돈을 주겠다고 했으니 10개월만 고생하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단숨에 해방될 수 있다. 둘째, 아이를 낳은 후 자기가 친모임을 주장하고 나서면 오빠를 죽게 만든 (이건 순억지지만 하여튼) 그 여자 백연희에게 복수할 수 있다. 셋째, 매정하게 자기를 버렸던 옛 애인 정병국의 뒤통수도 칠 수 있다. "당신 마누라는 못 낳는 아들을 내가 낳았어. 이제 어쩔 거야?" 하면서, 혹시 운 좋으면 그 집안 며느리 자리를 꿰차고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와 같은 복수가 가능하려면, 아기는 정병국의 정자와 이화영의 난자가 결합해서 태어나야 한다. 하지만 백연희는 자궁적출 수술을 받은 후에도 난소의 기능이 살아 있었던 모양이다. 곽여사의 은밀한 부탁을 받은 병원측에서는 당연히 정병국의 정자와 백연희의 난자를 체외수정시켜 이화영의 자궁에 이식하려는 수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복수고 화풀이고 불가능해진다. 이화영은 단지 몸만 빌려주는 것일 뿐, 태어난 아기는 정병국과 백연희 부부의 친자식이기 때문이다.

 

 

훗날 생모의 권리를 주장하며 백연희를 괴롭히려면, 반드시 난자를 바꿔치기해야만 했다. 이화영은 마침 그 병원 산부인과에 근무하고 있는 의사 전명석(안홍진)을 찾아가 부탁한다. 전명석은 죽은 이동현의 친한 친구였고, 이동현으로부터 적잖은 도움을 받았기에 마음의 빚도 있는 상태였다. "오빠, 제발 부탁해. 죽은 우리 오빠한테 빚진 거 갚는 셈 치고 나 좀 도와 줘!"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걸까? 친구의 여동생이 대리모를 하겠다는데 말리지는 못할망정, 난자를 바꿔치기하면서까지 그 범죄를 돕는 일이 어째서 죽은 친구에게 빚을 갚는 일이란 말인가?

 

물론 대리모 자체가 불법이라지만, 이화영이 저지르려는 행동은 그보다 훨씬 더한 범죄다. 만약 전명석이 이화영의 제안에 동조한다면 그 역시 엄청난 범죄의 공범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생명을 두고 속임수를 쓰는 일이니 의사로서는 더욱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극구 거절하던 전명석은 갑자기 두 손 들고 이화영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래, 좋다. 이걸로 죽은 동현이한테 진 빚을 모두 갚았다고 생각하겠다." 의사 선생이 무슨 바보도 아니고, 미친 것도 아니고, 아무런 대가도 받은 것 없는데 왜 저러나 싶었다.

 

 

그런데 출산 후 이화영을 대하는 전명석의 태도를 보니 뭔가 짚이는 게 있었다. 전명석은 아이가 태어나자 마자 간호사들에게 눈짓하여 밖으로 급히 데리고 나가게 했다. 이화영이 "잠깐만요. 아기 좀 보여주세요!" 했지만 전명석은 나중에 보라면서, 지금은 출산 후처리를 해야 하니까 움직이지 말라고 명령했다. 잠시 후 병실로 옮겨진 이화영은 계속 아기를 찾는다. 하지만 간호사는 벌써 아기를 안고 다른 병실에서 대기하던 백연희에게 다가가 "아가야, 너희 엄마란다!" 하면서 넘겨준 이후였다. 곽여사와 정병국이 득달같이 달려와 아기를 보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이화영은 자기 병실을 찾아 온 전명석에게 매달린다. "오빠, 내 아기 좀 보여 줘. 내 아기!" 하지만 전명석은 단호히 거절한다. "화영아, 너는 대리모야. 네 아기 아니잖아!" 이화영이 미친 듯 소리친다. "무슨 소리야? 내 아기잖아. 오빠는 알잖아. 내 아기야!" 하지만 전명석은 한치의 흔들림 없이 말했다. "네 아기 아니야. 오늘 이후로 우리는 모르는 사이다. 다시는 연락하지 마. 동현이와의 의리, 우정, 빚진 거, 네 말대로 나는 다 갚았다!" 그리고는 차갑게 돌아서 나가버린다. 전명석의 그런 태도는 무엇을 의미할까? 의사는 난자를 바꿔치기하지 않았다.

 

 

이화영의 자궁을 빌어 태어난 아기는 백연희의 친아들이다. 아무리 말려도 대리모를 꼭 하고야 말겠다는 이화영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난자를 바꿔치기하는 끔찍한 범죄만은 저지르지 않도록 막아준 것, 그게 바로 전명석이 죽은 친구 이동현에게 빚을 갚는 유일한 길이었다. 이화영과의 연락을 끊으려는 이유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실을 모르고 있는 이화영은 이제 적절한 시기를 기다려 복수를 시작할 것이다. 백연희가 아이에게 정을 줄만큼 다 줘서 결코 엄마의 자리를 포기할 수 없을 때쯤 나타나 "이 아이의 친모는 당신이 아닌 나" 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면 백연희는 깊은 고통에 사로잡힐 것이다. 내 자식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찢어질 노릇인데, 설상가상 그 아이의 친모가 남편의 옛 애인이라면 자신의 위치마저 불안해짐을 느낄테니 말이다. 자칫하면 아이뿐만 아니라 남편까지 빼앗기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남편과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한 백연희가 느끼게 될 고통의 크기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백연희의 2차 복수를 기대했었다. 억울하게 모든 것을 잃은 백연희가 각성하여 다시 이화영에게 복수하는 식의 전개를 말이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진실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의사 전명석이 적당한 시기에 짠 하고 나타나 "진우(아기 이름)는 백연희씨의 친자가 맞습니다!"라고 한 마디만 해 주면, 그 순간 모든 상황은 정리될 것이기 때문이다. 복수라 이름 붙이기도 민망했던 이화영의 원맨쇼는 허무하게 끝나고, 폐허가 된 몸과 마음만 남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서글퍼지기도 한다. 그러잖아도 이화영은 이 사회의 철저한 약자인데, 지독히 가난한 데다가 가족이라고는 도박꾼 엄마(박준금)와 백수 외삼촌(전노민)뿐인데, 왜 가여운 그녀를 더욱 가엾게 파멸시켜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이화영의 말도 안 되는 복수가 성공하기를 바랄 수도 없는 일이다. 미친 한풀이의 결과로 이화영이 불행해지는 것은 자업자득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백연희는 또 무슨 죄가 있어서 불행해져야 하나? 만약 오늘의 내 추측이 틀렸다면, 진짜로 의사 전명석이 난자를 바꿔치기해서 이화영의 핏줄을 받은 아이가 태어났다면 '뻐꾸기 둥지'는 정말 짜증나고 속터지는 드라마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내 추측대로 백연희의 아이가 맞다면,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여주인공의 억울한 고통이 끝날 것임을 믿을 수 있다면, 조금은 맘 편히 지켜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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