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STORY 2014 우수블로그
TISTORY 2012 우수블로그
TISTORY 2011 우수블로그
TISTORY 2010 우수블로그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조선총잡이' 격변의 시대를 살아간 선조들의 이야기 본문

드라마를 보다

'조선총잡이' 격변의 시대를 살아간 선조들의 이야기

빛무리~ 2014. 6. 27. 08:50
반응형

 

새로운 문화를 접할 때면 누구나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아무 준비도 없는 상태로 낯선 문화와 급격히 맞닥뜨리게 된다면 그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19세기 조선에는 서양을 비롯한 외국 문명들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고, 변화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조선인들은 대혼란에 빠져들었다. 별다른 거부감 없이 남의 것을 쉽게 받아들이고 모방하는 일본인들과 달리, 조선인들은 독창적인 만큼 고집이 세고 남의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뜨거운 불과 차디찬 물이 만나는 것처럼, 전통적인 우리 고유의 패러다임과 새로운 서양의 패러다임이 격렬하게 부딪쳤고, 사람들은 마치 한 몸으로 두 인생을 겪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힘겨운 시간들을 감내해야만 했다. 드라마 '조선총잡이'는 바로 그 시대를 살아간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이다.

 

 

그 격변과 혼란의 시대에 누구라서 평온하고 행복할 수 있었으랴? 왕에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의 조선인들은 모두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며 매순간 원치 않는 선택을 강요당했다. 조선 제일 검객의 아들 박윤강(이준기)에게 검(칼)은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건국 이래 조선을 지키던 무기는 바로 칼이었고, 평생 자랑스럽게 여겨 온 아버지 역시 칼 한 자루에 인생을 걸고 살아오지 않으셨던가!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변화의 바람은 윤강으로 하여금 마지막 자존심인 칼을 버리고 총을 쥐게 만들 것이다. 그것은 바다를 향하는 강물처럼 막을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며 윤강의 숙명이니까.

 

 

고종 임금 역할은 탤런트 이민우에게 돌아갔다. 오래 전 '용의 눈물'에서 양녕대군으로 분하여 실감나게 보여주었던 '미친 왕세자' 연기가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어선지, 사극에 이민우가 등장하면 왠지 든든하고 믿음이 간다. 고종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어서 '무능한 망국의 군주'로 묘사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최대한 긍정적인 모습으로 표현될 것 같다.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서도 조선의 개혁과 근대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던 임금으로 말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고종 임금은 조선의 몰락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면할 수 없지만, 그보다 훨씬 능력있고 현명한 왕이었다 해도 거세게 몰아치는 풍랑과 격변 속에서 얼마나 더 훌륭히 대처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개화를 거부하는 세력은 기득권을 지닌 양반 계층이었다. 세상이 뒤집하면 이제껏 누려 온 권력과 재물을 빼앗기게 될까봐 전전긍긍하던 그들은 급기야 개화파 인물들에게 자객을 보내 암살하기에 이르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암살의 도구로 쓰여진 무기는 서양 문물의 대표적 상징인 '총'이었다. 암살당한 인물 중에는 고종의 총신이자 개화파의 거두인 현암(남명렬)도 있었는데, 그는 일찌기 '조선개화지론'이라는 책을 집필하여 개화파 선비들을 규합하고 세상을 바꾸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총잡이에 의해 사망했다. 역관의 딸 정수인(남상미)는 바로 그 현암의 제자였다. 

 

 

온실 속 화초같은 그녀에게서 현암 선생은 어떤 특별함을 보았던 것일까? 자신이 언제 어디서 죽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현암은 필생의 저서 '조선개화지론'을 하필 수인에게 맡겼다. 비록 역관의 집에 숨어 지내는 처지였으나 마음만 먹었다면 신체 건장하고 무예도 할 줄 아는 남자 제자를 골라 맡길 수도 있었을텐데, 현암이 선택한 사람은 가장 연약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정수인이었다. 중인 신분인 역관의 딸이지만 수인은 그 어느 양반댁 규수보다도 몸가짐 단정하고 얌전한 처자였는데, 현암이 죽은 후 스승이 남긴 책을 지키려다가 피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차츰 변화될 것이다. 겁 많은 자신의 내면에 그런 용기와 강인함이 숨어있는 줄은 그녀도 몰랐으리라.

 

 

수구파 양반들은 책 한 권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를 알고 있었으니, 그 좋은 예가 바로 '천주학'이었다. 애초 조선 땅에 들어와 서학(천주교)을 퍼뜨리기 시작한 것은 금발 푸른 눈의 선교사들이 아니었다. 단지 그것은 '천주실의'라는 한 권의 책이었고, 그 책을 읽던 양반가의 멀쩡한 젊은이들은 갑자기 무엇에 홀렸는지 천주학이라는 서양 종교에 흠뻑 빠져 미친놈들이 되고 말았다. 그들에게서 시작된 천주학은 마치 전염병처럼 급격한 속도로 양반 상놈 할 것 없이 퍼져나갔고, 당파 싸움의 일환으로 박해가 일어나 수천 명이 처형당했는데도 천주학도의 숫자는 끝없이 늘어나기만 했다. 제 목숨과 부모까지도 버릴 수 있지만 결코 천주님은 버릴 수 없다면서, 그들은 망나니의 서슬퍼런 칼 아래 목을 내놓고 기꺼이 죽어갔다. 그러니 책의 위력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조선개화지론'이 세상에 남아있는 한, 개화파의 거두 현암은 살아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안동김씨 가문의 수장 김좌영(최종원)은 총잡이 최원신(유오성)을 고용해 현암을 살해한 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책마저 찾아 없애라고 명령한다. 총잡이 최원신은 과거의 상처 때문에 괴물처럼 변해버린 냉혈한이며 그에게는 최혜원(전혜빈)이라는 미모의 딸이 있는데, 극 초반 최씨 부녀의 행적은 매우 서늘하고 비밀스럽다. 연약한 몸으로 스승의 책을 품고 달아나는 정수인의 뒤를 최원신의 총구가 끈질기게 뒤쫓고, 조선제일검 박진한(최재성)의 아들 박윤강은 정수인에게 묘한 끌림을 느끼며 목숨 걸고 그녀를 보호한다. 바야흐로 총탄의 화염 속에서 애틋한 사랑이 피어나고 있다.

 

 

2007년 '개와 늑대의 시간' 이후 7년만에 남녀 주인공으로 재회한 이준기와 남상미의 어울림이 제법 괜찮다. 투샷이 하도 산뜻하고 예뻐서 마치 그들의 사랑 이야기도 예쁘게 진행될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그들의 앞날에는 처절한 슬픔과 수많은 고비가 놓여 있다. 그들이 사랑하는 가족들은 시대의 격랑 속에 억울하게 죽어갈 것이고, 복수를 다짐하며 절치부심하는 동안 기약없는 이별도 견디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칼을 놓고 총잡이로 변신하여 나타날 박윤강의 존재는 새로운 희망을 의미한다. 용기로써 변화를 수용하고, 강인함으로써 고통을 이겨내며, 힘겨움 속에서도 고이 간직해 온 인품으로 박윤강은 이 혼돈의 세상에 정의를 실현시킬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은가? 설령 내일 또 절망하더라도, 오늘 우리는 다시 꿈을 꾸어야만 한다.

 

*** 글 내용에 공감하시면, 아래의 공감 버튼을 살짝 눌러주세요^^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