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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이방원, 냉혹하고 비정한 피의 권력자 본문

드라마를 보다

'정도전' 이방원, 냉혹하고 비정한 피의 권력자

빛무리~ 2014. 6. 2.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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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드라마 '정도전'을 볼 때마다 이성계(유동근)와 이방원(안재모)의 모습에서 신비로운 감회에 젖는다. 과거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용의 눈물'과 묘하게 겹쳐지는 데자뷰 현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 태종 이방원이었던 유동근은 지금 태조 이성계가 되어 있고, 당시 충녕대군(세종)이었던 안재모는 현재 이방원이 되어 있다. 약 17년 가량의 세월이 흐른 후, 두 사람은 과거의 자신보다 한 세대 위의 인물인 아버지를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곤룡포를 걸치면 그대로 임금이 되고 갑옷을 걸치면 그대로 장군이 되는 유동근의 당당한 풍채가 예전과 다름없는 것도 신비하거니와, 당시 20대 초반의 해사한 외모로 감수성 넘치는 세종의 청년 시절을 연기했던 안재모가 30대 후반의 장년이 되어 냉혹한 이방원으로 변신한 모습은 더욱 신비하게 느껴진다.

 

 

권력욕에 불타며 매정한 성품을 지닌 이방원과 달리 이성계는 보다 순박하고 인간적이며 고뇌가 깊은 인물로 그려지는데, 유동근은 두 임금의 이러한 차이를 잘 표현해내고 있다. 그의 연기는 매우 선이 굵으면서도 섬세하다. 안재모가 표현하는 이방원의 모습은 예전의 유동근과 또 다른 느낌을 주는데, 유동근의 이방원이 붉은 용 같았다면 안재모의 이방원은 푸른 뱀 같다. 아직은 권력을 장악하기 전이라 몸을 낮추고 때를 기다려야 하니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대놓고 훅훅 불을 뿜어대는 용보다 오히려 수풀 속에 숨어서 날름거리는 뱀의 혓바닥이 더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이제 머지않아 골육상잔의 피바람이 불어올지니, 안재모의 곱상한 얼굴에 핏방울이 가득 뿌려지면 섬뜩한 공포의 카타르시스가 넘칠 것이다.

 

정도전(조재현)은 일찌기 이성계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그를 옹립하여 조선왕조의 문을 열었건만, 어째서 이방원의 인물됨은 알아보지 못했을까? 목숨을 거두어 없앨 수는 있을지언정, 날개를 꺾어 주저앉힐 수는 없는 인물임을 어찌 몰랐을까? 방원의 인물됨을 모른 것은 아비 이성계도 마찬가지였다. 아비가 뜻을 정하였다는데 제깟 것이 따르지 않으면 별 수 있겠느냐고 가볍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제 자식의 성품이 얼마나 독하고 냉정하고 집요한지를,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못할 짓이 없을 만큼 잔혹해질 수 있음을 미처 몰랐던 탓이다. 의붓 아들이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를 인식 못하기는 신덕왕후 강씨(이일화)도 마찬가지였다.

 

 

이방원처럼 냉혹한 인물이 있으면 그 주변의 여인들은 불행해지게 마련이다. 어머니도 아내도 며느리도 마찬가지다. 냉혹한 남자에게는 기본적으로 동정심이나 연민, 배려 따위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자신의 길에 도움이 될 때는 기꺼이 보호하지만, 쓸모가 없어지거나 걸림돌이 된다 싶으면 가차없이 내동댕이치거나 제거해 버린다. 신덕왕후는 (비록 사후에 일어난 일이지만) 의붓아들 방원에 의해 자기 소생의 두 아들과 사위가 죽임을 당하는 비극을 겪었으며, 방원을 적극적으로 내조하여 왕위를 이어받도록 힘썼던 원경왕후 민씨(고나은)는 훗날 그 남편에 의해 친정의 온 혈육이 몰살당하는 비극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심지어 세종이 왕위에 오른 후에는 외척의 권세를 견제한다는 명목으로 며느리인 소헌황후 심씨의 죄 없는 아비 심온을 죽이고 친정을 몰락시키기에 이르니, 태종 이방원의 냉혹함에 감히 필적할 자가 누구이랴! 그러나 이성계와 신덕왕후 및 정도전을 비롯한 공신들은 젊은 이방원의 괴물같은 내면을 차마 짐작 못한 탓에, 겁 없이 그의 면전에서 어린 막내 의안군(방석)을 세자로 앉히고 말았다. 이 잘못된 선택은 머지않아 피바람을 몰고 왔으니, 시대의 흐름을 읽고 앞장서 새 나라를 세운 그들도 자신의 앞날에 닥쳐올 미래는 전혀 내다보지 못했던 것이다.

 

 

신덕왕후 강씨에 대한 태조 이성계의 사랑은 매우 극진했던 듯 싶다. "신덕왕후가 죽자 태조는 몹시 애통해하며 명복을 빌기 위해 능 옆에 조그만 암자를 지어 매일 아침과 저녁마다 향차를 바치게 하다가 다시 1년 간의 공사를 거쳐 흥천사(興天寺)를 지어주기도 하였다. 태조는 흥천사가 완공되자마자 그 때부터 능과 절을 둘러보는게 일상사가 되었다. 능과 절을 다 돌아본 뒤 신덕왕후와의 소생들과 함께 저녁시간을 보내고, 신덕왕후의 능에 재를 올리는 절의 종소리가 나야만 비로소 침소에 들었다. 뿐만 아니라 수라 때에도 신덕왕후의 명복을 비는 불경 소리를 들은 후에야 비로소 수저를 들어 식사를 하는 등 정성을 보였다." (위키백과)

 

태조가 방석을 세자로 앉힌 이유는 방석에게 특출한 성군의 자질이 있어서라기보다 신덕왕후를 향한 애정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인간적인 정에 이끌려 후계자를 지목한 그의 행보는 너무나 순진하고 비정치적이어서 슬픈 감정을 자아낸다. 그에 비해 정도전이 신덕왕후와 한 편이 되어 방석을 지지한 것은 명백히 정치적 의도에 따른 행동이었으니 그가 꿈꾸는 신권 중심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미 장성하여 만만찮은 세력을 갖고 있는 신의왕후 한씨 소생의 왕자보다 아직 어리고 세력도 없는 신덕왕후 소생의 왕자를 다음 보위에 올리는 편이 훨씬 수월할 터였다. 나름대로는 사병 혁파 등의 방법으로 이방원을 비롯한 왕자들을 견제하려 했지만, 불행히도 운명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자기 친아들을 세자로 삼기 위해 이방원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신덕왕후를 보니, 어미의 과한 욕심으로 어린 자식들의 앞날에 불러올 비극이 벌써부터 눈에 선하여 안타깝기 그지없다. 애끓는 모정 앞에서는 냉정한 판단력과 혜안도 소용 없었던 걸까? 베갯머리송사로 부왕을 유혹해 깜냥도 안 되는 막내를 세자 자리에 앉힌 신덕왕후에게 이방원은 사무치도록 분노했다. 그는 신덕왕후가 승하한지 얼마 안 되어 신덕왕후의 소생인 방번과 방석 형제를 처참히 죽였고, 왕위에 올라서는 신덕왕후를 후궁의 지위로 격하시키고 묘를 이장했으며, 서얼 금고법과 적서 차별 제도를 만들어 식지 않은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여말선초의 대혼란 속에서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된 것은 가장 냉혹하고 비정한 이방원이었다. 과연 정치에서는 가장 독하고 냉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일까? 보다 인간적이며 의리와 정도(正道)를 지키는 방식으로는 절대 승리할 수 없는 것일까? 마침 선거철이라선지 드라마 '정도전'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비정한 권력의 법칙은, 예나 지금이나 결코 변화될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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