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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포위됐다' 인간을 사랑하는 그들의 방식 본문

드라마를 보다

'너희들은 포위됐다' 인간을 사랑하는 그들의 방식

빛무리~ 2014. 5. 29.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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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대구(이승기)는 15살 때 엄마를 잃었다. 아빠 없이, 미혼모였던 엄마와 단둘이 살았지만 그 때까지는 행복했었다. 그런데 엄마는 우연히 살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가 되었고, 열정 넘치는 젊은 경찰 서판석(차승원)으로부터 강요에 가까운 증언 요청을 받는다. 자신과 아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거부하던 엄마는 결국 증언에 응했고, 그 결과로 보복 살인을 당했던 것이다. 고아가 된 은대구는 경찰이 되기로 결심한다. 경찰이 되어 엄마를 죽인 범인도 잡고, 혹시 범인과 한패였을지 모르는 서판석의 정체도 밝히고 싶었기 때문이다. 11년 후 경찰이 된 은대구는 서판석이 이끄는 강력팀에 배정되고, 두 사람의 범상찮은 운명은 다시 얽히기 시작한다.

 

 

7회까지 드러난 서판석의 인품으로 볼 때, 살인범의 동료였을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몇 가지 의심스런 정황과 증거들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복수심 가득한 눈초리로 서판석을 노려보던 은대구였지만, 측근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조금씩 눈매가 부드러워지고 있다. 은대구가 보기에도 서판석이 살인범과 한패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나 의심은 완전히 풀리지 않았고, 서판석의 수사 방식에도 때로는 동의할 수가 없다. 내 가슴에는 아직도 엄마의 처참한 죽음을 목격하던 그 날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데, 당신은 벌써 그 일을 까맣게 잊었단 말인가?

 

서판석 팀장은 오늘도 목격자에게 증언을 강요하고 있다. 저 가난하고 힘없는 포장마차 아주머니는 우연히 범죄의 목격자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이 낯선 경찰서의 차가운 의자에 앉아 두려움에 떨며 내키지 않는 증언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완벽한 비밀 보장을 약속하겠다며 계속 아주머니를 다그치는 서판석의 모습에 결국 은대구는 발끈하며 일어선다. "그만 하세요. 싫다시잖아요! 목격자 증언을 강요할 권리는 없습니다. 더 하시면 설득을 넘어서 강요고 강압이죠. 아주머니, 거절할 권리 있으세요. 일어나서 그냥 가시면 됩니다!"

 

 

서판석은 분노한다. 은대구의 행위는 하극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보기엔) 명백한 수사 방해 행위였다. 경찰로서는 절대 할 수 없는 행위를 은대구가 저지른 것이다. "사직서 쓰고 당장 꺼져!" 그러나 은대구도 물러서지 않았다. 해마다 점점 늘어나고 있는 보복 범죄 통계를 제시하며, 수사 기관을 통해 신고자의 정보가 유출된 경우도 많았음을 덧붙인다. 어떻게 그토록 확신에 차서 목격자에게 비밀 보장을 확언하느냐, 눈앞의 수사 실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2, 제3의 피해를 막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서판석은 말한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제2, 제3의 피해자 만큼 중요한 것은 이미 발생한 범죄 피해자의 억울함과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라고. 네 눈에는 아무 죄없이 칼에 찔려 혼수상태에 빠진 피해자의 억울함과 그 가족의 고통이 보이지 않냐고 외친다. "그걸 포차 아주머니가 풀어줘야 할 이유는 없다고요!" 은대구가 절규하듯 항변한다. 그러나 서판석은 계속 나가라고 외칠 뿐이다. "네가 암만 뭐라고 해도 나는 꼭 잡아야겠다. 내 몸에 칼이 들어와도, 누군가의 증언을 받아서라도 꼭 잡고 말 거다. 그게 경찰이 할 일이다!"

 

 

그러자 은대구의 입에서 꽁꽁 숨겨두었던 비밀의 일부가 새어 나왔다. "2003년, 목격자 증언으로 사망했던 마산 양호교사 살인사건..." 그 말이 떨어지자 서판석을 비롯한 주변의 모두가 얼음이 된다. 은대구의 엄마가 살해당한 일은 서판석의 일생을 통틀어서도 가장 뼈아픈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분노한 상태에서 아픈 곳을 찔린 서판석은 잿빛이 된 얼굴로 묻는다. "너, 내 뒷조사 하고 다니냐?" 그제서야 아차 싶은 은대구는 서둘러 말을 수습한다. "뒷조사할 것도 없이 강력계의 레전드 서판석, 이름만 검색해 보면 다 나오는 이야깁니다."

 

"그런 뼈아픈 사건까지 겪은 팀장님이 왜 여전히 목격자 증언을 강요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서판석은 더 이상 논리적인 대화를 나눌 생각도 여유도 없었다. "이해할 필요 없어. 그냥 사직서 쓰고 나가!" 하지만 먼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간 쪽은 서판석이었고, 은대구는 자신의 경솔함을 자책한다. 이제껏 11년을 기다려 왔는데, 중요한 순간에 욱하는 심정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정체를 드러낼 뻔했기 때문이다. 서판석은 머지않아 은대구의 정체를 알아차릴 것이다. 무엇보다 은대구라는 인물은 성격 자체가 너무 순수하고 강직하니, 비밀을 감춘 채 오래 연극을 하기엔 부적합하다.

 

 

사실 은대구와 서판석은 둘 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사람들이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피해자의 억울함과 고통을 덜어주려는 서판석도 그렇고, 제2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목격자를 보호하려는 은대구도 마찬가지다. 다만 인간을 사랑하는 두 사람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어느 쪽의 방식이 더 옳은 것일까? 나의 개인적 견해로는 은대구의 방식이 좀 더 합리적이지 않나 싶다. 죽은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보다는 산 사람의 안전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논리에서다. 이미 발생한 범죄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다가 제2의 피해자를 발생시킨다면 그건 너무 어처구니 없는 일이니까.

 

만약 서판석이 은대구의 엄마가 죽게 된 그 사건을 경험한 후에도 특별한 안전장치 없이 목격자에게 증언을 강요해 왔다면, 절대 훌륭하거나 바람직한 경찰이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서판석의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실적에 눈이 멀어 제2, 제3의 피해자를 발생시켰다는 은대구의 말이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은대구 엄마의 죽음 이후 각성하여 목격자 보호를 위한 특별한 방책을 강구해 놓았다면 또 문제는 달라진다. 그렇다면 앞으로 은대구는 훌륭한 선배 서판석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하게 될 것이다.

 

 

은대구가 고아원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동료들은 놀람을 금치 못하는데, 문득 박태일(안재현)이 입을 열어 "갑자기 이런 시가 생각나네" 하면서 시 한 구절을 외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는 참 느닷없고 생뚱맞은 장면이었지만, 그래도 싯귀가 워낙 인상적이어서 즉시 검색해 보았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였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방문객'-

 

 

이 시가 말하고 있는 것도 결국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다. 내 집을 (혹은 직장을) 찾아오는 수많은 방문객들 중에는 나의 친한 친구도 있고, 물건을 팔러 오는 잡상인도 있고, 오직 업무적인 대화만을 나누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반갑지만 때로는 귀찮고 때로는 무감각할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와 친하든 그렇지 않든, 그 방문객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하나의 우주다. 그가 내 집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내 집에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들어서는 것이다. 그래서 삽시간에 내 집은 그의 일생을 품어안게 된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시인은 그 일생에 켜켜이 숨어있을 아픔까지 떠올린다. 세상 그 어떤 인생인들 녹록한 삶이 있으랴! 바람이라도 불어와 살짝 들춰내지 않으면 그 자신 외에는 아무도 모를, 깊이 숨겨진 상처와 비밀들을 생각하며 시인은 연민을 느낀다. 모든 방문객을 그러한 연민의 마음으로 맞이한다면 어찌 극진한 환대가 되지 않으랴! 솔직히 나는 아직 그런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으니 이 시를 읽으며 감동하다가도 귀찮은 손님이 찾아오면 그냥 귀찮아 하겠지만,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삶의 의무인지는 새삼 깨닫게 되었다. 과연 '너포위'의 두 남자, 은대구와 서판석의 다른 방식의 사랑은 어떤 결론을 맺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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