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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시절' 소녀 강동옥, 소년 민우진을 만나다 본문

드라마를 보다

'참 좋은 시절' 소녀 강동옥, 소년 민우진을 만나다

빛무리~ 2014. 5. 17.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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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 지능의 만년소녀 강동옥(김지호)과 동네 보건소에 새로 부임해 온 젊은 의사 민우진(최웅) 사이에 살랑살랑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온다. 처음 만나던 그 날도 왠지 봄바람이 심상찮게 불었더랬다. 등에 멘 가방이 열려 지갑과 소지품들이 줄줄이 떨어지는데, 이어폰을 꽂은 우진은 전혀 모른 채 앞으로만 걸어가고 있었다. 불러도 듣지 못하는 청년이 안타까운 동옥은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을 주워서는 우진의 앞으로 달려가 건네주었다. 사례를 하겠다며 돈을 내미는 우진에게 동옥은 해맑은 표정으로 말했다. "고마우면 그냥 고맙습니다, 하면 돼요!"

 

 

그 말 한 마디를 남긴 채 돌아서 가버리는 동옥의 뒷모습을 우진은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 동옥의 어린 조카 동원이(최권수)가 음식점에서 떡을 먹다가 목에 걸려 질식할 뻔했을 때, 마침 그 곁에 있었던 우진은 재빠른 응급처치로 아이를 구해냈다. 동원이를 괴롭히는 나쁜 사람인 줄 알고 막 때리다가 무안한 표정이 되어버린 동옥에게 우진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고마우면 그냥 고맙습니다, 하면 돼요!" 우연처럼 계속되는 만남... 어린 동주(홍화리)를 데리고 목욕탕에 갔다가 나올 때, 문 앞에서 그들은 또 마주쳤다. "어, 예쁜 누나네!" 우진은 굳이 동옥에게 두유를 얻어 마셨다.

 

"널보고 예쁘다카고, 잘 웃어주고, 머를 자꾸 사줄라카고, 자꾸 말을 붙일라카고, 손도 잡을라카고...그런 놈들하고는 절대로 같이 놀면 안 된다. 그런 놈들은 다 나쁘고 숭악한 놈들이다! 그런 놈들 보면 무조건 도망치서 집에 오든가 아니면 동희(옥택연)한테 가서 일러바치라! 알았나?" 예쁜 얼굴에 정신이 온전치 못한 딸자식을 키우려니 어미 장소심(윤여정)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행히 동옥은 어미의 말을 참 잘 들었다. 남자들이 조금이라도 추근대려하면 곧장 집으로 도망오거나 동희에게 뛰어갔다. 수작을 걸다간 동생 동희에게 박살난다는 소문이 나서 동네 남자들은 감히 동옥을 향해 웃지도 못했다.

 

 

 

그렇게 동옥의 나이도 이제 3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싱그럽게 꽃필 나이도 속절없이 보내버린 채 이제 몸은 늙어가고 있지만 그녀의 머릿속은 "사는 게 왜 힘드나, 엄마? 나는 안 힘든데..." 하면서 사는 게 왜 힘든지도 모르고 해맑게 웃는 일곱 살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었다. 엄마와 삼촌과 오빠와 동생들 모두 그녀를 끔찍이 위하니, 평생 그렇게 힘든 줄 모르고 평온히 살다 가는 것도 나름 괜찮았을 수는 있다. 하지만 동옥에게는 또 다른 인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동네 사람이 아니라선지 동희 무서운 줄도 모르고 겁 없이 동옥에게 다가서는, 소년같은 미소를 지닌 남자 우진이었다.

 

잘 웃어주고 자꾸 말을 붙이려 하는 우진의 존재가 동옥은 계속 신경쓰인다. "엄마, 처음 본 사람하고는 같이 놀면 안 된다면서요? 그럼 세 번 본 사람은요?" 우진과 세번째 마주친 후, 동옥은 설레는 맘으로 어미에게 물었다. "세 번 봐서 사람을 어찌 알겠나. 열 번은 봐야지!" 어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데 마침 보건소 의사쌤이 할아버지한테 왕진을 왔다. 그런데 의사쌤의 뒤쪽에 서 있는 청년은 바로 '세 번 만났던' 그 사람이 아닌가! 깜짝 놀란 동옥은 빨래를 밟다가 뒤로 넘어질 뻔하는데 그가 달려와 붙잡아 준다. 참 이상하다. 어째서 쿵쾅쿵쾅 가슴이 뛰는 것일까? 

 

 

우진은 동옥에게 친누나의 제삿상 차리는 것을 도와달라 부탁하고, 동옥은 엄마에게서 배운 솜씨로 멋들어지게 상을 차려낸다. 우진은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는 길에 누나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동옥이 물었다. "(지금도) 슬퍼요?" 우진이 대답했다. "조금요." 동옥이 묻는다. "손 잡아 줄까요?" 우진이 그녀를 바라본다. "나는 슬플 때 엄마나 가족들하고 손 잡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동옥이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다시 묻는다. "어때요?" 우진의 입가에 소년같은 미소가 떠오른다. "정말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이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다. 나쁜 사람 아이다. 너는 왜 누나를 자꾸 바보 취급하나? 누나도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는 알아볼 수 있다!" 누나가 걱정되는 동희는 자꾸만 누나에게 다가서는 우진을 경계하며 주먹을 휘두르려 하는데, 마냥 순하기만 하던 누나가 버럭 화를 낸다. 그게 시작이었다. 사랑의 설렘을 알게 되면서, 동옥은 생전 처음으로 사는 게 힘들어졌다. "엄마, 나는 왜 바보가 됐어요? 어렸을 때는 내가 동석이(이서진)보다 더 똑똑했다면서요? 그런데 나는 왜 바보가 됐어요?" 남들이 바보라고 놀려도 엄마만 아니라고 하면 괜찮던 그녀였다. 하지만 이제 남들의 시선이 슬퍼졌다.

 

 

 

언제부턴가 그 사람만 보면 속상해졌다. 바보가 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이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자기는 바보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자꾸자꾸 생각이 난다. 바느질을 할 때도 빨래를 할 때도 잠자려고 할 때도 생각이 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진이 말했다. "누나가 좋아요. 처음부터 좋았고 계속 좋았고 지금도 좋아요. 앞으로도 계속 좋아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좋으니까 좋아하고 싶어요. 내가 좋으니까 그냥 좋아할래요!" 정말 소년같은 고백이었다. 소년 우진의 고백에 소녀 동옥의 마음이 콩닥거린다.

 

우진은 누나 곁에서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동희에게까지 자기 마음을 털어놓으며 동옥과의 만남을 정식으로 추진하고, 고백을 들은 후 왠지 모르게 수줍어진 동옥은 동희의 등 뒤로 숨어버린다. 왠지 너무나 부끄러워서 그 사람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꼭 기절해버릴 것만 같다. 그렇게 어른이 된 소년과 소녀의 사랑은 시작된다. 열 몇 살 진짜 소년 소녀의 사랑보다 더 풋풋하고 아름답게... 부디 두 사람의 앞날에 가시밭길이 아니라 비단길이 놓여 있기를, 그 사랑의 끝도 시작처럼 아름답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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