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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김희애-유아인, 치명적인 사랑의 유혹, 그러나... 본문

드라마를 보다

'밀회' 김희애-유아인, 치명적인 사랑의 유혹, 그러나...

빛무리~ 2014. 4. 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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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오혜원(김희애)의 삶에 순수란 없었다. 오직 생존을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 있었을 뿐이다. 그녀라고 처음부터 그렇게 살고 싶었던 것은 아닐진대, 왜 그래야만 했는지는 설명되지 않았다.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초라하게 살고 싶지 않은 자신의 욕망 때문이었는지, 음대 재학 시절 촉망받는 피아니스트 재원이었던 오혜원은 건초염 악화로 꿈을 접으면서부터 예고 동창 서영우(김혜은)에게 달라붙어 그 집안의 시녀가 되었다. 서한그룹 회장인 아버지 그늘에서 보호받으며 안하무인으로 살아 온 서영우는 걸핏하면 오혜원의 뺨까지 때리면서 모욕하지만, 그런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받아 넘길 만큼 혜원의 가슴은 무디어진지 오래다. 상처받기 쉬웠던 예술가의 여린 감성은 어느 새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오혜원의 공식적 직함은 '서한예술재단 기획실장'이며 연봉은 1억에 달한다. 남편 강준형(박혁권)은 서한음대 교수이고, 집안에는 방음 시설이 잘 갖취진 피아노 연습실이 마련되어 있으며, 입주 도우미까지 고용하고 있으니 겉보기에는 매우 럭셔리하고 폼나는 삶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허울좋은 기획실장 오혜원의 실제 업무는 서영우와 그 계모 한성숙(심혜진)의 더러운 밑 닦아주기에 지나지 않는다. 오혜원은 호스티스 출신 한성숙을 치밀하게 코치하여 귀부인으로 거듭나게 했고, 현재는 비자금 유용에 쓰이는 비밀 장부까지 관리해 주고 있다. 돈으로 어린 남자 애인을 사들여 수시로 쾌락을 즐기는 서영우를 컨트롤하는 것도 오혜원의 몫이다. 그런 일상에 젖어들다 보니 이제는 역겨움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강준형은 과거 서영우의 수많은 남자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서영우가 정략 결혼을 하면서 자연스레 정리되었고, 마치 당연한 수순인 것처럼 영우의 시녀 혜원과 결혼했다. 원래 특별한 재능이 있는 남자는 아니었지만, 혜원의 전략적 내조에 힘입어 잘 나가는 음대 교수가 되었다. 그렇다 보니 실력파 동료 교수 조인서(박종훈)에게 뿌리깊은 열등감과 경쟁의식을 느끼는데, 마침 조인서의 수제자인 지민우(신지호)가 천재적인 두각을 드러내며 스승의 빛을 밝혀주자 미칠듯한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게다가 한성숙의 압력을 받아 부족한 실력의 정유라(진보라)를 특별전형으로 입학시키면서 강준형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어떻게든 쓸만한 놈 하나 찾아내어 진짜 실력을 보여줘야 할 필요성이 절실한 그 때, 이선재(유아인)가 나타났다.

 

이 녀석, 괴물이다. 어렸을 때 동네 학원에서 바이엘 정도 배운 것이 전부라는데, 악보도 제대로 볼 줄 모르면서 몇 번 듣기만 하면 고난이도의 연주곡들을 아찔하도록 멋지게 쳐낸다. 조인서와 지민우의 연탄곡을 듣고 즉시 외워서는 싱글 연주곡으로 변형시켜 몰래 치는데, 듣는 사람 모두 속아 넘어갔다. 실력파 음대 교수와 수제자의 명품 연주를 스무 살 퀵 서비스 배달원이 혼자 너끈히 소화해낸 것이다. 게다가 이 녀석의 순진무구한 눈빛은 자기가 얼마나 엄청난 것을 지니고 있는지도 전혀 모르는 듯하다. 아싸, 심봤다. 들뜬 강준형은 이선재를 집으로 불러 인재 발굴 전문가인 아내 오혜원에게 소개시킨다. 아내의 인증까지 얻으면 더 망설일 것도 없이 제자로 삼아 지민우의 대항마로 키워낼 참이다. 간만에 조인서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기회였다.

 

 

그러나 혜원과 선재가 첫 만남을 가진 피아노 연습실에는 생각지도 않은 치명적 독향이 가득했다. 어색함에 쭈뼛거리던 이선재는 차츰 음악에 젖어들며 신들린 피아노 연주를 이어갔고, 오혜원은 아주 오랫동안 숨 죽인 채 그 곁에서 연주를 들었다. 그 아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연주에 귀 기울이고 어떻게 사는지를 물어본 것은 남편의 제자로 삼을만한 재목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피아노 건반에 손을 얹고 슈베르트의 판타지아를 연주하는 순간, 정체 모를 위험한 기류가 그들의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숨결과 몸짓과 리듬이 절묘한 조화를 이룰 때, 그 짜릿한 일치의 황홀감을 먼저 느낀 쪽은 스무 살 예민한 감성의 이선재였다. 마흔 살 오혜원의 무디어진 감성은 그토록 빨리 반응하지 않았다.

 

"저는 그 날 다시 태어난 거나 마찬가지예요. 제 영혼이 거듭난 거죠!" 며칠 후 혜원을 다시 만난 선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당돌한 사랑 고백에 다름 아니었다. 혜원은 잠시 당황했지만 익명의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던 '나천재'가 바로 선재임을 알게 되고, 그 고백이 더없이 순수한 진심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마음이 흔들린다. 갑작스런 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방황하는 선재에게 피아니스트 리흐테르의 책을 선물하며 돌아오기를 권한 것도 혜원이었다. 다시 찾아온 선재와 집 앞에서 마주쳤을 때, 나른히 취해 있던 혜원은 그의 뺨을 토닥이며 말했다. "저런... 아직 많이 힘들구나!" 하지만 스무 살 청춘의 열병같은 사랑은 가벼운 스킨쉽에도 더 이상 억눌려 있지 못하고 화산처럼 폭발해 버렸다.

 

 

"하지 마세요... 내가... 돌아버리잖아요!" 선재는 무쇠처럼 단단한 팔로 혜원을 감싸안고 폭풍같은 키스를 퍼붓는다. 흠칫 놀라 거부하던 혜원도 불가항력적으로 그의 팔과 입술에 녹아들고... 치명적인 밀회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무리 밀어내고 거부하려 해도 혜원의 가슴에는 이미 선재가 커다랗게 자리잡아 버렸고, 첫사랑의 감미로움에 푹 빠진 선재의 머릿속에는 밀어내거나 거부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떠오르질 않았던 것이다. 혜원의 냉정한 거부에 상처받은 선재는 사고를 쳐서 유치장에 갇히게 되고, 선재 여자친구 다미(경수진)를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된 혜원은 남편 강준형을 내세워 선재를 구해낸다. 선재를 꼭 제자로 삼고 싶은 강준형은 그를 다시 집으로 데려오는데, 아내와 그 애송이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를 어찌 상상이나 했을까?

 

스무 살의 거침없는 사랑은 그녀의 남편이 있는 집에서도 표현을 멈추지 못한다. "그 날... 저한테 왜 화내셨어요? 어떻게 기억이 안 나세요?" 다짜고짜 날리는 돌직구에 혜원이 놀란다. "넌 생각이 없니?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사니?" 언제나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분노와 눈물을 삼키며 거짓 웃음으로 살아 온 혜원에게는 속마음을 여과 없이 그대로 표현하는 선재의 모습이 충격이었다. 하지만 선재는 그녀처럼 마음을 숨기는 방법을 익히지 못했다. "저는 너무 헷갈려요. 선생님은 제가 가장 힘들었을 때 다시 피아노를 치라고 권하셨고, 제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읽어주셨어요. 그거 진짜 셌어요. 남자는 그럴 때 키스해요. 그걸... 받아주셨잖아요!" 혜원의 말문이 막히고 만다.

 

 

강준형은 훌륭한 제자를 맞이했다는 기쁨에 술 몇 잔을 기울이더니 일찌감치 골아 떨어지고 또 단 둘이 남았다. 선재는 혜원과 준형의 부부관계에 당돌한 질투심을 드러내고, 엉겁결에 이어진 또 한 차례의 키스... 그대로 돌아 나가려는 혜원을 선재는 백허그로 붙잡으며 자신의 연주를 들어달라고 한다. 자유자재로 피아노를 갖고 노는 선재의 연주에 차츰 빨려들어간 혜원은 어느 새 그의 옆에 앉아 건반에 함께 손을 얹고 있었다. 물 만난 고기처럼 뛰노는 스무 개의 손가락, 심장 박동을 저절로 빨라지게 하는 경쾌하고도 현란한 멜로디, 틈틈이 건반 위에서 서로의 손을 터치하고 눈빛과 미소를 교환하며 연주가 이어지는 동안 그들의 영혼은 이미 하나였다. 불륜이라면 명확한 불륜인데 이토록 아찔한 매혹이라니!

 

혼이 실린 연주를 마치고 땀에 흠뻑 젖은 몸으로 두 사람은 얼싸안는다. "한 번 더 해요!" 아이처럼 보채는 선재를 혜원이 달랜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러나 두 사람의 위험한 연주는 이제부터 시작인 것을 어쩌랴! 더 이상 강준형의 집에 머물 수 없음을 느낀 선재는 자신의 자취방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너무 좋아하면 다 들키지 않나요? 좀 비겁하더라도 끝까지 들키지 않으려고요!" 혜원이 대답한다. "좋은 생각이야!" 두 사람 모두 여기까지가 가장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더 이상 선을 넘으면 그 때부터는 감미로운 행복이 아니라 끔찍한 고통이 시작된다는 것을, 선재는 어렴풋이 혜원은 뼈저리게 예감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든 여기서 멈추려고 발버둥치지만, 이미 그들의 발은 늪에 빠져들고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불륜을 미화할 수는 없다. 비록 사랑하지 않는 남편과 결혼해서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왔다 해도, 그것은 오혜원 자신의 결정이었으므로 끝까지 책임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의 주인공들보다 더 간절히, 그들의 관계가 이쯤에서 멈추기를 소망한다. 인간의 나약한 마음이 흔들리는 것조차 죄악이라면 그건 너무 가혹하니까, 극한의 인내심으로 절제할 수만 있다면 그들의 사랑은 죄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두 번의 키스는 실수였다 치고 더 이상은 하지 말고, 스승과 제자 사이에 허용될 수 있는 정도의 가벼운 포옹만 가끔씩 하고, 음악을 통한 영혼의 일치 속에서만 행복을 느끼면서, 그렇게 세대를 초월한 좋은 친구로 살아간다면 끝까지 아름다울 수도 있지 않을까? 어차피 불 같은 열정이야 찰나에 지나가 버리는 것을.

 

하지만 드라마의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나의 간절한 소망은 욕심에 불과할 것이다. 나는 혜원과 선재의 마음을 이해하며 공감한다. 각박하고 메마른 삶에 지쳐있던 혜원에게 선재의 순수한 사랑은 한 줄기 청량한 샘물이었다. 누구와도 영혼의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살아왔던 선재에게 혜원의 존재는 한 줄기 빛이었다. 그들이 서로에게 끌리며 빠져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브레이크 없는 차량이 치명적인 사고를 불러오듯, 절제 없는 삶은 반드시 치명적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었던 사랑을 무절제 때문에 망가뜨리고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 것일까? 혜원과 선재의 사랑에 공감하면 할수록 내 가슴은 더욱 아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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