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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 허지웅, 사마천 발언이 거북한 이유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마녀사냥' 허지웅, 사마천 발언이 거북한 이유

빛무리~ 2014. 5. 25.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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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실시간 인기 검색어에 느닷없이 '사마천'이라는 이름이 떠 있기에 클릭하여 관련 기사들을 살펴보았다. 내용인즉 JTBC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에 포미닛 멤버 허가윤이 출연했는데, 남자친구가 있느냐고 MC 성시경이 질문하자 곧바로 "없다"고 대답했다. "대답이 너무 빨리 나와서 오히려 수상하다"고 말하자, 허가윤은 억울한 표정으로 패널 중의 허지웅을 가리키며 "사람들이 나보고 저 오빠 같다고 말을 한다. 이를테면 나는 여자 사마천이다!"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당시엔 아직 '마녀사냥'의 해당 방송분이 전파를 타기 전이었음에도 그 발언은 일파만파 화제가 되고 있었다.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허지웅이라는 사람에 대해 전혀 몰랐는데, 최근 옥소리 관련 발언으로 너무 세상이 시끄럽기에 비로소 아주 약간 알게 되었다. 젊은 영화평론가로서 '썰전'이나 '마녀사냥' 등 케이블 프로그램에서 입담을 과시하고 있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입담 중에 허지웅은 자신을 '사마천' 같은 캐릭터라고 표현하면서, 자기는 정말 성욕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게 재미있다고 느낀 사람들은 '무성욕자=사마천'의 공식을 적용하여 농담을 하기 시작했고, 허가윤 역시 남자친구 없음을 강하게 말하기 위해 자신을 '여자 사마천'이라고 표현했다는 것이다.

 

나이 어린 허가윤의 발언은 단순히 따라한 것에 불과하니 그렇다 치더라도, 맨 처음 그런 식의 표현을 내뱉은 허지웅의 발언에는 솔직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사마천은 '중국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전한시대의 역사가이다. 그가 저술한 사기(史記)는 중국 최초의 통사(通史)로서, 기록의 정확성 및 문체와 인물 묘사의 뛰어남 등으로 고금을 통틀어 널리 칭송받는 책이다. 사마천은 정확한 역사의 기록을 위해 중국 각지를 여행하며 자료를 수집했고, 평생 수십 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불세출의 역작 '사기'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마천의 나이 48세 되던 해 끔찍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중국의 통치자는 한무제로서 흉노와의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인데, 용맹한 장수 이릉(李陵)이 불과 5천의 군사를 이끌고 8만의 흉노 주력군과 맞서다가 항복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릉의 군대는 흉노군 1만 명 이상을 베어 큰 타격을 입혔으나 결국은 중과부적으로 패색이 짙어졌고, 이릉은 남은 군사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투항을 결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무제는 이릉의 항복에 분노했고, 조정 대신들 역시 큰 벌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때 한무제 앞에서 이릉의 입장을 변호한 사람은 오직 사마천 뿐이었다고 한다. 이릉과는 특별한 친분도 없는 사이였으나, 그는 사관(史官)의 공정한 시각과 정의로운 기개로써 소신을 밝혔던 것이다. 그러나 사마천의 직언에 더욱 분노한 한무제는 궁형(宮刑)이라는 치욕스런 형벌을 내리기에 이른다. 궁형이란 인간의 생식 기능을 없애는 벌로서, 남자의 경우는 (생식기를) 잘라내고 여자의 경우는 유폐하는 방식을 사용했다고 한다. 지극히 잔혹하여 사형에 버금가는 중벌이었다. 

 

 

궁형을 받게 되면 신체적 손상으로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많거니와, 정신적 충격과 굴욕감을 이기지 못해 자결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목숨을 부지했다 해도 궁형을 당한 사람은 더 이상 인간 취급을 못 받고 천시되니, 어쩌면 죽음보다 더 끔찍한 형벌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마천 역시 형을 당한 이후 사무치는 굴욕감으로 수차례나 자결의 충동에 시달렸지만, 꿋꿋이 살아남은 이유는 인생의 목표로 삼은 역사서 저술을 완성하고자 함이었다. "진실로 이 책을 저술하여 명산(名山)에 보관하였다가 내 뜻을 알아줄 사람에게 전하여 촌락과 도시에 유통되게 한다면 이전에 받은 치욕을 보상할 수 있을 것이니, 비록 만 번 주륙을 당한다 해도 어찌 후회가 있겠습니까?" - 사마천, '임안에게 보낸 편지’(報任安書) 중에서 -

 

사마천은 이처럼 숭고한 인물일진대, 그의 이름을 '무성욕자'의 대명사로 만들어 조롱하는 행위를 어찌 용납할 수 있을까? 무성욕자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특징을 표현하는 데 사마천의 이름을 이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뜻이다. 세인들이 마땅히 사마천의 이름과 함께 떠올려야 하는 것은 불멸의 역사서인 '사기'와 그의 영웅적 삶인데, 하필 '궁형을 받아 거세당한 남자'라는 특징만을 앞세워 위대한 업적들을 가려지게 하는 행위는 비열하게 느껴진다. 더욱이 궁형의 참혹함과 피해자의 억울한 고통을 생각해 본다면 "나는 성욕이 없으니까 사마천과 같다"라는 발언을 어찌 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허지웅의 내면에는 성욕없음을 핑계로 자신을 사마천과 같은 훌륭한 글쟁이에 비유함으로써 만족감을 느끼고 싶은 생각이 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허지웅도 어쨌든 글 쓰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제멋대로 찍어다 붙인 농담의 결과는 결코 아름답지 못하였다. 위대한 역사가는 하루아침에 무성욕자의 대명사가 되었고, 궁형의 끔찍한 피해는 온통 낄낄대는 웃음 속에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수천 년 전에 죽은 사마천의 입장을 생각해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 더 이상의 경박함은 절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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