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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휘슬러 '화가의 어머니'는 어떻게 대중의 공감을 얻었을까?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제임스 휘슬러 '화가의 어머니'는 어떻게 대중의 공감을 얻었을까?

빛무리~ 2014. 5. 1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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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지닌 감정 중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것을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어머니의 사랑'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감정이며 매우 보편적인 것이기도 하다. 마더 테레사나 슈바이처 박사처럼 수많은 타인을 위해 자기 인생을 바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자기 자식을 위해 인생을 바치는 '어머니'는 세상 어디에서나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어머니의 사랑'은 인간의 개성 만큼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며, 때로는 잘못된 사랑의 방식으로 자식에게 악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어떤 것이 올바른 사랑의 방식인지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그 당시에는 잘못된 것 같았지만 먼 훗날 돌이켜 보면 올바른 방식이었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제임스 휘슬러는 미국 출신으로 유럽에서 활동했던 19세기의 대표적 화가이다. 그는 인상파의 선구자 중 한 사람으로서 모네, 마네 등 인상파 화가들과 깊은 친교를 맺었고, 오스카 와일드 등의 문인들과도 친밀하게 교류했다. 만년에는 영국미술가협회 회장으로도 있었다. 그런데 후세에 이처럼 위대한 화가로서의 명성을 남긴 제임스 휘슬러가 원래 꿈꾸던 인생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고 한다. 그가 어렸을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채 성장한 휘슬러는 자신도 아버지처럼 훌륭한 군인이 되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어머니 몰래 미국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3년이나 다녔던 것은 오직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시도였다. 하지만 3년 후 그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의 극렬한 반대로 휘슬러의 꿈은 좌절되고 말았다.

 

제임스 휘슬러와 그의 어머니 이야기는 5월 18일자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 방송되었다. 어린 제임스에게서 화가의 재능을 발견한 어머니 안나 휘슬러는 제임스를 위대한 화가로 키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남편 없이 혼자 아들을 키우는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어린 제임스를 러시아의 황실미술학교에 입학시켰고, 사관학교에서 강제로 자퇴시킨 후에는 다시 등 떠밀어 파리로 유학을 보냈던 것이다. 제임스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파리에서 그림 공부를 계속했지만, 그의 작품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투박하다는 혹평을 받으며 실력없는 만년지망생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견디다 못한 제임스는 영국 런던으로 도망치는데, 그 곳에서 아름다운 뮤즈를 만나게 된다.

 

 

 

17세 소녀 조안나 히퍼넌에게 첫눈에 반한 휘슬러는 그녀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미지를 더없이 순수하고 깨끗하게 본 휘슬러는 흰 옷을 입은 조안나를 모델로 '흰색 교향곡' 시리즈를 그려 프랑스 파리 살롱전에 출품한다. 하지만 '흰색 교향곡' 연작은 화단의 혹평을 받게 되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흰색은 바탕칠을 하는 데만 사용되었을 뿐 그림의 주요 색깔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패를 거듭하던 중 제임스의 어머니 안나 휘슬러가 영국까지 쫓아왔다. 어머니의 등쌀에 못 이긴 제임스는 조안나와 이별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사실은 조안나가 휘슬러의 동료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의 요청을 받고 누드화의 모델을 했던 것이 결별의 더 큰 이유였다고 한다.)

 

휘슬러의 어머니는 자신이 보는 앞에서 직접 그림을 그려 보라며 아들 앞에 스스로 모델이 되었다. 숨쉴 틈 없이 자신을 압박하는 어머니의 교육 방식에 일찍부터 염증을 느끼고 있던 휘슬러는 그 증오심을 담아 한 편의 그림을 4주만에 완성했다. 그림에 휘슬러가 스스로 붙인 제목은 '회색과 검정색의 조화'였다. 모델인 어머니를 부각시키지 않고 회색과 검정색의 배열이나 감상하라는 시니컬한 뜻이었다. 휘슬러는 조안나를 그릴 때 사용했던 흰색의 밝고 화사한 느낌을 좋아했으며, 검은색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작품이 영국 왕립미술아카데미에 출품 전시되자 엄청난 호평이 쏟아졌다. 작품을 본 사람들은 저마다 그림 속 여인에게서 자신의 어머니가 느껴진다며 눈물지었던 것이다.

 

 

 

제목과 상관없이 사람들은 그 작품을 '화가의 어머니'라 불렀고, 제임스 휘슬러는 '화가의 어머니'를 통해 일약 유럽 최고의 화가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화가의 어머니'가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휘슬러의 예전 작품들까지도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흰색을 주요 색채로 썼다 하여 혹평받던 '흰색 교향곡' 시리즈가, 흰색의 가치를 새롭게 부각시킨 혁신적 작품으로 재조명 받게 된 것이다. 이처럼 휘슬러의 인생을 바꾼 '화가의 어머니'는 그의 사후까지도 20세기 문화 예술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1934년에는 미국의 제1회 어머니날을 기념하는 우표로 제작되었다.

 

'낡고 검은 드레스를 입은 어머니의 모습이 청교도적인 신앙심과 검소한 미덕을 잘 표현했다'고 '서프라이즈' 제작진은 간략한 자막을 넣어 설명했지만, 수많은 사람의 가슴에 뜨거운 공감을 불러일으킨 이유가 단지 그것 때문이었을까? 휘슬러 이전의 화가들은 자신의 어머니를 표현할 때 매우 온화하고 성스러운 여인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폭넓은 대중의 공감을 얻어낸 작품은 어머니를 아주 딱딱하고 권위적인 모습으로 표현한 휘슬러의 그림이었다. 그렇다면 현실 속에서는 온화하고 따스한 모습의 어머니보다 권위적이고 딱딱한 모습의 어머니가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가난한 환경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어렵게 키워내다 보면, 자연히 미소짓는 날보다는 야단치는 날이 많았을 것이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런 저런 강요를 하면서 괴롭히기도 했을 것이다. 아이의 꿈을 존중해 주고 항상 웃으며 이해하고 포용하는, 그런 어머니가 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기본적 삶의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는 웃음도 포용도 모두 사치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지는 법이니까... 어렸을 때는 그런 어머니를 원망하고 미워했지만, 자식들도 성장한 후에는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낡고 검은 옷을 입고 밤낮으로 일하며 엷은 미소조차 지을 수 없을 만큼 퍽퍽한 삶 속에서도 어머니가 얼마나 자기를 깊이 사랑했는지 뒤늦게서야 절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제임스 휘슬러의 '화가의 어머니'가 '어머니의 모습을 담은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되며 수많은 영화와 예술 작품에 인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현실 속 어머니의 모습은 백여년 전 그 당시와 현재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머니'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모습은 여유롭고 온화하게 미소짓는 얼굴보다는 삶의 고단함이 가득 묻은 채 웃음기 없는 얼굴로 의자에 기대앉은 모습인 것이다. 어쩌면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요즘 아이들도 자기 엄마를 생각할 때면 '잔소리'와 '강요'부터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릴지 모른다. 그 잔소리가 얼마나 큰 사랑인지, 대수롭지 않게 매달 받아가는 학원비가 얼마나 큰 희생인지를 아직은 모를 테니까. 물론 잔소리하고 강요하는 방식의 사랑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휘슬러의 경우를 봐도 그렇듯, 어떠한 사랑의 방식이 옳은지는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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