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세바퀴' 아부다드를 향한 감사와 미안한 마음 본문
지난 주에 방송된 '세바퀴 - 글로벌 특집'을 뒤늦게 시청했다. 출연자들은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거나 또는 한국의 문화를 자신의 나라에 전파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외국인들이었다. 라이언 케시디(캐나다), 후지이 미나(일본), 장 세바스티앙(프랑스), 브래드(미국, 버스커버스커), 파비앙(프랑스), 아부다드(가나), 로버트 할리(하일, 미국)는 저마다의 특기를 뽐내며 남다른 한국 사랑을 자부했다. 이미 연예인으로서 이름을 알린 사람들도 있었지만, 푸른 눈의 판소리 명인 라이언 캐시디와 프랑스 택견 고수 장 세바스티앙과 의학 엘리트 아부다드는 약간 생소했는데, 외국인으로서 한국을 깊이 사랑해주는 마음들은 한결같이 고마웠다.
그 중에도 한양대학교 의생명공학 박사과정이라는 가나 청년 아부다드는 아주 특별한 인상을 남겼다. 그가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어린 시절부터였다고 한다. 전세계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한국의 현실에도 관심이 갔지만,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은 놀라운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과 가나의 경제 수준은 엇비슷했는데,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비교하기 힘들 만큼 격차가 벌어진 것을 보며 "왜 한국은 되는데 가나는 안 될까?"라는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아부다드는 의사 중에서도 심장외과 전문의가 되고 싶다고 했다. 가나에는 유달리 심장병 환자들이 많고, 아부다드의 부친 역시 심장병으로 일찍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심장 전문의는 턱없이 부족해서 몇몇 외국인 의사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현실이었다. 그러니 훌륭한 심장 전문의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 많은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것이 아부다드의 꿈이었다. 의과대학 합격 통지서는 중국과 스웨덴에서 먼저 날아왔다. 한국으로 보낸 지원서에는 한참이나 답장이 없더니만, 스웨덴행 비행기표까지 끊어놓은 상태에서 뒤늦은 합격 통지서가 도착했다. 주변 사람들은 스웨덴을 권했지만, 아부다드는 고집스레 한국을 선택했다.
그렇게 부푼 꿈을 안고 한국에 왔으나 아부다드를 맞이한 것은 어처구니 없는 홀대였다. 사전의 약속과 달리 의과대학에 곧바로 입학시켜 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좌절의 순간 고향으로 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 이미 스웨덴이나 중국행은 무산된 상황이었다. "우선 최대한 빨리 언어를 익혀보자. 의사소통이 잘 되면, 나를 도와줄 좋은 사람들도 곧 만나게 될 거야!" 아부다드는 꾸준히 노력했고, 그의 믿음과 희망은 헛되지 않았다. "참 좋은 사람들, 고마운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이제 그에겐 고향에 계신 친엄마뿐 아니라 이 차갑고 낯선 땅에서 따스한 품을 내어주신 '한국 엄마'도 생겼다.
하지만 시련은 끝없이 닥쳐왔다. 검은 피부에 대한 한국인들의 편견과 선입견이 예상보다 매우 견고했던 것이다. 하다 못해 길을 물어볼 때도, 아부다드에게는 모른다고 고개만 젓던 사람이 바로 뒤에 오던 백인에게는 친절히 가르쳐 주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좀처럼 진로가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아부다드는 공부를 마친 후에도 한국의 대학병원에 남아 상당 기간 동안 근무하며 풍부한 경험을 쌓고 싶어했는데, 도통 그를 받아주는 대학이 없었던 것이다. 우수한 성적표와 교수의 추천서까지 내밀어도 소용이 없었다. 전화 통화에서는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다가도, 얼굴을 마주하게 되면 사람들의 표정은 확 바뀌곤 했다.
혹시나 해서 똑같은 서류들로 호주 멜버른 대학에 지원해 보았더니, 경쟁이 매우 치열했음에도 국비 장학생으로 합격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부다드는 기뻤지만 포기하려고 했다. 어떻게든 한국에서 꿈을 펼치고 싶었고, 정든 한국 엄마와 친구들을 떠나기도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엄마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멜버른행을 권했다. "여기서는 그렇게 오랫동안 노력했는데도 안 됐잖아. 모처럼 좋은 기회를 붙잡았는데 놓칠 수는 없지. 다드야, 꼭 가야 해!" 검은 피부의 아들은 엄마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세바퀴' 녹화를 마치고 호주행 비행기에 오르면 향후 8년 동안은 그 곳에 머물게 될 거라고 아부다드는 말했다.
여성 출연자들을 대상으로 인기 투표를 실시한 결과 우승은 아부다드에게 돌아갔다. 결승전에서 프랑스 꽃미남 파비앙을 제치고 얻어낸 놀라운(?) 결과였다. 사실 별 것도 아닌데, 너무나 기쁘고 감동적이라면서 목 멘 소리로 인사하는 아부다드를 보니 살짝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호주에 가면 제일 먼저 그 곳에 있는 한국 사람들을 만날 거예요. 그 사람들과 계속 만나면서, 절대로 한국 말을 안 잊어버릴 거예요!" 착한 다드... 한국인들로부터 그렇게 많은 상처를 받고 거듭된 좌절을 겪었는데도, 급기야 한국에서 꿈을 펼치지 못하고 머나먼 호주로 떠나게 되었는데도, 그 마음속에 간직한 것은 원망과 미움이 아니라 사랑과 그리움뿐이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는 아부다드를 향한 감사와 미안한 마음이 아프게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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