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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편집'을 더 이상 허용할 수 없는 이유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악마의 편집'을 더 이상 허용할 수 없는 이유

빛무리~ 2014. 3. 6.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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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애정촌'의 촬영 일정 중 숙소 화장실에서 자살한 일반인 여성 출연자의 유서 내용 일부가 공개되었다. 사랑했던 사람들과 부모님에게 미안하다는 내용, 그 동안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버라이어티한 자신의 인생을 이쯤에서 끝내고 싶다는 내용, 그리고 애정촌에 와 있는 동안 제작진에게 많은 배려를 받아서 고마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자세히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애정촌에서 만난 사람 중 호감가는 남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내용도 언급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유서의 내용을 보면 사망의 이유는 원래부터 갖고 있던 고통에서 비롯된 부분이 크며, 애정촌에서의 생활은 이제껏 방송으로 공개되었던 다른 기수 출연자들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성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가 단기간에 최대치로 증폭될 수 있는 상황이긴 했어도, 특별히 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난지 하루가 지난 시점, 고인의 친구들과 인터뷰를 가진 한 매체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제주도 촬영에 합류하기 전, 고인은 부담을 호소하며 출연을 취소할 수 없느냐고 제작진에게 물었다. 하지만 이미 비행기 티켓팅을 마쳤다는 작가의 말에 결국 합류하게 되었고, 많이 힘들어했지만 무리한 진행에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런데 작년 말에 남자친구와 헤어진 사실을 말했기 때문인지 제작진은 고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듯했고, 애정촌 내부에서 이성과의 만남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자 고인을 '비련의 여주인공' 또는 '버림받은 어린 양'처럼 만들려고 하는 듯했다. 심지어 울기를 바라는 것 같았는데, 울지 않고 씩씩하니 당황스러워했다." 친구들은 이러한 증언을 통해, 제작진이 고인에게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기사 전문 보기 클릭)

 

친구들의 증언에 상당부분 믿음이 가는 이유는 그 동안 '짝 애정촌'에서 종종 출연자들의 눈물을 클로즈업하며 '악마의 편집'을 해 왔기 때문이다. '악마의 편집'이라는 단어를 처음 유행시킨 프로그램은 오디션 예능 '슈퍼스타K'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슈퍼스타K' 참가자들이 상당 기간 동안 숙식을 함께 하며 오디션 준비를 하는 과정은 모두 생생히 카메라에 담겨지는데, 제작진은 그 촬영 분량 중 가장 자극적인 부분들만 교묘히 잘라내고 짜깁기하여 방송에 내보냈다. 자극적인 부분이란 주로 참가자들이 힘겨워하며 울음을 터뜨리거나 자기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화를 내는 모습들이었다. 좋은 모습보다는 안 좋게 보이는 모습들이 많았기에, 방송 이후 출연자들은 많은 비난과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슈퍼스타K' 시즌2에서는 김그림, 시즌3에서는 신지수, 시즌4에서는 이지혜가 대표적인 '악마의 편집' 희생양으로 지목되었다. 김그림과 신지수는 20대 초반 여성이었고 이지혜는 10대 여고생이었다. 그들의 모습은 지극히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며 무례해 보였기에,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순식간에 엄청난 질타를 쏟아냈다. 하지만 당하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어찌 억울함이 없었으랴?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입을 모아 어린 여자아이 한 명을 천하에 몹쓸×으로 만드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쉬운 일이었지만, 브라운관에 비춰진 모습만이 그들의 전부는 아니었다. 사람이 어떤 말과 행동을 하기까지는 전후의 사정이 있는 법이고, 피치 못할 개인적 이유들도 있을 수 있으며, 일시적으로 이기적인 모습을 보였더라도 사실은 배려심이 깊은 사람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슈퍼스타K' 제작진은 전후의 사정을 말끔히 잘라내고 가장 뾰족한 모습들만 골라 편집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나오는 방송은 결코 자연스런 실제 모습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모습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도 '슈퍼스타K' 시즌2를 시청하면서 지나치게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듯 보이는 김그림의 태도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잠시 외출해서 부모님을 만나고 돌아온 후 붉어진 눈매로 글썽이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철렁하며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그 동안 집에서 힘드셨죠? 흑흑..." 자신을 향한 세상의 거대한 악의와 무방비 상태로 맞닥뜨릴 때, 게다가 가족들까지 연루되어 힘들어할 때, 그것은 설령 연예인이라 해도 견디기 힘든 일이다. 하물며 일반인으로서야 그 충격과 놀라움이 오죽했을까?

 

 

'슈퍼스타K' 출연자들은 그래도 명백히 연예인(가수) 지망생이었기에 어느 정도는 각오가 남달랐을 수 있다. 하지만 '짝' 출연자들의 대다수는 연예인 지망생이 아니었다. 단발성 출연을 마치면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일반인들이었다. 그런데 내가 시청했던 몇몇 방송분을 돌이켜 보면 '짝 애정촌'에서도 '슈스케'와 비슷한 '악마의 편집'을 적잖이 발견할 수 있었다. 감정에 사로잡힌 남녀 출연자들은 서로 조금씩 거친 말을 주고받을 때도 있었고, 상대의 말이나 행동에 굉장히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는데, 제작진은 그런 모습들을 빠짐없이 골라서 보여주었다. 여성 출연자들이 펑펑 우는 모습은 단골 메뉴처럼 등장했고, 상황과 원인을 삭제한 채 출연자의 자극적인 발언 한 마디만 방송에 내보냄으로써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녀를 '비련의 여주인공' 또는 '버림받은 어린 양'처럼 만들려고 하는 듯했다. 심지어 울기를 바라는 것 같았는데..." 라는 고인 친구의 증언은 '악마의 편집'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준다. 또한 고인은 친구와의 카톡 대화에서 "다른 사람들은 커플 되고 나는 혼자 있는데 계속 (카메라가) 따라다녀 인격적 모멸감을 느낀다. 화장실 앞까지 따라와 카메라를 들이댄다... 신경 많이 썼더니 머리 아프고 토할 것 같다. 지금 촬영 현장 빠져나와서 제작진 차 타고 병원 가는 중.."이라는 하소연을 털어놓기도 했다고 한다. 제작진은 왜 굳이 남자들에게 외면당하고 홀로 남은 그녀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카메라에 담았을까? 심지어 고인은 목숨을 끊기 전 모친과의 통화에서 "방송이 나가면 한국에서 살 수 없을 것 같다."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죽음을 결심할 만큼 힘들면서도 울지 않고 씩씩하게 버텼다는 것을 보면, 고인은 자존심이 매우 강한 성격이었던 것 같다. 혼자 있으려 해도 계속 쫓아다니는 카메라 때문에 맘 놓고 속 편히 울 수도 없었다.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애정촌' 내부에는 그녀의 고통을 이해하고 감싸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동료 여성 출연자들은 어차피 경쟁자일 뿐이고, 마음에 둔 남성 출연자는 다른 여성에게 눈을 돌리고, 그 와중에 제작진의 카메라는 비련의 여주인공 코스프레라도 해주길 바라는 것처럼 끈덕지게 쫓아다니고...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오랫동안 가슴에 켜켜이 쌓인 고통이겠지만, 최후의 순간 진심으로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곁에 있었다면 비극은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로써 '악마의 편집'은 아무리 시청률에 도움이 된다 해도 더 이상 허용할 수 없는 것임이 명백해졌다. 연예인 대상 프로그램이라면 모를까, 일반인 대상 프로그램에서는 절대 금해야 할 것이다. '악마의 편집'에 희생되어 삽시간에 '국민 밉상'으로 찍혀버린 누군가가, 또 '애정촌'의 그녀처럼 세상을 버리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비록 약간의 우울증을 지닌 사람이라도 한 순간의 고비만 무사히 넘기면 얼마든지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데, 가뜩이나 예민해져 있는 사람을 자극하여 죽음에 이르도록 한다면 아무리 시청률이 높게 나온다 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갈수록 무모한 자극이 넘쳐나는 이 시대, 우리는 이제 벼랑 끝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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