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STORY 2014 우수블로그
TISTORY 2012 우수블로그
TISTORY 2011 우수블로그
TISTORY 2010 우수블로그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김연아의 환한 미소를 영원히 간직하려면? 본문

스타와 이슈

김연아의 환한 미소를 영원히 간직하려면?

빛무리~ 2014. 2. 22. 09:09
반응형

 

올림픽 무대에서 펼치는 김연아의 마지막 연기가 시작될 때, 나는 기도했다.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마음을 평온히 감싸 주십시오. 떨림이나 두려움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지금 이 순간 모두 사라지게 해 주십시오. 출중한 재능뿐만 아니라 강인한 의지와 고상한 인품까지 주셨으니, 얼마나 특별히 사랑하시는 그녀인지요! 그 사랑으로 지금 이 순간, 연아의 온 몸과 마음을 따뜻이 감싸 주십시오." 마치 얼음의 요정이 뛰놀듯 하얀 빙판을 자유자재로 누비며 생애 최고의 연기를 펼치는 김연아의 아름다운 모습에, 나는 저절로 가슴이 뜨거워지며 눈시울이 젖어 왔다. 흠결없이 완벽한 그녀의 스케이팅은 이미 인간의 영역을 넘어섰다.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그 경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을 것인가!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경기의 내용으로 보자면 김연아의 압도적 우승을 의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나의 예감은 왠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포크레인 2대를 동원했다"는 말까지 나올 만큼 러시아 선수에 대한 점수 퍼주기가 노골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보면, 아예 작정하고 '후안무치' 전략을 쓰는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금메달을 가져갈 수만 있다면,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고 망신살이 뻗치는 것쯤이야 얼마든지 감수하겠다는 철면피 전략... 그리고 예감은 적중했다. 러시아의 소트니코바는 약간의 실수도 있었고 김연아의 완벽한 클린 연기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미숙한 느낌을 주었으나, 채점 결과는 소트니코바의 승리였다. 소치 올림픽에서 김연아의 최종 성적은 은메달로 마무리되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시선이 경악했다. 진짜 말도 안 되는 황당한 결과였다. 그런데 점수가 발표되는 순간... 김연아는 활짝 웃었다. 그 환한 미소가 얼마나 아름답던지, 얼마나 맑고 깨끗하던지, 그 미소를 바라보는 내 가슴에는 한 가득 기쁨이 차올랐다. 과연 김연아는 최고였다. 외적으로 보여 준 연기도 최고였지만, 그 내면의 강인함과 소탈함이야말로 진정한 여왕의 풍모였다. 이미 자신을 극복하고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그녀에게 점수나 메달의 색깔 따위는 중요치 않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그녀의 실력과 노력의 무게에 걸맞게 정당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금메달을 목에 걸고 올림픽 2연패의 신화를 이룰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명목상 명예는 빼앗겼어도 진정한 명예는 빼앗기지 않은 그녀였다.

 

  

하지만 그 충격적인 판정을 지켜 본 세상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한국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수많은 외국의 언론들도 러시아의 지나친 홈 텃세를 비난하고 나섰다. 한 외국 언론은 김연아의 미소를 두고 "어쩌면 쇼트 프로그램에서부터 김연아는 자신이 금메달의 주인공이 될 수 없음을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점수를 보는 순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삐딱한 웃음을 짓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관중에게는 정중한 예의와 환한 미소로 응답했다" 라고 표현했다. 글쎄, 어쩌면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녀도 사람인데, 인상 찌푸리고 화를 내지는 못할 망정 삐딱한 비웃음 정도는 얼마든지 흘려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아니었다. 불편함과 속상함을 억누르며 삐딱하게 웃는... 그런 미소가 아니었다.

 

경기와 시상식을 마친 후 인터뷰에 응한 김연아는 "고마워... 알지? 너는 최고야!" 하면서 팔을 벌리는 방상아 해설위원의 품에 안겨 눈물이 글썽해졌다. 한 번 터진 눈물은 좀처럼 멈춰지지 않았다. 소감을 묻자 울먹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가 눈물이 나는 게... 점수 얘기도 있고 해서 그런 오해를 많이 받는데, 그냥 끝난 게 너무 홀가분하고... 홀가분한 마음에 눈물이 나는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한 그대로의 답변이었다. 이제 드디어 기나긴 대장정을 마쳤으니 힘겨웠던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날 터이다. 수많은 기쁨과 슬픔, 눈물과 환호가 모든 추억 속에서 함께 떠오를테니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점수를 적게 받아서, 금메달을 놓쳐서, 속상해서 우는 게 아니었다.

 

  

방상아 해설위원이 물었다. "불공정한 점수를 받으면 그래도 화가 나지 않아요?" 그러자 김연아는 대답했다. "그럴 때는 오히려 주변에서 더 많이 화를 내시는 것 같아요. 저는 그냥... 그냥 끝난 것으로 만족합니다!" 정말 김연아는 끝까지 여왕다웠다. 물론 인터뷰에서 대놓고 속상하다 말할 수 없으니 예의상 그런 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100% 김연아의 진심이었다. "소치에 오기까지, 그 결정을 하기까지 너무 힘들었는데, 결국은 다 끝이 나더라고요. 어떤 선택을 하든... 잘 끝나서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그 동안 정말 감사했고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행복하게 잘 지내는 모습 보여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세상 어디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인사가 있을까? 행복하게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 주겠다는 그 말이 너무나 예쁘고 고마워서 나는 또 울컥 눈물이 솟구쳤다.

 

물론 내 생각이 그녀의 생각과 꼭 일치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녀도 사람이니까 일말의 서운한 감정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고, 만약 그렇다면 현재 그녀를 대신해 분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위로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김연아 선수에게 정당한 금메달을 돌려주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서명운동도 어쩌면 그녀에게 커다란 선물이 될지 모른다.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대한빙상연맹도 결국은 등 떠밀려 ISU에 확인 요청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빼앗긴 금메달을 되찾아 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김연아가 외롭지 않도록 '우리가 너의 편'이라는 사실을 큰 소리로 외쳐주는 데 있지 않을까? 나는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올림픽 무대에서의 완벽한 연기로 선수 생활을 마쳤고, 스스로 만족하기에 진심으로 행복해하고 있다.  

 

 

김연아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다. 노골적인 텃세로 부당하게 금메달을 빼앗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희희낙락하는 인간들과는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존재다. 피 터지게 항의하고 구정물 싸움을 벌여서라도 그녀의 빼앗긴 금메달을 되찾아 줄 수만 있다면 가장 좋은 걸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왠지 그 과정 속에서 김연아가 마음을 다치게 되지나 않을까 그게 더 걱정이다. 그녀를 위해 정당하게 분노하되 너무 지나치게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IOC에 정식으로 항의하는 것은 좋지만, 그 누구에게도 욕설을 퍼붓거나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김연아는 지금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행복한지도 모르는데, 그녀를 위한답시고 너무 심하게 화를 내거나 험한 말들을 내뱉으면, 그녀는 "우리 국민들이 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상심했구나!" 하면서 오히려 상처 받을지도 모른다.

 

올림픽을 맞이해 "너는 김연아가 아니다. 너는 1명의 대한민국이다!" 라는 카피 문구를 내세운 한 기업체 광고는 '역대 최악의 광고'라는 오명을 쓰고 온갖 공격을 받는 중이다. 김연아를 아끼는 수많은 대중은 그 광고에 분노를 터뜨렸다. "김연아는 김연아일 뿐 대한민국이 아니다.", "국가대표란 이유만으로 선수 개인을 국가와 동일시하는 게 싫다", "선수에게 부담만 될 것이다.", "'국가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혼자 우뚝 선 김연아 선수에게 숟가락 얹지 마라!"... 등등 그 광고에 분노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모두 타당했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이러한 대중의 반응이 정말 김연아를 위한 것일지, 그녀를 한 뼘이나마 더 행복하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김연아는 국가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 채 홀로 우뚝 섰다. 항간에는 '그녀의 유일한 약점은 국적'이라는 말까지 떠돈다. 그래서 우리는 김연아를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같은 나라의 국민으로서 미안한 감정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정작 김연아는 '오마주 투 코리아'라는 프로그램을 공들여 선보일 만큼 절절한 애국심을 지니고 있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니, 비록 국가가 그녀에게 해준 것은 별로 없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가장 소중하고 자랑스런 조국일 수 있는 것이다. 해당 기업체의 광고 역시 김연아가 동의했기 때문에 방송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설마 그녀의 동의도 없이, 어떤 콘셉트의 광고인지도 미리 알려주지 않고 제멋대로 찍어서 내보낸 것일까? 

 

어쩌면 김연아는 "너는 4분 8초동안 숨죽인 대한민국이다!" 라는 카피 문구를 듣고 멋있다고 환호했을지도 모른다. "너는 1명의 대한민국이다!" 라는 대목에서는 오히려 영광스럽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순수한 애국심으로는 충분히 그랬을 것 같다. 결코 대중이 분노하는 것처럼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다고 이제 와서 숟가락을 얹겠다는 거야!" 하고 투덜대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일 그녀가 기쁘게 승낙한 광고였는데 지금처럼 대중이 분노한다면, 한편으로는 자기를 아껴주는 수많은 마음들에 감동하겠지만 한편으로는 거북하지 않을까? 그녀를 위한답시고 벌인 일들이 오히려 그녀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김연아의 아름답고 환한 미소를 영원히 간직하려면, 우리는 너무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