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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곡' 바다, 사의 찬미 부르며 이은주 생각했을까?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불후의 명곡' 바다, 사의 찬미 부르며 이은주 생각했을까?

빛무리~ 2013. 8. 3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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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도 막바지에 이른 어느 날, 가수 바다(본명 최성희)는 '불후의 명곡' 무대에 서서 '사의 찬미'를 불렀습니다. 구한말 신여성의 대표주자이며 한국 최초의 여성 성악가였던 소프라노 윤심덕은 서른 살 되던 1926년 7월, 오사카의 닛토레코드회사에서 음반 취입을 의뢰받고 일본으로 건너갔죠. 레코드 취입을 다 마친 8월 1일, 윤심덕은 음반사 사장에게 특별히 한 곡을 더 녹음하고 싶다고 청했다는군요. 요시프 이바노비치 작곡 '다뉴브 강의 잔물결'에 윤심덕이 직접 한국어 가사를 붙인 그 노래가 바로 '사의 찬미'였는데, 결국 이 노래는 윤심덕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목소리가 되었습니다. 녹음을 마친 윤심덕은 당시 연인이었던 극작가 김우진과 함께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가는 배에 올랐지만, 이후 그들은 세상에 돌아오지 않았던 까닭입니다.

 

 

당시 보기 드물게 신식 교육을 받은 여성의 꿈과 이상은 매우 높았으나 현실은 비루하기 짝이 없었죠. 당시 국내에는 클래식 음악 전공자들이 마음껏 기량을 펼쳐보일만한 무대도 없었고 수입도 거의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넉넉치 않은 집안 형편으로 윤심덕은 가족들의 생계와 더불어 동생들을 공부시킬 책임까지 떠맡아야 했지요.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던 윤심덕은 곱지 않은 세간의 시선을 무릅쓰고 연극 무대에 뛰어들기도 했습니다. 당시 연극배우는 기생들이나 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천대받는 직업이었거든요. 하지만 전공 분야가 아니기에 연기도 어설펐을 뿐 아니라 윤심덕의 서구적인 외모는 당시 연극무대에 어울리지도 않았기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급기야 윤심덕은 남동생의 미국 유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장안의 거부 이용문을 찾아갔다가 그의 애첩이 되었다는 염문에 휘말리기도 했다는군요.

 

 

이러한 현실에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고통까지 더해졌으니, 윤심덕이 느꼈을 허무와 절망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극작가 김우진은 전라도 거부의 맏아들로서 와세다 대학 영문과 유학 중에 윤심덕을 만나 사랑에 빠졌으나, 그에겐 이미 고향에 두고 온 처자가 있었거든요. 당시에는 조혼 풍습으로 인해 대부분의 지식인 남성들은 김우진처럼 유부남일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윤심덕과 같은 신여성들이 제 눈높이에 걸맞는 남성과 평탄한 사랑을 이루기는 거의 불가능한 현실이었습니다. 게다가 지방 부호의 아들인 유학생 남성들은 신식 교육을 받고서도 구시대의 축첩 제도를 당연히 여기는 모순된 인식을 갖고 있어, 아내에게도 연인에게도 별다른 죄의식이 없었다는군요. 지금도 그렇지만 스캔들 때문에 손해보는 것은 언제나 여자 쪽이라, 당시에도 세상의 모든 비난은 유부남과의 스캔들을 일으킨 윤심덕에게로 향했죠.

 

 

그렇게 마음 한 자락 기대 쉴 곳 없던 윤심덕의 쓸쓸한 인생은 끝내 비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한 때는 김우진과 윤심덕이 죽음을 가장하고 몰래 도망쳐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다는 동화같은 소문이 떠돌기도 했으나, 여러가지 정황상 그들은 현해탄에 몸을 던져 동반자살한 것이 확실시되고 있거든요. 죽음을 결심한 윤심덕이 마지막으로 '사의 찬미'를 부를 때, 너무도 애절한 가사와 목소리에 녹음실은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광막한 황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苦海)에
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설움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위에 춤추는 자로다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허영에 빠져 날뛰는 인생아
너 속였음을 내가 아느냐
세상의 것은 너에게 허무니
너 죽은 후에 모두 다 없도다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설움

 

 

아무래도 경연에는 적합치 않은 곡인데, 가수 바다는 왜 하필 이 노래를 선택했을까요? 마이클 잭슨의 'Yoy are not alone'과 'Beat it'을 선택한 이정의 무대는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을 사랑한 사람들로부터 열광을 받았고,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을 선택한 정동하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선택한 문명진은 안타깝게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뮤지션들을 추억하는 사람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임태경이 선택한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 또한 익숙한 멜로디로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영웅본색의 주제곡 '당년정'을 부른 JK김동욱은 남자들의 짙은 향수를 자극하여 갈채를 이끌어냈습니다. 하지만 오직 바다의 무대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조용했지요. 가슴 에는 듯 깊은 허무와 슬픔... 아주 고풍스럽고 생소한 분위기... 가뜩이나 슬픈 노래를 선호하지 않는 이 시대의 청중에게서는 약간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마저 풍겼습니다.

 

 

그런데 바다가 부르는 '사의 찬미'를 들으며 제 가슴은 미칠 듯 요동치기 시작했어요. 폐부를 찌르듯 강하고 날카롭게 전해져 오는 허무와 슬픔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저녁 무렵부터 이 노래를 연습하기 시작했는데 어느 덧 정신을 차려보니 새벽 동이 트고 있더라고, 노래를 마친 후에 바다는 말했죠. 밤새도록 심장의 피를 쏟으며 노래한 나이팅게일처럼 (오스카 와일드 '나이팅게일과 장미' 中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애처롭게 쉬어 있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사의 찬미'에 담긴 슬픔은 더욱 생생히 전달되었습니다. 바다는 어쩌면 그토록 깊이 몰입할 수 있었을까요? 스스로 세상을 버린지 어느 덧 90년이나 되어가는 한 신여성의 슬픔이 그렇게나 깊이 가슴을 찔렀던 걸까요? 아니면 혹시 또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2005년 2월 22일, 배우 이은주가 충격적인 자살로 생을 마감했을 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스물 여섯이었습니다. 아니, 1980년 12월생이니까 만으로는 갓 스물 네 살이 되었을 무렵이군요. 어린 나이답지 않게 깊이있고 성숙한 연기는 이미 그녀를 충무로 캐스팅 1순위에 올려놓았고, 2004년 6월에 종영한 드라마 '불새'의 국제적 인기는 그녀에게 한류스타의 명성을 가져다 주었죠. 참으로 화려한 시기였고 발랄한 나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새 깊어간 마음의 병 우울증은 아무도 모르게 그녀의 심장을 좀먹고 있었네요. 그녀의 충격적인 죽음을 두고 세상 사람들은 가족간의 문제 때문이라고도 하고, 비밀에 부칠 수밖에 없었던 사랑 때문이라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녀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는데, 무엇이 그녀의 마음을 가장 괴롭혔는지 뒤늦게 밝힌다 해도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이은주와 바다는 단국대 연극영화학과 동문이었고 단짝 친구였습니다. 두 사람은 연기와 가수 활동으로 바쁜 중에도 이틀에 한 번씩은 서로 통화를 할 만큼 친밀한 사이였고, 바다는 이은주가 "마치 빵을 찍어낸 것처럼 나와 똑 같은 성격이라 매우 잘 통한다"면서 언제나 각별히 생각했다는군요. 이은주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22일 새벽에도 두 사람은 통화를 했고, 그것이 이은주 생애의 마지막 통화였습니다. 그 통화에서 이은주는 "우린 꼭 다시 만날 거야... 다시 만날 거니까 걱정 마..."라는 말을 되풀이했고, 이상하게 생각한 바다는 "갑자기 무슨 말이야? 우리 며칠 뒤에 만나서 함께 밥이라도 먹자. 정말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라고 걱정했는데... 그 날 오후 바다에게 걸려 온 다른 친구의 전화는 이은주의 부고를 알리는 것이었죠.

 

 

친구의 마지막 길을 지키던 바다는 시종 눈물을 그치지 못했고, 때로는 지나친 슬픔 때문에 실신하기도 했습니다. 서로 주고받은 편지가 아직도 방에 가득한데, 고왔던 친구의 모습은 이제 한 줌의 재로 변해 버렸으니 좀처럼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겠죠. 그렇게 가까웠으면서도 친구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 아픈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더욱 괴로웠을 겁니다. 이은주가 그렇게 떠난 후, 바다는 한참 동안이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데...

 

 

밤새도록 '사의 찬미'를 부를 때, 어찌 그 기억이 되살아나지 않았을까요?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설움..." 이 가사를 노래할 때면 "은주야... 너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하는 생각에 다시금 수많은 눈물을 흘렸겠지요. 부은 듯한 눈매와 쉬어버린 목소리로 부르는 바다의 '사의 찬미'는 한 맺힌 절규였고 영혼의 외침이었습니다. 이토록 짙은 슬픔의 카타르시스는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아주 고귀한 것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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