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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곡' 90년대 오빠들과 달콤한 향수에 젖어들다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불후의 명곡' 90년대 오빠들과 달콤한 향수에 젖어들다

빛무리~ 2013. 9. 8.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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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곡2'에서 '오빠 특집'이 한창이다. 지난 주에는 80년대를 대표하는 오빠로서 전영록이 출연했고, 다음 주에는 70년대를 대표하여 남진이 출연할 예정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오빠 특집'은 이번 주에 방송된 90년대 오빠들을 위해서 마련된 게 아닐까 싶다. 1990년대는 한국 가요사의 최전성기라 해도 좋을 만큼 다양한 노래와 실력있는 가수들이 쏟아져 나왔고, 열광적인 팬덤 문화와 더불어 '오빠'라는 호칭도 보편화되기 시작했던 시점이니까. 도대체 그 수많은 오빠들 중 누구 한 사람을 콕 집어 90년대의 전설로 출연시킬 수 있을까 했는데, '불명2'는 마치 작심이라도 한 듯 무려 6명의 전설이 출연하여 후배 가수들과 함께하는 무대를 꾸몄다.

 

혼성듀엣 '철이와 미애'의 멤버였던 신철은 바다와 새로운 듀엣을 이루어 '너는 왜'를 불렀다. 바다의 탁월한 가창력이 돋보였던 매혹적인 무대였다. '나는 문제없어'로 유명했던 황규영은 노라조와 함께 출연했는데, KBS 어린이합창단의 도움을 받아 감동적인 무대를 꾸몄다. R.ef의 성대현은 제국의 아이들과 함께 '상심'과 '이별공식'의 메들리를 불렀고, 015B의 장호일은 후배가수 김용진의 노래에 맞춰 수준급의 기타연주를 들려주었다. 김용진은 각종 드라마 OST로 유명하다는데 터프하고 남자다운 음색이 매력적이어서, 윤종신의 미성으로 들었던 원곡 '텅 빈 거리에서'와는 또 색다른 느낌이었다. 힙합그룹 긱스와 함께 꾸민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날'은 청중의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원곡의 슬픈 감성을 묵살하고 신나는 노래로 바꾸어 버렸기 때문에 별로였다. 그건 내가 개인적으로 매우 싫어하는 편곡이다.

 

 

90년대 오빠 특집의 우승 트로피는 '흐린 기억속의 그대'를 열창한 현진영과 MC팀에게 돌아갔다. MC팀이란 '불명2'의 현직 MC들이 참여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서, 정재형을 제외한 문희준과 은지원이 직접 무대에 올라 현진영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정말 뜻밖이었다. 댄스곡을 들으면서 이렇게 가슴이 뻐근해지도록 깊은 감동을 받다니, 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무대에 오르기 전의 인터뷰에서 현진영은 말했다. 희준이랑 지원이가 어제도 밤새도록 연습을 했노라고, 선배한테 좋은 무대를 만들어 주고 싶다며 그렇게 애쓰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짠하더라고. 은지원이 말했다. 선배님, 우리가 10년 전에 만났다면 어땠을까요? 이제 다시 춤추면서 노래하려니까 너무 힘들어요. 그러자 현진영이 가볍게 면박을 주었다. 너희가 예능만 하니까 그렇지! 아무리 왕년의 스타라지만 아직도 엄연히 본업은 가수들인데, 가수 활동에 너무 소홀한 후배들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표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참 오랜만이다. 최근 '핫젝갓알지'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하여 다시 활동을 시작하긴 했지만, 그 이전까지만 해도 무대 위에 선 문희준과 은지원의 모습을 보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은 명실공히 1세대 아이돌의 시대였고, 문희준과 은지원은 그 시대를 주름잡던 H.O.T와 젝스키스의 리더였다. 노라조의 조빈은 현진영와 MC팀을 가리켜 '전설끼리 뭉친 팀'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다. 아이돌 음악을 즐기지 않는 나조차도 기꺼이 인정할 만큼  H.O.T와 젝스키스는 이미 전설이 된 그룹이니까. 취향이 다르다고 해서 아이돌 음악을 폄하할 생각은 없으니까.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은 거의 기억나지 않고 춤추는 모습만 기억나지만, 그런 스타일의 음악도 분명 나름의 가치는 있는 법이니까.

 

'흐린 기억속의 그대'는 역시 흥겨운 춤으로 시작되었다. 두 명의 댄스 신동이 가장 먼저 실력을 뽐낸 후, 은지원과 문희준이 댄서들과 함께 등장하여 도입부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노래가 시작되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뽀얀 담배 연기 화려한 차림속에 거울로 비쳐오는~ 초라한 나의 모습 변화된 생활속에~ 나만의 너는 너는 너는 잊혀져 가고~" 은지원이 노래하는 목소리를 이토록 뚜렷하고 생생하게 들어본 것은 내 생전 처음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은지원의 라이브 실력은 꽤나 괜찮은 편이었다. 소름끼치는 가창력까지는 아니지만, 그 정도면 댄스 가수로서는 어디 내놔도 창피하지 않을 정도는 되겠다 싶었다.  

 

 

"연인들의 열기 속에 흔들리는 촛불마저~ 나를 처량하게 만드는 것만 같아 견딜수 없어~" 문희준의 라이브가 이어졌다. 은지원에 비해 문희준의 노래는 몇 차례 들어본 기억이 있어 실력이 나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역시 괜찮았다. 그렇게 은지원과 문희준은 대기실에서 예고했던 음이탈(일명 삑사리)도 하나 없이 둘이서 매끄럽게 노래 1절을 마쳤다. 그리고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현진영이 무대에 등장했다. 현진영의 라이브에 맞춰 적절한 타이밍에 끼어드는 은지원의 추임새와 랩도 일품이었다. 혼연일체가 된 듯 함께 움직이고 노래하는 세 사람의 무대를 보며, 저절로 가슴이 뜨거워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인터뷰에서 밝혔듯, 현진영과 MC팀은 노래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았다. 원곡보다 더 강한 것은 없다는 신념으로 원곡에 충실한 무대를 준비했다더니, 과연 그들은 20년 전 '현진영과 와와'의 무대를 실감나게 재현해 보여주었다. 흥겹고 신나는 와중에도 어딘가 먹먹하고 아련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진하게 풍겨오는 그 시절의 향수 때문이었을까? 훌륭하게 편곡된 노래도 물론 좋지만, 사실 나는 원곡에 충실한 무대가 더 좋았다. 항상 나를 감동시키는 무대는 편곡을 하더라도 원곡을 훼손하지 않고, 원곡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는 무대였다. 가수의 스타일이나 가창력에 따라 원곡과의 차이가 느껴지는 것은 당연했지만, 아예 다른 노래로 만들어 버리면 낯선 거부감이 밀려들며 감동은 사라졌다.

 

 

원곡에 충실한 것 외에도, 참 오랜만에 보는 가수 은지원과 가수 문희준의 열심한 모습은 또 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너무 예능만 한다고 선배에게 꾸중은 들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도 아직 노래쟁이의 꿈은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청소년기의 우상과도 같았던 선배를 모시고 함께 하는 무대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예뻐 보였고, 그런 후배들의 열정에 힘입어 다시 꿈을 불태우는 현진영의 모습도 흐뭇했다. 

 

어느 덧 20년의 세월이 흘렀고, 미소년의 해사한 얼굴에도 숨길 수 없는 주름이 패였다. 날렵하던 몸은 어쩔 수 없이 둔해지고 숨은 가빠졌다. 그 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고, 이제는 더 이상 기운이 넘치지 않는다. 하지만 지친 일상 속의 어느 날, 이렇게 문득 되살아나는 과거의 추억은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포근하지 아니한가! '불후의 명곡2'를 꾸준히 시청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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