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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디 가' 준이는 왜 일찍 어른이 되고 싶었던 걸까?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아빠 어디 가' 준이는 왜 일찍 어른이 되고 싶었던 걸까?

빛무리~ 2013. 8. 26.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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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성동일과 그 아들 준이는 '아빠 어디 가'에 출연하는 다섯 가족들 중에서도 가장 많이 변화되어 보였거든요. 원래부터 아빠 송종국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아 온 지아라든가, 워낙 편하게 대해주는 아빠 이종혁과 친구처럼 투닥거리며 지내 온 준수의 신나는 삶은 여행을 시작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 없을 듯 싶고요. 아빠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다소 부족했던 민국이와 윤후는 여행을 통해 아빠와 조금씩 더 가까워지면서 그만큼 더 행복해진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아빠를 지독히 무서워하며 멀리하고 때로는 경기하듯 발작적인 울음을 터뜨리던 준이의 모습은 소통 부족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더 심각하다고 느껴졌지요. 낯선 여행지에서 아빠와 단 둘이 남았을 때, 다른 가족들은 모두 손을 잡고 걷는데 유일하게 손을 안 잡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걷던 성동일-성준 부자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문제의 원인은 자식 사랑의 방법을 몰랐던 성동일의 지나친 엄격함과 무뚝뚝함에 있었던 것 같아요. 첫 여행지에서 맞이하던 쌀쌀한 아침, 다른 집 아빠들은 모두 자식에게 더 좋은 음식으로 아침밥을 해 먹이고 싶어서 일찍부터 일어나 부산을 떠는데, 오직 성동일은 아무 관심 없다는 듯 쿨쿨 잠만 자다가 늦게 일어나 엊저녁에 먹던 삶은 감자로 아침을 때웠습니다. 아빠 혼자서 하는 여행이었다면 그래도 별 문제 없었겠지만, 겨우 여덟 살의 어린 아들을 데리고 여행하는 아빠의 자세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죠. 더욱 쇼킹한 것은 어린애라면 누구라도 불만 가득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에서 한 마디 불평 없이 아빠가 시키는 대로 감자에 김을 싸서 묵묵히 먹던 준이의 모습이었습니다. 여느 아이들 같았으면 울며 불며 떼를 쓰고도 남았을텐데, 그 추운 겨울날 아침에 따뜻한 국 한 그릇 없이 다 식어서 차갑고 퍽퍽한 감자로 아침을 때우면서도 말이에요.

 

 

그랬던 성동일이 변했습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요리 솜씨를 발휘하여 준이에게 황제의 밥상을 차려주기도 하고, 수시로 준이와 눈을 맞추며 웃기도 하는군요. 이번 무인도 여행에서는 몹시 지쳐 씻지도 못하고 잠든 준이의 얼굴을 물티슈로 닦아주는 성동일의 모습이 비쳤는데, 어떤 아빠라도 그보다 더 살갑고 다정할 수는 없겠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준이 역시 이런 아빠의 변화에 호응하여 점점 더 깊은 애정을 표현하고 있었는데요. 어느 날은 윤후와 민국이와 함께 방에서 재미있게 놀던 준이가 밖으로 나오더니, 모래밭에 누워 있던 성동일의 곁으로 슬쩍 다가와 말 없이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혼자 놀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러냐고 성동일이 묻자 준이는 특유의 시크한 어조로 대답했죠. "아빠랑 같이 있으려고요!" 담담한 척하려고 애썼지만 저절로 웃음이 비어져 나오며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던 성동일... 참 흐뭇한 부자의 모습이었어요.

 

무인도에서의 첫날 밤, 보물찾기를 시작하기 전에 아빠들은 물었습니다. "윤후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은 뭐야?" 그러자 윤후는 선뜻 "아빠!"라고 대답하는군요. 뛸듯이 기뻐하며 아들에게 뽀뽀 세례를 퍼붓는 윤민수... 같은 질문에 일곱 살 준수는 "닌자!"라고 대답해서 장난감에 밀린 아빠 이종혁은 쓴웃음을 지었고, 똘똘한 지아는 마치 준비라도 하고 있었던 것처럼 "가족!"이라는 모범 답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가장 충격적인 것은 준이의 답변이었죠. 뜻밖에도 준이는 가장 소중한 보물을 묻자 "나이!"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어요. 의아한 아빠들이 "나이?"라고 반문하자, 준이는 "(빨리) 나이 먹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나한테서 벗어나고 싶다 이거죠..ㅎㅎ" 아들의 대답에 약간 당황한 듯 성동일은 실소를 머금고 다른 아빠들에게 말했죠. 이어서 준이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그런 거야?" 묻는데, 준이는 부정하지 않고 아주 살짝 끄덕이더군요. 18세도 아니고 이제 겨우 8세에 불과한 아들로부터 느닷없이 '독립 선언'을 듣게 된 성동일의 얼굴에는 당혹스런 기색이 떠올랐습니다. 가장 소중한 보물을 '나이'라고 생각할 정도면, 준이에게 있어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소망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간절함이 아니겠어요? 사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별로 행복한 일이 아닌데, 오히려 절대 다수의 어른들은 준이와 같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하는데, 도대체 현실의 어떤 부분이 8살 준이의 삶을 그토록 힘겹게 해서 빨리 어른이 되기만을 꿈꾸게 하는 걸까요?

 

이렇듯 아이들은 종종 의외의 모습을 보여서 어른들을 당황시킵니다. 윤후도 예전에는 매일 늦게 들어오는 아빠가 낯설다 보니 누구인지조차 인식 못하고 어느 날 "엄마, 쟤 또 왔어!" 라고 말해서 윤민수를 기함하게 했었다죠. 그랬던 윤후가 이젠 가장 소중한 보물을 "아빠!"라고 대답할 정도가 되었으니 아주 큰 변화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어요. 언젠가 아이들끼리 있을 때 윤후는 "아빠가 술을 나보다 더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죠. 불과 얼마 전 방송된 템플스테이에서, 현종스님으로부터 아빠랑 친하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윤후는 "아직 난 엄마 편이라, 아빠는 요만큼만 좋아한다!"고 대답했고, 계곡 캠핑에서는 "아빠랑 여행하고 싶지 않고, 자꾸 엄마가 생각난다!"고 말함으로써 모두를 멘붕에 빠지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예전에 비하면 엄청난 관계 개선이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충분치는 못하다는 증거였어요. 

 

 

윤후의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윤민수는 충격받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아무 상관 없는 시청자들까지도 너무 뜻밖이라 멍해지곤 했었죠. 정말 많이 친해진 줄만 알았는데, 이젠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의 마음에 새겨진 상처가 완벽히 치유되는 건 그리 삽시간에 되는 일이 아니었어요. 준이 역시 마찬가지였던 모양입니다. 아빠와 친해져서 너무 좋지만, 예전보다는 많이 행복해졌지만, 아직도 준이의 삶에는 즐겁고 신나는 일보다 힘들고 참아야 하는 일이 더 많은가봐요. 아무리 힘들어도 벗어날 수 없는 고정된 일상... 사실 그 나이에는 온통 자기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들뿐이죠.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것은 이 고통스런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추고 싶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어른 세상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면, 그 말을 할 때 준이의 표정은 훨씬 더 활기찼을 거예요.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은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 때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99%의 어른들이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추억하더라도 1%의 예외는 있게 마련이고, 저는 그 1%에 속하는 사람이기에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던 준이의 어딘가 쓸쓸해 보이던 표정이 계속 마음에 걸리는군요. 준이가 정말 티없이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물론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니 근본적으로는 행복하겠지만, 그 어린 마음한 구석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바윗돌이 몇 개쯤 놓여있는 것 같아서 말이죠.

 

 
혹시 자우림의 '숨은 그림 찾기' 라는 노래를 아십니까?

"그래, 모두 돌아가고 싶은 그때로...
길던 하루 해, 작은 선물 상자, 따스하던 엄마의 품,
학교 가는 길 작은 구멍가게, 재미있던 소꿉놀이, 다시 볼수 없는 그리운 친구들...

하지만 이런게 다일까? 그럴까?

전쟁놀이 하던 날, 내가 던진 돌에 맞아서 울던 그 친구, 피가 흘렀던 이마...
병원놀이 하자고 우릴 옥상으로 불러내, 묘한 눈빛으로 우릴 바라보던 그 오빠...
지루한 하루, 원치 않은 선물...
무서웠던 아빠의 매... 다신 보기 싫은 미웠던 사람들...

하지만 아무 말 못했지... 그랬지...

거짓말을 했던 날, 들킬까봐 마음 졸이며 뒤척이던 밤, 두근거리던 마음...
아빠 엄마 싸운 날, 동생하고 둘이 손잡고 무서워 울었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날 밤..." 

 

 

그렇군요. 돌이켜 보면 우리의 어린 시절도 티없이 행복하지만은 않았어요. 어른들이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고민이라도 아이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힘든 일일 수 잇습니다. 어른들 생각에는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엄마한테 (또는 아빠한테) 다 털어놓을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아이들은 자기 고민을 쉽게 이야기 못하죠. 콕 집어서 왜 그렇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위 가사 속의 아이처럼 저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나를 괴롭히는 아이가 있어도, 왠지 혼자 감당해야 할 일인 것 같아서 말 없이 꾹꾹 눌러 참았죠... 아마도 그래서였나 봅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준이의 소망을 듣는 순간, 흐뭇한 미소로 '아빠 어디 가'를 시청하고 있던 제 가슴이 순식간에 먹먹해진 것은... 언제쯤이면 준이가 그 소망을 버리고 현재의 삶을 신나게 즐길 수 있을까요? 제 손이 닿지 않는 일이라 더욱 마음만 간절해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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